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는 왜 한국차를 조롱했나

[해외리포트] 영국의 방송문화와 자동차시장

등록 2004.12.31 14:24수정 2005.01.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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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내 방송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조롱하다시피 비평한 영국 BBC의 <톱 기어(Top Gear)> 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이 한국에 보도되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 네티즌의 제보로 한국 언론에 노출된 <톱 기어>의 한국산 자동차 보도 내용은 확실히 한국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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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보도된 BBC <톱 기어> 내용 일부.

그런데 이렇게 한국에 보도된 내용들은 세탁기와 냉장고를 조립해 만든 가짜 한국산 차에 대한 조롱 부분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었을 뿐, '왜 어째서' 한국산 차가 이처럼 심하게 조롱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보도가 나간 이후로 국내 분위기는 격앙되고 여러 언론들은 다양한 분석들을 만들어 내놓았다.

영국 방송의 조롱, 비아냥, 비판 문화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화 차이 때문에 어리둥절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번 BBC의 <톱 기어> 방송 프로그램을 논하기 전에 영국의 방송 문화를 미리 감안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락적 분위기가 넘치는 영국의 방송에는 조롱과 비아냥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BC의 <무슨 옷을 입지 말아야 하나 (What Not to Wear)>에 등장하는 두 여성 진행자들은 조롱과 비아냥을 입에 달고 다닌다. 출연자들을 상대로 "여태까지 이런 옷을 입고 사셨습니까?" 라는 멘트는 물론, 그간 출연자들이 입고 살아왔던 옷들 대부분을 쓰레기 비닐 봉투에 넣어 버리기까지 한다. 영국 방송에서 조롱과 비아냥은 상당히 보편화된 문화의 하나이다.

게다가 영국 TV에는 강도 높은 비평 프로그램이나 고발 프로그램도 종종 등장한다. 방송사가 어떤 문제를 고발하기로 작정하면 몰래카메라 사용은 예사이고, 아예 기자가 대상이 되는 상황이나 단체에 위장으로 잠입해서 1시간 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론, 이런 고발 프로그램이 나간 다음에는 여지 없이 뉴스에 이 문제가 등장한다.

비평의 대상도 특별한 성역이 없다. 왕실이나 정치권은 물론, 미국의 대통령이나 선거제도조차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이런 마당에 최근 유럽 시장 및 영국 시장에서 판매율이 늘어나는 한국산 차 역시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만큼 영국 시장에서 국산차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

BBC <톱 기어> 프로그램과 영국의 자동차 시장

<톱 기어>는 영국 내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려온 '자동차 비평 전문 프로그램'이다. 진행자들은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며, 성능에 대한 딱딱한 비평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오락적 요소를 가미해서 진행되고 있다. 오락쇼가 아니라 오락성이 가미된 자동차 비평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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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기어> 잡지

이 프로그램의 주 진행자이자 제작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제레미 클락슨은 자동차에 대한 독설을 내뿜기로 유명한데, 그동안 그를 통해 BMW와 푸조를 비롯한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의 차량들이 평가되었다. 또한 보조 진행자인 제임스 메이는 자동차 전문 비평가로, 리차드 해먼드는 방송 언론인으로 어느 정도 잔뼈가 굵다.

더욱이 이 <톱 기어> 프로그램은 TV 방송과 연계해서 영국인들에게 자동차 구매에 실제로 도움을 주기 위해 잡지까지 발간하고 있다. 잡지 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영국내에서 팔리고 있는 자동차들 대부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나와있으며, 성능별 세부 항목에 대한 별점과 이를 합산한 전체 평가 부문 별점까지 매겨져 있다.

한편, 영국의 자동차 시장은 온갖 브랜드들의 무한 경쟁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영국이 자력으로 자동차 생산을 거의 하지 못하는 탓에, 전 세계의 자동차들이 영국 내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자동차 비평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를 자력으로 거의 생산하지 못하는 탓에 자동차 소비 문화가 더 발달되어 있는 영국은 자동차 비평에 대한 문화가 발달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비평가가 반드시 영화감독이어야 할 필요가 없듯이, 자동차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소비를 계속하는 한 생산된 자동차들에 대해서 비평을 못할 이유는 없다. 원래 시장에서 생산자를 이해 못하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더 냉정한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방송의 조롱과 비아냥 문화를 감안한다면 이번 사건의 윤곽이 대충 드러난다.

<톱 기어> 프로그램이 보도한 내용은 무엇인가

BBC <톱 기어>가 한국산 차들을 조롱한 이유들에 대해서는 현재 추측이 무성하다. 도대체 <톱 기어>가 방송한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방송 프로그램 전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영국에는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 온 차들이 많은데, 이 차들 중에 진주가 있는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차들을 여러분(영국인)들이 사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차들이 유럽이나 일본에서 온 차들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는 것입니다.

