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아웃사이더
수많은 사건 사고들로 점철되었던 한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올 한 해의 사회적 화두들을 돌이켜보면 사랑과 폭력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 정리되어질 수 있다. 이웃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사랑의 틀 속에 정리된다면, 끝없는 정쟁과 사회 범죄들, 그리고 국제적인 전쟁과 분쟁들은 폭력의 틀 속에 포함된다. 사랑과 폭력이라는 이 이분법적 틀, 이 양극의 틀이 우리 사회에 고착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나 카레리나”를 끝으로 유명 소설가의 길을 접고 구도자의 길을 살기 시작한 레오 톨스토이는 세상의 이치를 깊이 관조할 수 있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 이르러 이 불합리한 이분법적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을 저술했다.
이 땅에 절대적 법칙이 있다면 그건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일 것이다.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절대적인 경외감을 칸트의 마음속에 심어 주었던 도덕률, 만일 그 도덕률에 의해 인간이 절대선을 지향하는 존재라면 인류 사회는 “사랑의 법칙”만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폭력의 법칙”이 존재함은 무엇 때문일까?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 그 원인이 있다고 톨스토이는 항변한다. 도덕과 지성의 존재자로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인간이 점점 그 존재적 가치를 상실하면서, 사회는 점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불평등 구조를 양산하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공포와 증오가 증폭되면서 이 세계는 점점 더 폭력적인 사회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을 들어보자.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고 있다. 혁명 세력이 정부에 대항하고 정부가 혁명 분자들에 대적한다. 피압박자들이 압박자들에게 저항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가 대립하고, 서양과 동양이 대결하고 있으며, 이 대립이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다.”
폭력의 법칙은 이미 톨스토이의 시대에도 보편적 사회 법칙으로 작용했다. 그 법칙은 권력자들에게만, 부르주아에게만, 비종교인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는 혁명가들이나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인들에게도 존재한다.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최고로 여기는 기독교 내부의 종교권력마저 이러한 폭력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평화주의자(a pacifist)로서 톨스토이는 일체의 폭력을 거부해야 한다고 설교한다. 종교적인 존재요, 이성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원래 사랑의 법칙의 지배 하에 있었다. 그런데 권력 구조가 형성되고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도그마가 확립되면서 대부분의 인류 사회에서 사랑의 진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아나키스트요 자유교회 사상을 지닌 톨스토이는 본질적 교리를 벗어난 일체의 사회적, 교회적 도그마에 대해 항변하면서 사랑의 법칙을 저버린 현실을 냉철하게 지적한다.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아무런 교회도 세우지 않았으며, 아무런 국가도 세우지 않았다”는 허버트 뉴턴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는 체제 유지를 위한 폭력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오직 예수의 사랑의 법이 높이 세워져야 함을 주장했다.
폭력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평은 단순히 권력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건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한 혁명가나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을 무기로 하는 것은 이미 진리를 저버린 행위이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간디의 “사타하그라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톨스토이의 평화주의는 간디의 비폭력 정신의 선구자적 견해였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투쟁을 무기로 하지 않는다면 대체 사회 변화의 힘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 물음은 톨스토이 자신의 물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은 “양심”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법칙이 지배하고 개인의 양심이 변화된다면 폭력의 법칙은 사라질 것이라는 저자의 답변은 오늘 우리 사회의 폭력과 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모든 폭력을 정죄한 사랑의 최고의 법을 지켜야 한다. 이것으로 자유의 제공이 가능하다.” (톨스토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자유를 꿈꾸는 인류에게 톨스토이는 말한다. 자유는 폭력의 법칙을 극복하고 사랑의 법칙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사람을 노예화와 무지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일은 혁명과 신디케이트와 평화회의 같은 것들에 의하여 획득될 수 없으며, 단지 우리로 하여금 폭력에 가담하는 것을 금지하고 폭력에 가담하는 자신을 향하여 깜짝 놀라 네가 왜 그 같은 행동을 하느냐고 질문하는 우리 각 사람의 양심에 의해서 획득될 수 있다.”
저자의 가르침이 우리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다가오는 새해엔 폭력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오만규 옮김,
아웃사이더,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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