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담긴 재일조선인의 독서 편력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

등록 2004.12.31 02:12수정 2004.12.3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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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소년의 눈물> 표지 ⓒ 돌베개

한국 미술계에서는 익숙할 테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서 개인적인 성찰이 빛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끌었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이야기한 <소년의 눈물>로 한국 독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요즘에 ‘독서’를 이야기하는 책이 봇물 터지듯 시장에 쏟아지는 와중에도 유독 그의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며 겪었던, 고달플 수밖에 없었던 그의 어린 시절이 책 이야기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글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독서’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을 때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작품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소년의 눈물>은 다르다. 사실 이 작품에서 언급하는 책들은 국내 독자들이 읽어보는 것부터가 어렵고 또한 그것은 <소년의 눈물>이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소년의 눈물>은 서경식이 성장해가면서 만났던 책들에 대한 감정을 감상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1995년 일본 에세이스클럽상을 받을 만큼 인정받은 저자의 글 솜씨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재일조선인이 일본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혼란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생각을 찾기 위해 발버둥쳤던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주체적인 독서’를, 두 개의 조국을 갖고 있던 경계인에게서 찾아보는 것이 아마도 <소년의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소년의 눈물>은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년기에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슷한 부류의 책과 달리 이 책의 특징은 저자의 ‘살아온 길’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는 점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부터 친구나 이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렇기에 이 작품은 서경식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서경식의 ‘살아온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이코’가 ‘난킹 대장 무찌른다’는 얘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여 중국 명나라 군대와 전투를 벌였던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찬찬 병사’란 중국 군대를 멸시하는 호칭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테니, 이 끝말잇기 노래는 흡사 일본의 대외 침략 역사를 한가락 노래로 통관해버린 듯 하다. 조선인인 나는 이런 사실은 상상도 못한 채 이 노래를 불렀고, 또 그것이 유년기의 내 기억 속에 스며들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얄궂은 일이다. - <소년의 눈물> 중에서

<소년의 눈물>에서 저자가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조선인의 피를 가졌음에도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된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서 나온 슬픔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또래들이 한국의 위인전을 읽고 있을 때, 저자는 일본에서 일본말로 된 타국의 위인전을 읽었다. 또한 일본의 또래들이 일본의 위대함 운운하고 있을 때, 저자는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민족학급 주위를 서성거려야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존재해야 했던 경계의 위치는 사라지지 않았고 '주홍글씨'처럼 저자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저자에게 책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지금 독서 편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모두 그에 따른 결과였으리라.

아프리카 대륙의 한 귀퉁이에서 울려퍼진, 이 놀라운 한 흑인 지성의 호소는 나를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자신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소외의 상황을 의식하는 일이야말로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전진이란 다름 아닌 답답하고 옹색하게 굴절된 일상에서 광활한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인적 인간의 승리.” 일본사회 한 구석에서 끙끙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재일조선인인 나 역시도 그 승리의 한 자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소년의 눈물> 중에서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뜻을 구현하려 했던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그의 작품 <소년의 눈물>은 비슷한 부류의 책들과 다른 ‘울림’이 담겨 있다. 일본 사회에서,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도 소수자로 존재하면서 겪었던 그의 감정들이 뒤엉켜 만들어진 이 울림은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될 것이다.

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돌베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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