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엄마들에겐 개학입니다

우리집의 겨울방학 풍경을 그리며

등록 2004.12.30 09:29수정 2004.12.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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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오늘로 학교 끝이다.”
“오예, 이제 내일부턴 방학이고요~.”
“야, 드디어 해방 이제 살았다.”


세상에, 무슨 큰 경사라도 난 것 같습니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입니다. 나도 어렸을 적 방학을 기다린 경험이 있는지라 십분 이해하고 넘어간다 해도 환호에 가까운 이 태도는 좀 심하다 싶네요.

“방학이 그렇게 좋냐?”
못마땅함이 가득 남긴 내 목소리입니다.
“당연하지.”
생뚱맞게 뭘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입니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은 때다. 니들 ‘병원24시’나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환우들이 병 나으면 제일 먼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 거 못 봤니?”

씨도 안 먹힐 얘깁니다. 조금 더 길게 말을 늘어놓았다간
“이래서 엄마랑은 얘기가 안 돼”란 말이 곧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학교만 다니라면 엄만 세상 좋겠다.’ 목까지 치밀어 오는데도 미처 다하지 못하고 아쉽게 삼켜버린 한마디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입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 해도 셋이서 우기면 혼자인 나는 양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다수결의 원칙이라 하나요. 나도 무조건 내 의견만 내세우는 몰지각한 엄마가 아니라 사리분별 있는 엄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서운하지만 슬그머니 꼬리를 내밉니다.

아이들에게야 마치 해방이라도 맞은 것처럼 뛸 듯이 좋은 방학이 되겠지만 우리 엄마들은 이제부터 개학입니다. 날씨가 추우니 진종일 컴퓨터만 끼고 있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몰 수도 없지요, 꼼짝없이 집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워야 할 걸 생각하면 지금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합니다. 음식 솜씨도 별로 없는 내가 점심까지 삼시 세끼를 차릴 것도 신경 쓰이네요.


아예 아이들이 어렸을 땐 어디 공연이나 전시회도 곧잘 갔는데 나이차가 나다보니 한 녀석이 여기로 가자면 한 녀석은 저기로, 또 하나는 아예 집에 있겠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아까부터 뭔가 걸린 것처럼 속이 거북했던 게 아마도 ‘방학증후군’ 같은 신종 병 때문은 아니었는지요.

아무래도 오늘 저녁부턴 밥을 든든히 먹어야겠습니다. 40일이 넘는 긴-애들은 짧다고 야단이지만-방학을 버틸 체력을 보강해야 할 테니까요. ‘그래, 니들 하고 싶은 대로 맘껏 즐기고 신나게 놀아라.’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이렇게 말할 게 뻔합니다.
“얘들아, 이 방학을 잘 지내야 내년이 편하단다.”
“방학 동안에 책 좀 읽어라. 쓸데없이 컴퓨터만 붙잡고 시간 죽이지 말고.”


안 봐도 비디오지요. 고작해야 잔소리로 밖에 들어 넘기지 않을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나의 모습에 지레 지쳐 그만 힘이 탁 빠집니다.
‘우리 애들만 그런가?’

어영부영 보내버린 지난 방학들과는 달리 이번엔 뭔가 즐겁고 신나고 알차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아둔한 머리나마 이리저리 굴려봐야겠네요. “혹시 잔소리 없이도 효율적으로 방학을 잘 보내는 방법 알고 계신 분 안계세요?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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