▲쪽방촌 골목.뉴스앤조이 신철민
12월 25일 새벽 3시 30분
영등포에서 노숙하는 사람 대부분 두터운 침낭을 가지고 있었다. 침낭이 없으면 이불이라도 있었다. 처음에는 박스로 바람을 가리고 자려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살을 에는 바람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역 광장 길목에 포주 아주머니 몇이 보인다. 아까부터 오가는 사람을 붙잡고 “영계 있어요”를 반복한다. 그 분에게 다가가 “잠만 자는 방 있냐”고 물었다. 2만원을 달라고 한다. 아니 방이 왜 그리 비싸냐고 따졌더니 성탄절이라 빈 방이 별로 없단다. 친절한 아주머니, 찜질방에 가라고 위치를 상세히 알려 주신다.
찜질방을 갈까, 아님 다른 방을 찾을까 고민하다 철공장길로 나갔다. 여기는 낮에는 공장이지만 밤에는 ‘연애’하는 곳으로 바뀐다. 아줌마로 부르기엔 젊고 아가씨로 부르기엔 늙은 여자 한 명이 팔짱을 낀다. 잠만 자는 곳을 찾는다니 만원을 달란다. 침침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계단을 오르니 토굴 같은 곳이 나온다. 복도 양편으로 방이 즐비하다. 아가씨들이 ‘영업’을 하는 방이다. 나에게 준다던 “깨끗하고 따뜻한 방”은 어디로 갔는지, 미닫이문을 여니 냉기가 엄습한다. 퀴퀴한 냄새는 보너스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등이 붉다는 점. 더 밝은 불이 없냐고 물으니 새 형광등을 가져다 끼운다고 한다. 그냥 두라 말했다. TV는 먹통이다. 이런 상황에선 꼼짝없이 억지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점. 방이 더럽거나 추워서가 아니다. 잠이 들라치면 귀를 때리는 소음 때문이다. 크게 틀어 놓은 성가곡이 괴기스럽다. 라디오인지, TV인지 헨델의 메시아가 좁은 복도를 채웠다.
굵은 매직으로 1호, 2호 적힌 방으로 많은 남자가 오갔다. 군인 무리와 아저씨들은 한동안 방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아침에 찾아온 사람 덕분에 난 겨우 든 잠에서 다시 깨어나야 했다. 하필 옆방에 들 게 뭐람. 문을 열고 아가씨에게 물 한 잔 부탁한다. 잔을 건네며 농을 친다. “오빠 다음에는 잠만 자지 말고 연애도 하자.”
빛이 전혀 들지 않아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다. 핸드폰 시계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방 구석에 로또 잡지가 굴러다닌다. 뒤적뒤적 하다보니 ‘성탄특집’이 눈에 들어온다. 성경이 점지한 행운의 숫자에 관한 이야기다.
어젯밤 소란이 언제였냐는 듯, 복도는 몹시 조용하다. 신을 신고 문을 닫는 소리가 아가씨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바깥은 바야흐로 성탄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