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은 '백화점'서 '맥가이버'를 만나다

해남 북평에서 '영전백화점' 운영하는 김병채씨 부부

등록 2005.01.03 20:03수정 2005.07.1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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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다. 슈퍼에서 볼 수 있는 과자류, 식품류, 주류, 간단한 생필품은 물론 농구공, 고추가는 기계, 리어카 바퀴, 수도, 호스, 농약 통 등. 마을 주민들이 필요하다면 먼 길 마다않고 달려가서 구해오고 직접 설치해 준다. 영전백화점 김병채씨가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는 북평의 맥가이버이자, 가제트 형사인 셈이다.


목포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목포상고를 다니다 돌연 그만두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학교가 다니기 싫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땅 마지기쯤 가지고 있고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던 김씨는 그 뒤로 아버지를 도와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 시작했다. 김병채(58)·윤재순(60)씨가 운영하는 가게는 동네슈퍼지만 '백화점'이다. '영전백화점'이라고, 북평 일대에서는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대형백화점이다.

a 해남 북평 영전에 도로변에 위치한 '영전백화점'.

해남 북평 영전에 도로변에 위치한 '영전백화점'. ⓒ 김준

개도 물고 다녔던 오천 원짜리

구멍가게가 가장 번성했던 시절은 김농사(김양식)가 돈이 되었던 1970년대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인근 남전마을까지 포함해 영전일대는 170여 호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300호가 훨씬 넘었다. 이렇게 번성하자 가게도 조그만 시골에 16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4개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모두 간단한 생필품에 막걸리를 파는 가게였다. 지주식 김발로 현금을 자주 만지는 탓에 돈을 모을 줄 모르고 생기는 대로 소비하였으며, 마을에 개들도 오천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돈이 흔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탓에 아이들이 없고, 과자소비도 줄어들었다. 노령화되면서 술소비도 줄어들었다. 김농사가 잘 되던 시절에는 곧잘 술을 먹던 사람들도 대부분 술을 끊은 지 오래이다. 당시 바람이 불거나 물때가 맞지 않아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주민들은 가게에서 술과 화투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외상으로.


이렇게 해서 얼마간 모든 돈으로 광주에 집을 샀다. 전남대학교 정문 인근에 1980년에 집을 샀는데 당시 '광주사태'로 군인들이 집 앞으로 오가고 대학생들이 데모가 끊이질 않아 다시 화정동으로 집을 옮기기도 했다. 이렇게 집을 마련한 것은 모두 자식들 교육때문이기도 했지만 김씨가 시골을 뜨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논이 4천여평에 밭이 3천여 평으로 인근에서는 땅을 꽤 가지고 있는 축에 들었던 김씨 부모님은 김씨가 도시로 나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50대에 귀하게 본 아들을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탓에서.


a 영전백화점에 두 주인 김병채 윤재순씨와 외손자

영전백화점에 두 주인 김병채 윤재순씨와 외손자 ⓒ 김준

'교동수퍼'를 '영전백화점'으로

지금 영전백화점은 큰 공사를 하고 있다. 이름도 없던 가게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옛날부터 부르던 동네 이름을 따 '교동슈퍼'라 했다. 가게 안에 하나 둘 상품이 늘어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만물상'이라며 이름을 바꾸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한 이름이 마을 이름을 따 '영전'이라 했고, 만물상 대신 '백화점'을 붙였다.

지금 백화점은 매장(?)을 더 넓히고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너댓 평은 넓혀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도 백화점 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잘 모르는 때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 판 가장 비싼 물건이 '고추가는 기계'란다. 이것도 어떤 주민이 와서 있냐고 해서 몇 대 가져다 놓았는데 다 팔고 1대만 남았다.

해남에는 마늘과 배추 농사를 많이 짓는다. 밭농사가 많은 탓에 스프링클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하나 둘 호스와 스프링클러를 찾는 통에 하나 둘 갖춰놓기 시작해서 이제는 인근에 스프링클러는 그가 직접 가서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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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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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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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노인들만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들이 필요하다면 뭐든지 구해오는 모양이다. 그리고 직접 배워서 전기도 고치고, 싱크대로 놓고, 냉장고도 손보는 맥가이버요, 가제트 형사쯤 되는 것 같다.

영전백화점의 단골고객은 땅끝 갈두 인근 통호리에서 완도로 들어가는 초입에 남창에 못 미치는 북동 서홍까지 십리에 이르는 10여 개의 500여 호 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이 구입하는 것은 옛날 식료품이나 과자류 등 슈퍼에서 찾는 것들이 아니라 생활용구류에 가깝다. 인근에 남창 등 비교적 큰 지역에 농협 마트가 있기는 하지만 영전백화점처럼 한곳에서 모든 것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김씨처럼 친절하지도 않고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대형마트에 비해서 정말 약간 비싸더라도 영전백화점을 이용한다. 게다가 인근 백일도나 화도의 섬사람들도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들이고 보면 영전백화점은 도심의 어느 백화점 보다 넒은 시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집을 비우면 대부분의 택배들은 이곳에 맡겨진다. 그리고 도회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택배도 이곳을 거쳐서 가는 경우가 많다. 논과 밭에서 나는 농산물은 물론 바다에서 나는 '굴' 등 해산물도 이곳에서 박스를 사서 포장을 하고 택배를 불러 자식들에게 보내진다. 최근 가장 많이 나가는 품목이 바로 '아이스박스'란다. 영전백화점에서 엿볼 수 있는 부모들의 자식 사랑의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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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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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든 며느리든 원한다면

김씨는 앞으로도 10여 년은 장사를 더 할 생각이다. 다행인지 최근에 땅끝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외지인들이 '백화점'을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며, 연말에도 손님이 많은 편이다.

보통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10시 무렵에 닫지만, 농번기철에는 1시간 연장근무해 5시에 문을 열고 11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피서철에는 이렇게 아무 때나 문을 두드리는 통에 시간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김씨보다 두 살이 많은 연상의 아내 윤재순(60)씨, 단 둘이다. 김씨가 출장이라도 나가는 날이면 교대없이 가게를 지켜야 한다.

옛날에는 명절 때 관광차가 4대나 고향을 찾을 만큼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나마 여름철 손님에 그쳐 관광객이 많지 않으면 장사하기 힘들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그런 김씨가 최근에는 인터넷에 빠져 있다. 초급은 넘어섰고 이제 중급을 준비 중인데, 곧잘 남창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는 걸 보면 김씨의 부인이 눈치를 주지 않는 모양이다.

김씨는 혹시 며느리나 사위 중에 시골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가게를 줄 생각이다. 2대째 이어지고 있는 '영전백화점'을 삼대에서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영전백화점은 해남 땅끝에서 남창으로 연결되는 77번국도 중간 쯤 영전리에 위치해 있다.

덧붙이는 글 영전백화점은 해남 땅끝에서 남창으로 연결되는 77번국도 중간 쯤 영전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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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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