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선 복원하고 한편에선 훼손하고

낙안 민속마을의 사계 2

등록 2004.12.30 23:16수정 2004.12.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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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은 적어도 8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보수를 하게 된 지도 20여년이 넘는다.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함이 여기 있다. 매년 성곽과 마을 보수를 위해서도 많은 금액이 들어가고 있다. 사적지로 지정된 성곽이며 보존해야 할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이곳에 있는 읍성관리소 직원들과 주민들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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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여덟그루가 성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북쪽성곽길 ⓒ 서정일

돌아보면 구석 구석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1400여m의 성곽길을 콘크리트 형식의 단단한 물질로 덧씌워놓은 것은 성곽 보호를 위해선 참으로 다행스런 일.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거수 여덟그루가 있는 북쪽 성곽 약 20여m엔 그냥 맨흙으로 성곽길이 조성되어 있다.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는 관리소측의 얘기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이 구간에도 성곽보호와 관광객의 보행 편리성을 위해선 콘크리트 덧 씌우기 공사를 하는게 조금 더 낫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성곽 속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여덟그루의 노거수 또한 낙안읍성의 큰 자산입니다."

성곽보호를 위해 일하는 낙안읍성 관리소 김형욱씨의 말이다. 콘크리트로 덮어 버리면 600여년 이상 된 보호수가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덧붙인다.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자신들이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그냥 맨 흙으로 놔 두면서 나무를 살리고 싶다고 했다. 성곽위가 맨흙이면 자주 손을 봐야 함을 감수하겠다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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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가 있는 북쪽 성곽길 약 20여 미터는 그냥 맨 흙으로 길이 나 있다 ⓒ 서정일

많은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린 읍성관리소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좀 더 나은 행정은 이렇듯 자신들이 힘든 부분을 눈가리고 아웅하듯 그저 간편한 방법으로 메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수하면서 봉사하는 정신에서 나올 것이다.

노거수 여덟그루가 있는 북쪽 성곽길이 왜 그냥 맨흙으로 덮여 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풀려 기쁜 마음으로 다시 한번 그 길을 걸어봤다. 흙의 감촉이 훨씬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그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노거수들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도 느꼈다. 노거수 하나 하나를 어루만지면서 잘 자라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런데 일곱째 나무를 만지며 살펴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표면에 칼로 새긴 듯한 낙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이가 살아있는 보호수에 이런 낙서를 했단 말인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한편에선 살리고자 자신들의 힘듬을 감수한 조치를 내리는데 한편에선 이런 몹쓸 짓을 한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식밖의 일이었다. 편치않은 심정으로 관리소에 노거수의 낙서에 대해 얘기하고 재발방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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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참고 있는 노거수 앞에서 우리의 관광행태를 반성해본다. ⓒ 서정일

문화재 관리가 방문객들의 의식이 바로 서지 않으면 참으로 어렵다는 걸 깨달은 사건이었다. 한편에선 복원하고 한편에선 훼손하는 관광문화, 부끄러운 일이다. 노거수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2004년이 넘어가기 전에 우리의 관광행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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