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닭 울음에 초인의 꿈을 꾸다

[북한강 이야기44] 수탉은 오늘 새벽도 홰를 친다

등록 2004.12.31 01:45수정 2004.12.3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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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이 세 번째 홰를 치고 있다. 자(子)시에 한 번, 축(丑)시에 또 한 번, 인(寅; 03-05)시에 세 번째 날개 짓을 하며 새벽을 열어놓는다.

인시에 듣는 닭 울음소리는 어느 때보다 장하고 신비스럽다. 새벽닭 울음소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하늘과 땅을 열어 천지개벽(天地開闢)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처럼 듣는 닭울음소리건만 오늘 아침엔 더욱 유별나게 귓밥을 맴돈다. 을유(乙酉)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새로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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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을 거느리고 다니는 수탉의 늠름함. 경계심이 대단하다. ⓒ 윤희경

새벽닭 울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영묘(靈妙)한 힘을 불러일으킨다. 수탉이 날개를 활활 털며 새벽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설계하며 에너지를 몰아 넣는다.

그것이 무엇이 되든 오늘의 알찬 삶을 위하여 간구(懇求)를 하며 새로운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어느덧 밤새 쌓였던 악몽들이 서둘러 슬슬 꽁무닐 빼 도망을 치고 몸과 마음이 하늘을 날 듯 가벼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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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의 믿음, 먹이를 발견하면 물었다 놨다 암탉을 부른다. ⓒ 윤희경

닭의 해가 열리고 있어 아침이라도 잘 차려 줄 양으로 닭장 속으로 들어가 보니 암탉이 알을 낳으려 추위를 녹이며 몸살을 앓고 있다.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밥값을 하느라 날마다 따끈따끈한 알을 뽑아내 잔잔한 기쁨을 안겨 주고 있으니 신통하고 대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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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 속의 알, 볼수록 앙증맞고 대견하다. ⓒ 윤희경

암탉이 알을 낳으려 둥우리 속으로 몸을 숨길 땐 웅크리고 앉아 목을 자분자분, 머리를 갸웃갸웃 주변을 살펴본다. 그 모습을 훔쳐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알 하나 쏙 떨구고 '나 알 낳았다' 목줄이 튀어나오도록 꼬액 꼬액 악을 쓴다. 그러면 장 닭은 이 때다 싶게 뒤꼬리 깃을 한껏 치켜세우고 목을 죽 뽑아 올려 볏 날과 양 턱받이를 흔들어댄다.

우아한 몸짓과 발놀림으로 구우 꾸우 꾸욱 암놈을 불러 먹이를 물었다 놓았다 땅바닥에 굴리며, ‘알 낳느라 수고했어, 어서 먹어 어서' 하며 수컷 나름의 아량을 한껏 뽐내 본다. 허나 시간이 좀 지날라 싶으면 갑자기 눈을 휘 번득거리며 암탉 주위로 옆걸음질을 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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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알을 품고 있다. 또록또록 눈을 굴리며 알을 지켜낸다. ⓒ 윤희경

'내일 또 나야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냅다 암놈 벼슬을 물고 등허리께로 올라탄다. 이내 파르르 목을 떨며 내려와 ‘아, 시원하다’ 양 날개를 훨훨 털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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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낳은 알, 따끈따끈하게 손바닥을 녹여낸다. ⓒ 윤희경

날카로운 장닭 발톱이 닿았던 날개 죽진 느닷없이 기어올라 기세를 부리는 바람에 깃털이 듬성듬성 빠져 속살이 벌겋게 드러나 볼썽사납다. 하지만, 오늘도 암탉들은 시간만 있으면 걀 갸알 알가지 소리로 수탉의 귀를 꼬드기며 응석을 부리기 바쁘다.

닭은 다섯 가지나 되는 덕(五德)을 가지고 있다.

머리엔 찬란하게 빛나는 볏을 가지고 있으니 문(文), 날카로운 발톱으로 땅을 파 먹이를 찾아내고 내치기를 잘하니 무(武), 적을 만나면 뜨거운 피를 흘리며 맹렬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니 용(勇), 밤낮으로 때를 맞추어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 먹이가 있으면 반드시 나눠 먹을 줄 알아 인(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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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알을 낳는 갈대숲 ⓒ 윤희경

그래서일까. 닭띠들은 의리와 신념이 강하고 이상과 모험을 즐기는 몽상가의 기질을 타고난다 했으니 주목하여 볼 일이다.

지금 또 양 날개를 훨훨 털어 내며 시원스레 홰를 쳐대는 장닭 울음소리를 듣는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 1-5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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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수리부엉이 출현. 수탉을 중심으로 숲속에 몸을 숨긴다. ⓒ 윤희경

세상이 하도 시끄럽고 하수상하다 보니 초인(超人)이 그립다. 언제쯤 이 광야에 새벽을 몰아붙이며 백마를 타고 오는 바람 같은 사나이를 만날 수 있을까. 오늘도 산골 마을의 여명을 알리는 수탉은 저리도 홰를 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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