기아 '리오'를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차는 폭스바겐의 '골프'차와 크기는 똑같지만 가격은 햄샌드위치만큼 저렴합니다. 3년 보증기간을 가지고 있는 이 차의 가격은 8000파운드 미만입니다. 차량의 핸들과 소음 때문에 문제가 있는 듯 하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구입하기엔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언덕에서 속력을 서서히 줄이면 문제가 있네요. (차 시동 꺼짐)

기아가 최근 보행자협회에서 추진하는 걷기 운동에 후원을 하고 있다는군요. 이 차를 가지고 있다면 걷고 싶을 겁니다. 리오를 가장 안 좋은 차로 생각하시겠지만, 아닙니다. 현대 '엑센트 1.5디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차는 9500파운드 정도 합니다. 그런데, 엔진이 문제인 것 같네요. 1.5디젤에 실린더가 3개밖에 없다는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 잘 안나갑니다. (스톱 와치 이용 측정)

'리오'는 실린더가 4개인데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엑센트'는 디젤인데도 실린더가 3개밖에 없어요. '리오'는 언덕에서 섰고, '엑센트'는 굽어진 길에서 섰습니다. 이 차를 현대 엑시덴트라고 부르는게 낫겠습니다. 여러 차들 중에서 두 차를 골랐는데 모두 별로 좋지 못합니다. 이제 보니, 태평양 연안 국가들 차들의 이름들도 상당히 괴상합니다. 내년부터 대우는 차회사 이름까지 시보레로 바꾼다네요.

다음으로 기아 '마젠티스'를 살펴 보겠습니다. 이건 중형차 '몬데오'만큼 크지만, 가격은 포드 '피에스타' 정도입니다. 가속이 좋다고 선전을 하고 있는데, 막상 시승을 해보니 가속이 그리 좋지도 못하고 연비도 별로 안 좋습니다. 소음이 많습니다. 싼 이유가 있습니다. 더 이상 시승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승자 내림)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산 차에 기대를 걸어 보겠습니다. 이 차가 로터스사와 기술 제휴가 되어 그런지 좀 나아 보입니다만, 핸들이 강화되었다는 차 광고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네요. 이 차들에 대해 핸들 테스트를 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핸들을 한쪽으로 꺾어 테스트 해봄) 말레이지아산 차 하나를 해 보았으나 형편 없습니다. 더 이상은 안 하는게 낫겠습니다.

이번엔 기아의 '피칸토'를 보겠습니다. 이 차는 6999파운드인데, 왜 이렇게 싼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인건비가 현재 그렇게 싼 편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 차의 재료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더군다나 한국차들이 싸다고 해서 나중에 부품 수리에 들어가는 추가 부품까지 싼 것은 아닙니다.

또, 반드시 잊지마셔야 할 게 있는데, 이런 차종의 중고차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게 내려가곤 합니다. (계속 가격표를 내려 붙이다가 1파운드를 차 유리창에 갖다 붙임)

마지막으로 현대의 자동차 '겟츠(국내명, 클릭)'를 살펴 보겠습니다. 이 차는 최근 꽤 잘 팔린다는군요. 가격은 9600파운드 정도 입니다. 이 차는 보기에도 정말 유럽에서 만든 차 같습니다. 여태까지 시승했던 차들 중에 제일 나은 것 같은데요. 엔진도 좋고 내부도 좋고 다 좋습니다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네요. 가격이 유럽차와 별 차이가 없네요.

우리는 처음에 차 27대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승한 이 차는 정말 좋긴 한데, 여전히 우리한테는 별로입니다. 죄송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가 여러분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가격이 같은데 꼭 겟츠를 사야할 필요는 없거든요.

대부분의 한국산 차나 말레이시아산 차는 장인정신이 거의 없이 만들어진 차 같아요. 마치 한국산 차는 냉장고와 세탁기로 만든 차 같습니다. (냉장고와 세탁기로 만들어진 차를 실제로 직접 보여주며, 치기어린 장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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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기어> 웹 사이트의 우수차 모음 리스트. 재규어 차량 바로 위에 현대가 보인다

<톱 기어>의 조롱조 비판 후에 나온 일침

분명 BBC의 <톱 기어> 프로그램은 한국산 차를 조롱했다. 하지만 이런 조롱조의 비평의 끝(장난 이후)에는 마지막 일침이 있었다. 현재 이 멘트는 국내 언론에 소개가 안된 부분이다.

"다음 코너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한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실은 한국이 차를 잘 만들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걸 이미 알고 있는 이유는 현대의 '쿠페'(국내명 투스카니)라는 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차는 정말 진짜로 좋은 작은 소형 스포츠카이고, 1만5000파운드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차는 구매하셔도 좋다고 추천합니다."

실제로 <톱 기어>의 웹사이트에 가 보면, 이 차가 우수 등급인 '멋진 자동차들(Cool cars)' 등급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면들을 종합해 볼 때, 영국의 'You get what you pay for (지불한 만큼 얻게 된다)’라는 속담은 적어도 영국인들에게는 확실히 의미가 있는 말인 것 같다.

현재까지 서구 시장에서 한국산 차는 가격이 저렴한 맛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해 왔으며, 이 전략으로 시장 판매율에 어필해 왔다. 이번 BBC의 방송을 통해 우리가 얻을 게 있다면 세계에서 지명도가 점차 높아지는 한국산 차가 더 이상 세계인들에게 '싸구려'로만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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