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톱으로 깎아도 장승은 '정성'

[전래 장승 제작 참관기 - 하] 경북 문경

등록 2004.12.31 14:39수정 2005.01.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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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기사에서 완성된 남장승과 짝을 이뤄 세워질 여장승으로 깎여질 나무는 나이테의 모양으로 미뤄 남장승의 원목이 섰던 곳과 가까운 거리에서 자라던 길이 4.5미터의 46년생 대형 춘양목이다.

여장승은 처음부터 엔진톱(Chain Saw)을 사용하였다. 엔진톱은 벌목용으로 제작되어 투박하고 무겁긴하지만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 장승 제작 현장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전래된 도구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많이 쓰인다면 그 도구가 제작결과에 미칠 영향을 냉정히 검증하는 것도 의미가 클 것이다.

전래 장승의 제작에 엔진톱이 많이 쓰이는 것을 공론화하는 것을 제작자 이가락은 과히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수작업으로 만든 것과 기계톱으로 만든 것을 비교하고 싶다는 기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두 번째 여장승은 원목의 스케치 단계부터 기계톱을 썼다.

이런 검증 과정은 전통공예 제작현장의 전 분야에 많이 도입된 새로운 현대 도구들의 위상을 분명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본다. 제작 결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전래의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현대의 도구들을 무조건 도외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을 것이다.

사용상의 유불리를 떠나 전래의 도구와 제작과정 그 자체가 전통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므로 그 원형을 소중히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기자가 아는 한 소목장께서 선대로부터 전해져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옛 목공 도구들의 모양과 기능의 복원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그 한 예이다.

두 개의 장승이 완성된 후 비교해 본 결과 기계톱 작품과 수작업 작품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제작자의 시각으로 남의 작품을 보아도 그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귀질 등으로 어차피 원목에서 떼어낼 부분을 기계톱을 사용하여 제거할 뿐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기계톱을 사용하여 장승을 깎은 것이 아니라 기계톱으로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냈다고 해야 맞다.

도구의 차이가 완성된 장승의 조형적 차이가 아니라면 제작 단가를 30% 정도 낮출 수 있고 제작 시간도 30~40% 가량 줄일 수 있는 엔진톱을 써서 대중 보급을 쉽게 하여 장승 등의 전래 조형물이 보다 활발히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여장승 제작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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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대로 얼굴 분할하고 입 새길 곳 떼어내기. ⓒ 곽교신

엔진톱을 사용하여 가로로 세 줄의 톱자국을 내는 것으로 제작의 첫 과정인 장승 얼굴의 스케치를 시작했다.

망치와 끌로 시작하던 남장승의 경우와 같이 원목에 바탕 그림을 그리는 등 밑그림 일체 없이 모든 작업은 눈 감각에 의한 제작자 이가락의 머릿 속 구상으로 진행되었다.

톱자국 윗부분으로부터 이마, 눈과 코, 입이 새겨질 자리다. 벌목용으로 나온 것이 아닌 세밀한 조각까지 가능한 엔진톱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엔진톱으로 조각을 하는 것은 조각칼보다 더 어렵다는 제작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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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콧날의 윤곽 잡기 ⓒ 곽교신

눈썹이 그려질 이마를 살짝 따낸 곳부터 콧날을 파고 있다. 파여진 깊이 만큼 역시 기계톱으로 따낸다. 콧날을 원하는 깊이로 파낸 후 다시 톱을 사진처럼 비스듬히 세워 앞서 톱이 지나간 홈을 따라 가니 순식간에 비스듬한 콧날 경사면이 생겼다.

끌만 사용하여 파낼 땐 약 15분 이상 걸리던 일이 20여초만에 끝났다. 이렇게 깎아도 결국 마무리는 끌질로 일일이 다 해야 하므로 기계톱은 큰 끌로 제거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파낸다고 보면 될 것이니 '기계톱을 쓴 장승은 모양이 제대로 안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선입견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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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면 떼어내기 ⓒ 곽교신

얼굴면을 만드는 이 과정을 투박한 기계톱으로 시도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았으나 맹렬히 돌아가는 벌목용 톱으로 제작자는 세밀한 부분을 잘도 깎아내었다. 기계톱의 절삭력은 대단해서 약간의 호흡조절 실수만으로도 한 줌씩의 나무살이 베어져 나갔다.

끌로 깎는 작업이 힘들고 더디긴 하지만 기계톱의 작업도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쉬워 보이진 않았다. 끌만 사용하여 깎는 장승은 정형이고 기계톱과 끌을 병용하는 장승은 비정형이라는 공식은 적어도 작업을 참관한 기자의 눈에는 선입견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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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새기기 ⓒ 곽교신

순식간에 나무 살이 깎이는 기계톱의 특성상 제작자는 매우 긴장된 표정으로 장승의 눈을 새겨 나갔다.

기계톱에 고도로 숙련되지 않으면 끌 작업보다 기계톱 작업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은 이 과정을 보면서 더욱 굳어갔다.

