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다시 생각한다

자유권 억압인가, 경제권 구제인가

등록 2005.01.04 10:04수정 2005.01.0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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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리에게 이중의 존재다. 핏줄을 나눈 한 동포이면서 한편으론 오랜 냉전체제의 강요에 의해 ‘적’으로 인식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북한의 이 이중성은 이제 한국사회를 넘어서서, 국제사회라는 확장된 무대에서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바로 ‘북한 인권’을 둘러싼 대립되는 시각들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의 식량권과 생존권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북한정권을 그대로 놔둔 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걸로는 북한의 인권이 개선될 수 없다. 독재 지배체제부터 바꿔야 한다.”

유엔, 각국 정부, NGO, 학계, 정치권 등 참여

지난 해 12월 1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 심포지엄’은 이처럼 엇갈리는 시각을 일단 재확인 한 자리였다. 그러나 유엔의 책임 있는 당국자를 비롯해, 미국·중국·일본·영국 등의 정부, 북한 관련 NGO, 학계,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 강당을 꽉 채운 150여 명의 방청객까지 참여해 여섯 시간이 넘게 진행된 마라톤 토론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균형 잡힌 대안을 내놓기 위한 고민을 서로 나눴다는 점에선 그 의미가 적잖았다.

2004년 7월에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에 임명된 위팃 문타폰은 이날 행사에 불참한 대신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북한 담당관인 헨드릭 스텐만이 낭독한 특별연설문에서 북한 인권의 현실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이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해 나올 수 없게 된 문타폰 특별보고관은 그의 연설문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인식의 지형도에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결과 북한은 4대 국제규약 가입국으로서 최근 헌법 형법 개정 등 인권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적·조직적 토대를 갖춰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타폰은 그러나 이어 더욱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북한이 시급히 이행해야 할 과제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


▲ 국제인권규약 가입에 수반되는 의무를 이행하고 ▲ 국제인권 기준에 반하는 법과 제도를 개혁할 것 ▲ 법치를 존중할 것 ▲ 탈북자 발생 대책을 마련하고 ▲ 국제기구 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할 것 등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표출된 다양한 의견들은 결국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진단과 그 현상을 낳은 원인,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에 있어 어디에 주로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결론이 갈라졌고, 그 편차도 때론 벌어졌다가 좁혀졌다가 했다.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을 가르는 것, 그리고 이날 심포지엄에서도 북한 인권문제의 핵심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논의가 집중됐다. 즉 북한 정부의 북한 주민에 대한 자유권 억압 문제가 더 중요한가, 생존의 어려움에 처한 북한 주민의 식량권과 경제적 권리를 우선할 것이냐의 문제다.

미국 오클랜드에 본부가 있는 ‘푸드 퍼스트(Food First)’의 크리스틴 안 경제사회권프로그램 팀장은 북한에서 한 농부와 만난 일을 소개하면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고 반문했다.

“평양 교외에 있는 협력농장에서 일하는 늙은 농부의 손과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두껍고 거친 손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분명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고통과 고난을 겪은 사람이었다.”

이어 그는 “자유권 침해가 심각한 건 사실이나 더 중요한 것은 죽어가는 사람의 생존권”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인권 주장은 모두 선인가.

국제적 가톨릭 구호단체인 ‘까리타스’의 캐시 젤위거 역시 40회 이상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얘기하면서 “식량을 협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식량을 주는 것은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고 공감을 표했다.

“현재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인권유린 사태를 볼 때 무엇보다 정치적 자유권에 편향된 경향을 벗어나 양면을 모두 고려하되 경제권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필요하다”(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는 ‘단계적 접근법’도 제시됐다.

북한 인권은 ‘인권에 대한 모든 주장은 과연 선인가’라는 국제사회의 오래된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문제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북한 인권의 내용만큼이나 ‘누구’에 의해 제기되고 있느냐는, 그 주체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심포지엄에서도 이는 미국의 ‘인권 공세’가 타당한 것인가라는 몇몇 토론자들의 지적을 통해 환기됐다.

