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송년회, 어떠세요

"우리가족,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한 해를 정리하다."

등록 2004.12.29 23:56수정 2004.12.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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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4년도 겨우 사흘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가족은 삼겹살을 먹으면서 한 해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식당을 찾으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됩니다. 모두들 올해의 안 좋은 기억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으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마누라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는 갑자기 “구구!”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이 사람이 갑자기 뭐가 잘못되었는가 싶어 멍하니 쳐다보는데 “팔팔”이라고 하랍니다. 할 수 없이 “팔팔!”이라고 외치자 “우리부부, 아흔 아홉까지 팔팔하게 삽시다”며 활짝 웃습니다.

이제 돌아가면서 올해 있었던 일을 축하해 주기로 합니다. 나는 딸아이가 중학생이 된 것을 축하해 줍니다. 딸애가 처음으로 여성이 된 2월의 그 날, 나는 빨간 장미 한 다발을 건네면서, 아름답고 맑은 젊은이가 되길 기도했습니다.

딸애는 자기 어머니가 한식·제과·제빵 자격증을 딴 것을 축하합니다. 마누라는 아들이 한자 4급 자격증을 취득한 것을 축하해 주고, 아들은 아버지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어 아버지 글을 인터넷에서 보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이제 삼겹살이 나옵니다. 마누라와 아이들은 바싹 구운 고기를 좋아 하는데, 나는 적당히 익어도 먹는 편이어서 식구들에게 ‘어서 먹으라’면서 혼자만 먹어댑니다. 머쓱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아이들 눈치를 살피면서 우스개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경상도 완숙군수와 반숙면장이 고기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완숙군수는 고기가 적당히 익어야 먹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뒤집고, 다시 뒤집어 놓는 순간에 반숙면장은 '고기는 너무 익으면 맛이 없습니다'면서 입으로 직행, 또 하나 먹으려고 뒤집는 순간 '탄 고기 먹으면 암에 걸린답니다.'면서 또 반숙면장이 날름!


저녁내 고기만 뒤집다가 한 점도 먹지 못해 성이 난 완숙군수는 '야! 이 노무 자슥아, 니가 고기도 다 처 묵고, 군수도 다 해 처 묵어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일이 있었단다.”
그제야 아이들은 배시시 웃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고기는 먹지만 소나 돼지가 불쌍해요.”


아들은 뜬금없이 한마디를 내 뱉습니다. 딸애는 그 말이 가시가 되는지 젓가락을 놓습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는 소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매일 소에게 풀을 뜯기는 것이 일과였을 만큼 소하고는 참 친했단다.

그 때 우리처럼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부잣집에서 어린 송아지를 한 마리 가져와서는 그 소를 키워서 어미 소를 만들고, 그 소가 낳은 새끼가 비로소 우리소가 되었단다. 그것을 ‘배내기소’라고 했는데, 그 소 한 마리를 얻으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니?

또 소는 살림 밑천이기도 했지만 농사짓는데도 없어서는 안 되었거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소를 팔 때는 도살장에다 팔면 값은 더 받을 수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농사짓는 집에만 팔았단다.

아버지가 책에서 읽었는데, 어떤 도살장에 있는 사람이 소를 잡으면서 너무 괴로웠대요. 소는 도살장에 끌려가면 뒷걸음질을 치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하거든.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서는 그 사람에게 ‘소나 돼지는 축생(畜生)으로 고통은 많고 기쁨은 거의 없는 세계이므로, 그 고통을 빨리, 단박에 끊어주는 보살이야말로 참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요.”하더래.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더란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도 그 때 그렇게 닭을 잡을 수 있었어요?”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습니다. 2년 전쯤에 아들이 학교 앞에서 병아리 다섯 마리를 사 왔는데 세 마리는 죽고 두 마리는 키웠는데, 그걸 추석날 식구들이 모였을 때 백숙을 해 먹기 위해 제가 닭 잡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한참을 통곡을 하다가, 제게 며칠 동안 말도 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이해를 해 주는 것을 보니 아이들도 부쩍 컸나봅니다.

이제 내년 계획을 말합니다.
아들은 ‘반드시 한자 3급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합니다.
딸애는 ‘이 번 방학동안 기초를 다잡아서 성적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마누라는 ‘10킬로그램을 감량하겠다.’고 합니다.
나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좋은 글을 적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이제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많은 노래들을 기가 막히게 잘도 부릅니다. 우리도 신곡을 불러보지만 별무신통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애써 웃으며, 박수를 보내 줍니다.
참 기분 좋은 하루가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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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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