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견] 인류대재앙 앞에 '한국인'만 생각하는 우리언론

등록 2004.12.30 15:05수정 2004.12.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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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지진해일)로 인해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났습니다.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폭발에 의한 쓰나미 이후 최대규모의 피해라는 진단도 나옵니다. 세계의 신문·방송들이 전 지구적 재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우리 언론은 한국인 피해 상황에만 집착한 나머지 이웃들의 고통에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네티즌 임채욱씨의 글을 올립니다... 편집자 주


2년째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한국은 12월 30일 오전 11시, 제가 사는 이곳은 12월 29일 밤 9시입니다. 저는 지금 동남아지역 해일 대재앙이 발생한 지 벌써 5일째 되었는데, 이를 보도하는 한국과 미국언론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다른 지역으로 여행중이었던지라 제대로 뉴스를 접하지 못하다가 오늘 집에 돌아와 TV를 켰습니다. 온통 쓰나미 관련 뉴스이고, 특히 CNN의 경우 12월 29일 밤 7시부터 9시까지 특별방송으로 계속 이 뉴스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TV를 켜기 이전에는 얼마나 더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 앞으로도 얼마나 더 방송을 할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인터넷을 통해 New York Times, LA Times, USA Today 등의 주요 신문사 웹사이트를 방문한 결과 초기 화면이 모두 이번 사건 관련 사진과 기사들로 가득하고 여러가지 대책, 생존자 이야기, 피해사실 전달 및 구원요청 등 다양한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현장 피해모습 등을 보여주는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초기 화면에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같은 시각 한국의 언론사의 기사는 어떨까 궁금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 웹사이트를 클릭해 보았습니다. 이미 이들 한국 대표언론사들은 다른 국내뉴스가 Top 기사를 차지해 버렸고, 그나마 보이는 거라고는 "한국인 피해자가 36명이나 아니냐 라는 로이터의 보도"에 관한 논란뿐입니다.

물론 "동남아 대재앙 기사 보기"라는 식으로 작은 링크만 걸어놔서 클릭만 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있지, 초기 화면에서는 피해자들의 사진도,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는 현지 주민들의 표정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국내 정치뉴스, 쓸데없는 연예인 뉴스 등이 초기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미국의 CNN을 비롯한 다른 방송이나 언론사들은 어째서 사고가 난지 5일이나 지난 지금도 이 문제를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고 있을까요? 미국인 피해자가 동남아에서 엄청나게 죽어서일까요? 오히려 한국보다 더 먼 나라에서 많은 지면과 화면을 할애해서 이번 재앙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한국 언론처럼 "미국인 피해자가 몇 명이며, 미국 정부가 대처를 잘 하고 있냐 못하고 있냐"는 지엽적인 문제로 이 비싼 공중파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뭔지 모를 의무감, 책임감 등으로 방송 및 신문을 편성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국? 네, 한국인 피해자가 몇 명인지, 정부가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얼핏보면 한국 언론엔 그것 밖에 안보입니다. 수만 명이 죽은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보려는 노력이 불과 며칠만에 사라진 겁니다. 정말 우물안 개구리밖에 될 수 없는 게 한국 언론의 현실입니까? 현대사 최악의 참사라고 합니다. 그런 사고에 대해 그저 한국인 피해자 몇 명이라는 로이터의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한 줄 떡 걸쳐있는 것 밖에 없는 한국 언론의 현실….

저는 오늘 미국에 앉아서, 미국인이 만든 미국 웹사이트, www.amazon.com에 가서 제 신용카드로 국제적십자사에 구호성금을 냈습니다. 그 사이트에서는 그걸 할 수 있게 해놨습니다. 한국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인가 그걸 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을 독선적 제국주의라고 욕하는 사람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겉으로라도(속은 모르니까요) 인도주의를 표방하고 보여줍니다. 한국처럼 나 밖에 모르지는 않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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