“미국민은 자신들에게 인권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는 인권 관련 이중 잣대를 적용해 자국과 타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접근 방법에 차이를 두고 있다.”(카린 리 Friends Committee for National legislation 선임집행위원)

그러나 조성렬 위원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당초 내용보다 내정간섭적인 요소를 많이 줄인 것이며, 이 법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며 이를 비판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2004년 12월 1일 열린 북한인권 국제 심포지엄. 북한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북한인권을 자유권 억압의 문제로 볼 것인지, 생존의 어려움에 처한 북한주민의 식량권, 경제적 권리에 관한 문제로 볼 것인지로 나뉜다.
2004년 12월 1일 열린 북한인권 국제 심포지엄. 북한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북한인권을 자유권 억압의 문제로 볼 것인지, 생존의 어려움에 처한 북한주민의 식량권, 경제적 권리에 관한 문제로 볼 것인지로 나뉜다.김윤섭
“북한인권법의 제정은 단기적으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권리의식과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는 등 북한 인권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단 북한인권법뿐만 아니라 외부의 ‘충격’이 있어야 북한 인권이 개선될 것인가. 이는 지금 북한 사회가 정말 변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이 문제의 답도 상당 부분 달라진다.

요시다 야스히고 오사카대 교수는 “북한은 중국 베트남과 같은 경제개혁이 진행 중이며, 따라서 경제적으로 고립시킬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갖고 개혁 개방할 수 있도록 남한 및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그러므로 인권보다 인적 교류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방 국가, 북한 변화에 부정적인 시각 많아

이와 대척점에 선 것은‘북한 정권 교체론’이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북한 인권문제 해결의 전제이자 지름길은 김정일 정권의 소멸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위협을 하는데도 계속 지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북지원이 독재 탄압 구조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이 소멸되는 것이 획기적인 인권 개선과 국제지원 증대의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 될 것이다.”

북한이 진짜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대체로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는 공통적이다. 주한 영국대사관의 주디스 고프 정무참사관은 “북한 정부는 ‘비합리적 변명’은 안 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영국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한 ‘건설적 개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 인권 현실이라는 ‘현상’을 보기 전에 그 같은 결과를 가져온 구조적 원인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반박이 뒤따랐다.

“북한 역사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한국전쟁으로인한 분단의 역사를 먼저 인식하는 전제에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크리스틴 안 팀장)

다만 ‘개입’의 내용을 떠나서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이 이뤄졌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인 영향력’ 행사가 중요하다.”(문타폰)
“국제인권규범에 기초를 둔 (국제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이완희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아태지역 대표대행)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와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이금순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

북한 인권문제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탈북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도 새로운 시각이 제시됐다. 당 차원에서 중국 현지 조사를 한 바 있는 최규엽 위원은 “탈북자는 체제 이탈자가 아닌 경제유민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탈북자로 부르든, 유민으로 부르든 간에 그 숫자를 추산하는 것에서도 편차가 컸다.

최규엽 위원과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발제문만 보내온 양쳉밍 중국 인권연구협회 사무총장은 이를 3만 명으로 본 반면에 카린 리 위원은 30만 명으로 추정했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어떤 주장을 폈든, 어떤 입장을 취했든 간에 한 가지 분명히 일치했던 점이 있다면 그건 북한사회의 정확한 현실에 대해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휴먼라이트워치의 탐 말리노프스키 국장은 “우리는 80~90개 국가를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북한은 그 중에서 특히 독특한 나라”라고 털어놓았다.

“외부세계의 존재를 차단하는 데 성공한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매우 복잡한 대상이다.”

카린 리 위원도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가운데 북한 인권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사태들을 이해하기 위해 신문보도와 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진 것에 비해 그 ‘밖’에서 훨씬 더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라는 것이다.

현상에 대한 인식, 그 원인에 대한 상이한 해석은 자연스럽게 그 해법에서도 상반된 갈래로 나뉘었다. 즉 ‘붕괴’냐, ‘공존’이냐다.

“체제를 상호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최규엽 위원)는 입장에 맞서 “김정일 정권의 소멸이 인권 개선의 지름길”(공성진 의원)이라는 정권교체론이 제기됐다.

신중하되 적극적인 정부 역할 필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한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초점은 달랐다. 정봉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우려된다고 전제하고 “정부의 조용한 외교정책으로 탈북자 문제가 악용되고 방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남북한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면서 북한 인권이 정치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존권적 시각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신중하되 적극적인 역할을 펼치라는 것이다.

반면 공성진 의원은 “우리 정부가 조용한 외교라는 허명과 허구 아래 소극적으로 임하지 말고 대북 압박을 해야 한다”는 강공책을 주장했다. 이 같은 공방에 대해 이성훈 포럼 아시아 사무총장은 ‘다각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인권의 보편성을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개별성, 양자의 상호보완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나절에 걸친 토론이었지만 심포지엄이 끝난 뒤에도 토론자와 방청객 모두 할 말이 많이 남은 듯 아쉬운 표정이 엿보였다. 그만큼 국제적 주목과 논의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는 아직도 ‘입구’에서 격렬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의 방증으로도 비쳤다. 아직은 ‘출구’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1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1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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