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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 막내 동생이 나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언제까지 무직으로 있을 건데?"
나는 피씩 웃어 넘겼지만, 어쩐지 마음 속에 모래라도 들어있는 것 마냥 서걱거리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이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동생은 큰누나가 걱정인 모양이다. 예전엔 용돈도 주고, 옷이나 필요한 물건도 사주었는데 다시 학생이 되고, 또 졸업 후에도 무직인 형편을 뻔히 알면서 내게 그런 걸 요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졸업 후, 나는 어렵사리 취직을 했지만 다시 무직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러 가지 난제들을 헤쳐가기가 몹시 버거웠고, 적임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뒤돌아볼 것도 없이 사직서를 내 버렸다. '잠시 아르바이트 한 셈치지 뭐.' 스스로를 그렇게 위무하며 12월을 맞이했다.
소속이 없는 이 시기는 말할 수 없이 황량하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었고,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멀리 있는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곧 취직해서 직장을 옮겼노라고 이야기할 계획이었는데, 나의 계획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는 송구한 인생이 되어버렸다.
생각하건대, 자아의 완성에 다가갈 수 있는 일을 하며, 경제적 이익도 도모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재로선 가장 부럽다. 비록 그런 처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나의 완성에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를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꿈꿀 수 있다면 그만큼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그와 함께 눈높이를 낮추고 마음도 비우고 그러다 보면 내가 일 할 곳쯤 하나가 눈부시게 들어 올 날도 오겠지 긍정하면서 한 해를 되돌아 본다.
올해는 말로만 듣던 청년 실업을 몸소 체감한 해였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그들 모두 새해에는 원하는 곳에 취직하여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아직 얼마 달리지도 않은 셈이다. 그러니 낙담하지 않고, 얼마든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한다.
어느 모임에서 친구 하나가 졸업 후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그 친구는 영화 <키즈 리턴>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했다.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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