장승의 생명이라 할 수 있고 모양이 정교하여 끌로 깎아도 어려운 눈 부분까지 기계톱으로 밑작업을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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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톱으로 기초작업 완료 후 끌로 다듬기 ⓒ 곽교신

기계톱으로 거칠게 성형된 얼굴을 조각칼로 세밀히 다듬기 시작했다. 기계톱질이 원목의 필요 없는 부분의 제거에 불과하다고 볼 때 실질적인 장승 제작의 돌입이다. 콧날의 윗 부분 경사면은 첫 밑작업 때 기계톱으로 베어낸 부분이다.

기계톱 작업이 결국은 나무를 따내는 막끌질의 대체 작업이라고 볼 때 기계톱을 댄 장승은 처음부터 끌만으로 파들어간 장승보다 정성이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업은 실질적인 장승 깎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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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끌질이 완료된 얼굴 ⓒ 곽교신

거친 끌질의 일차 수작업이 끝났다. 눈, 콧날, 코 주름, 콧망울 등 장승얼굴의 기본형이 다 드러났다.

그러나 이 단계까지의 실질적인 얼굴 윤곽은 끌질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기계톱 작업의 결과이다. 맹렬하고 거칠게 나무살을 깎아나가는 기계톱날로 이 정도의 세밀한 윤곽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은 고도 숙련의 결과라 여겨진다.

기계톱으로 나뭇살을 파낸 것과 끌로 파낸 것은 시간의 차이일 뿐 정성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 지켜본 결과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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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다듬기 와 채색 ⓒ 곽교신

손으로 깎은 오른쪽의 장승과 기계로 깍은 왼쪽의 장승을 나란히 놓고 제작자와 발주자 문씨가 얼굴 마무리 작업 및 채색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주변에 지켜보던 이들도 한 가지씩 일을 거들었다.

흔히 정월 대보름날에 동네 어귀에 세우는 전래 장승의 제작에서는 장승 제작의 모든 과정이 마을 공동의 일이고 축제였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 각자 재주가 닿는 대로 장승의 각 부분을 다듬고 깎고 했던 것은 장승 제작의 기본이다.


발주자의 부인은 "우리 장승 화장하시네. 너무 예쁘시다"하며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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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쓰기 ⓒ 곽교신

비문은 장승의 상징이다. 발주자의 주문에 따라 이날의 비문은 가감선신(伽藍善神), 외호선신(外護善神)으로 결정되었다.

이 문구는 경남 하동 쌍계사 앞에 서 있던 이 장승의 원형에 써 있는 것과 같은 문구로 사찰에 악귀의 침입을 막는 주술적 의미가 들어있다.

흔히 장승하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쓰여진 비문을 보는 게 일반적이나 그것이 고정화된 비문은 아니다. 월드컵 때는 "오 필승 코리아"라는 비문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비문은 그 때 그 때의 소용에 따라 적절한 문구를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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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줄에 매달린 장승 ⓒ 곽교신

장승을 세우기 위해서는 상주에서 불러온 대형 크레인이 필요했다. 크레인 줄에 매달려 어두워져가는 공중으로 이동하는 대형장승의 모습이 이채롭다.

전래 장승의 경우 남정네가 지게에 지고 마을 뒷산에서 동네 어귀로 내려 올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소나무를 쓰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이렇게 크레인으로 세우는 작업 자체가 장승 세우기로는 생소한 모습이다.

땅거미가 깔릴 때쯤 시작된 장승 세우기 작업은 사방이 캄캄해져서야 끝났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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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앞에 선 문씨 부부. 오른쪽 여장승은 크레인과 시간 약속이 안맞아 입술 부분을 다 새기지 못한 채 세워져 며칠 후 사다리를 놓고 추가 작업을 할 예정. ⓒ 곽교신

장승이 세워진 발주자의 집은 3번 국도 바로 옆이다. 며칠 전에 개통된 중부내륙 고속도로도 집 가까이 지나간다.

3번 국도는 부산에서 문경을 거쳐 새재를 통해 서울로 통하는 주요 국도종단로이다. 영남 선비의 한양 과거길이었고 임진왜란 때는 소서행장의 주 침략로였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신작로"로 정비되어 수탈물자의 운반로로 이용된 3번 국도이다.

역사의 질곡이 깔린 이 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에 아름다운 장승이 세워졌다. 동네 어귀나 갈림목 또는 지명으로만 장승의 흔적이 남은 장승백이에 세워졌던 장승을 불문하고 장승은 길과 인연이 깊다.

"그저 장승이 보기 좋아서" 적잖은 돈을 들여 세운 아름다운 장승이니, 3번 국도를 오가는 길손들에게 장승이 반가운 눈인사를 준다면 길손들도 그것으로 "그저 좋겠다."

장승이 섰음을 알리는 장승 고사에서 "집안에 웃음이 많아졌으면"을 소망으로 빌었다는 발주자 부인의 소박한 말이 인상적이다.

이런 풋풋한 전통문화의 향수가 우리 것을 뿌리로부터 지켜내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을 굳게 믿는다.

장승은 그저 장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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