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올리고 싶은 올해의 5대 뉴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채워주세요

등록 2004.12.31 08:40수정 2004.12.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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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고 각 언론사마다 나름대로 올해의 10대 뉴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유영철의 엽기 행각과 밀양에서의 집단성폭력 등 선정된 뉴스들이 대부분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들 뿐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어지러운 정치현실과, 솥뚜껑을 내팽개쳐야 했던 어려운 경제난 때문에 다들 2004년이 빨리 가버리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2004년 우리를 기쁘게 했던 좋은 소식도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기분 좋은 소식만 기억하면서 보내자 싶어 제 나름대로 올해의 5대 뉴스를 선정해 봤습니다.

<1> 어느 장애인의 두 번째 수능시험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허광훈(38)씨는 지난 해 수능 시험을 치르던 중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에 항의해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그 결과 올해는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편의시설을 갖춘 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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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훈씨 ⓒ 오마이뉴스 이승욱

수능 시험장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이끌어 내기 위해 허광훈씨는 자신의 삶에서 1년을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시험장의 편의시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구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천사 빵집 아가씨

지난 10월 거리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빵을 떼어 먹이는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습니다. 네티즌들은 사진 속 주인공에게 ‘천사 빵집 아가씨’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지요.

서울 시내 한 제과점에서 일하는 길지빈씨의 선행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재연되기까지 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눌 마음이 있는 사람이 나눈다는 것을 보여준 뉴스입니다.

길지빈씨는 올 해 마지막 날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3> 강의석군이 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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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군 ⓒ 오마이뉴스 김태형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학 대광고등학교에 다니던 강의석(18)군은 지난 6월 교내 방송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선언했습니다. 그건 지리하고도 힘든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1인 시위와 제적, 스승의 직위해제, 재판과 50일에 이르는 단식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일방적으로 전하려는 학교를 상대로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강의석군의 고난은 결국 대광고에 예배 선택의 자유를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더해 강의석군 개인적으로는 서울대 수시 합격이라는 기쁨도 함께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전 강의석군의 투쟁 과정에서 2000년 전 율법을 무기로 민중을 옭아매던 바리새인들을 나무라시던 예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예수가 부활한다면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합니다.


<4> 지관순양의 골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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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순양 ⓒ KBS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43번 울렸다는 골든벨이지만 그 날만큼 큰 울림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중학교에 들어가야 했던 지관순양, 근로장학생으로 가족의 생계를 거들어야 했던 지관순양이 쳐낸 귀한 골든벨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맹모강남지교’가 상식처럼 되어 버린 지금,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 잃지 않고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같은 처지의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지관순양에 대한 과한 보도가 학벌마저 세습되는 현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희망마저 없다면 삭막한 세상 무슨 힘으로 살아 갈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지관순양이 몽양 여운형기념사업회 사이트에 ‘나라가 위급해졌을 때는 현실에 저항하는 사람’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등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이니 아낌없는 박수도 부족할 따름입니다.

<5> 사랑은 인터넷을 타고

지난 11월 13일 <오마이뉴스>에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당신들은 아는가?'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임대료조차 나오지 않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은화(43) 시민기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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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가게 아줌마 분투기'의 주인공 이은화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넘어지면 일어나리라!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리라! 그래도 넘어지면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씩씩하게 닦고 다시 또 일어나리라!”는 그의 다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에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이 500만원을 넘었습니다. 삭막하기만 할 것 같은 넷세상에 사랑이 깃들어 있었음을 알게 해 준 사건입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또 하나의 사랑나누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에 하늘나라로 간 유진이’의 부모가 병원비가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오마이뉴스> 머릿기사로 소개되자 네티즌들의 온정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좋은 기사 원고료’를 이용해서 유진이 부모에게 도움을 준 네티즌이 하루만에 100명을 훌쩍 뛰어 넘었고, 은행계좌로 직접 입금하는 이들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네티즌의 힘으로 유진이의 장례가 제대로 치러지리라 믿습니다.


대부분 지긋지긋했던 한 해로 기억하는 2004년이지만 이렇게 되돌아보면 따뜻한 소식도 있습니다. 애초 10대 뉴스를 채우려고 했지만 나머지 5개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채워 주시는 것도 좋겠다 싶어 이쯤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기억하고 싶은 소식,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식들 많이 알려주시고, 내년에는 그런 소식들로만 가득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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