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은 피하기 어려운가

[칼럼] 2005년의 의미

등록 2004.12.29 15:50수정 2004.12.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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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북핵 문제'로 표현되는 북미 갈등이 폭발한 지도 3년째가 되고 있고, 4년 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올 스톱시켰던 부시 행정부는 2기의 닻을 올렸다.

이에 따라 우리가 창조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2기 부시 행정부 임기인 2008년까지 한반도는 '고난의 행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2005년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다.

2005년은 역사적으로 어떤 해인가? 100년 전 7월,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을 맺어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반도를 일본이 지배함을 승인한다"고 규정했다. 이보다 10년 앞선 1895년에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해 한반도에서 청나라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1905년 9월에는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와 일본이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중재 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은 한반도에 지배적인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며 한반도를 일본에 넘겨주는 국제적 절차를 마무리했다. 루즈벨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2개월 뒤에는 을사조약이 체결돼 한반도는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40년 후 한반도는 2차 대전의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통치 결정으로 분단도 함께 강요받고 말았다.

중대한 역사적 결절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한말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2005년을 맞이하고 있다.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북미 대결을 평화적으로 풀지 못하고, 반세기를 훌쩍 넘긴 정전협정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전환점을 만들지 못하면, 한반도는 또 다른 형태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신을 가다듬고 2005년을 준비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평화'는 다른 가치 실현의 전제조건

2005년의 중대성을 말해주듯 정부와 여당은 북핵 해결을 통한 평화번영을 민생경제 회복 및 국민통합과 함께 3대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IMF 때보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고 이념과 이익 갈등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어, 정부와 여당이 이와 같은 과제를 제시한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비롯한 '평화 만들기'는 그 자체로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자 경제회복 및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외국 신용평가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는 신용등급을 비롯한 국가신인도에 가장 큰 부정적 요인이다.

또한 이른바 '남남갈등'의 중심 축이 대북·대미 인식을 둘러싼 갈등에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인 진전을 만들어내면, 경제위기와 국론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 이상과 현실 사이

지난 2년동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엄중한 과제 앞에서 갈팡질팡했던 노무현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할 말"을 하면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천명했다. 북핵 불용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철저하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미국 안팎에서 끊임없이 거론되어온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은 물론이고 봉쇄를 통한 붕괴 유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2기 부시 행정부가 '딴 생각'을 못하도록 쐐기를 박으려고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할 때,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낼 만큼 남북한의 신뢰가 구축된 것도 아니고, 남한이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도 제한되어 있다. 또한 지난 4년이 보여주듯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방관자나 소극적 중재자로 머물 수도 없다. 냉철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창조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인 것이다.

2005년에는 정부와 국회가 불필요한 정쟁을 중단하고 평화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럴 때에만 2005년을 대전환의 시발점으로 삼아, 지난 세기와는 다른 21세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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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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