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통쾌한 '뜨거운 감자'

2004년 마지막을 록밴드 공연과 함께

등록 2005.01.05 13:57수정 2005.01.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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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에 공연한다고 하니깐 주변에서 11시에 하냐고 묻더라구요. 흠… 저희도 놀아야죠. 이제 마지막 곡입니다. 여기까지는 저희와 함께 즐기시구요. 남은 시간은 가족과 함께 즐기세요. 땡큐우!"

밤 9시 30분을 살짝 넘어선 시간. 역시나 어눌한 말투의 김C 엔딩 인사가 끝나고 마지막 곡을 위한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2월 31일 서울 홍익대 앞 클럽에서는 '뜨거운 감자'의 단독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뜨거운 감자' 구성원들
'뜨거운 감자' 구성원들뜨거운 감자
'뜨거운 감자'는 보컬 김C(본명 김대원)와 기타에 하세가와 요오헤이 그리고 베이스에 고범준으로 구성된 록밴드입니다. '여의도의 꽃들은 좋겠네'로 2000년에 데뷔한 '뜨거운 감자'는 최근 보컬 김C의 방송 활동으로 더 유명세를 탄 밴드입니다.

사실 저는 음악에 무지한지라 '뜨거운 감자'의 음악은 들은 적이 없었고 전혀 정보도 없이 우연한 기회에 이 공연을 접하게 되었답니다. 아! 그런데 굉장히 기분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뜨거운 감자'는 생각처럼 시끄럽거나 요란한 그룹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노래하는 꾼들 같았습니다. 김C의 목소리는 약간 건조한 감이 있었는데 그게 더 매력적이었고요. 방송에서 김C가 보여줬던 어눌한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연주를 잘하는 실력 있는 그룹이었습니다.

특히 노래 가사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흔한 사랑얘기 하나 없이 얼마나 재밌고 유쾌한 노래를 만들었는지….


저도 풋사과를 굉장히 좋아해서 두 개 이상을 와삭와삭 베어먹는답니다. 제가 얼마나 풋사과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면 깜짝 놀라실 텐데요. 이 노래를 듣고는 정말 공감대를 느껴 기뻤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좋을까? 너무 파래서 깨어 물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생각만 해보다 군침이 한 가득히 보고만 있어도 풋내음이 나네요
정확히 반으로 쪼개놓고 보면 아직은 덜 익은 속살이 너무 하얗게 보여요
씨앗도 아직은 검은색이 아니죠 단 하나 먹으면 배가 아플 수 있죠
내가 얼마만큼 풋사과를 좋아하는지 아마 알게 되면 모두 깜짝 놀랄 거예요


- <풋사과> 중에서

서른 살을 누가 먼저 노장이라고 불렀는지 만나게 되면 누가 됐든 혼내줄텐데
맞는다고 끄덕여도 그건 아니라고 고갤 젓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 <잡담> 중에서

똑같은 얼굴 똑같은 생각 얼마나 오랫동안 주는 대로 먹었나
튀어나온 돌 정 맞는다고 얼마나 오랫동안 눈치만 보고 사나
세상은 넓고 먹을 건 많고 이대로 늙어가긴 죽기보다 더 싫고
할아버지가 되도 멋있는 할아버지 나와 함께 춤을 추자 어화둥둥 내 사랑
맛좀봐라 맛좀봐라 맛좀봐라 맛좀봐라 뜨거운 감자 맛을 보란 말이야

- <맛좀 봐라> 중에서


서은희
통쾌한 가사들을 맛보는 재미도 있었고 핫 뜨거운 감자처럼 뜨겁거나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갓 구운 감자처럼 구수한 느낌이 도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연이었습니다. 미친 듯이 흥이 나거나 신나는 공연이 아니라 잔잔한 가운데 자연스레 즐거워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줄곧 힘줄이 터져라 열창을 하던 김C는 마지막 곡을 부르면 갑자기 껑충 뛰어오르면서 무대를 장악했습니다. 아! 그 비상하던 모습이란. 과연 운동화를 신고 무대 위에 있으면 나도 저렇게 뛰어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순간 몸을 움츠려 천장까지 치고 오르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클럽 공연은 첨이었는데 사실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장장 두 시간 동안 스탠딩 공연이었는데 무대 앞에 자리잡은 젊은 피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팔다리와 허리가 쑤셨답니다. 급기야 바 옆에 주저앉아 음악을 즐기는 수밖에…. 그러나 눈 높이를 달리한 클럽의 모습은 또 달랐습니다. 가볍게 리듬을 타는 젊은 몸짓들도 멋졌습니다.

장르를 파악할 수도 없는 새로운 음악들과 신선한 얼굴들. 모든 새로운 것들은 접하는 것은 항상 유쾌한 일입니다. 2004년 연말을 장식해 준 '뜨거운 감자' 공연은 그런 면에서 유쾌하면서 가슴도 따뜻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굳이 언론에서 보여주는 주류 공연들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참 많은 공연들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보다 문화적으로 풍만해지는 사람들이 되셨음 좋겠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클럽에 가득 찬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치자 김C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 극장은 다 좋은데 퇴장하는 곳이 없어요. (긁적긁적 머뭇머뭇)
뭐 텔레비전도 아닌데 당황한 척하면서 한 곡 더하죠. 감사합니다. 땡큐우. 땡큐우."

인생과 음악에 퇴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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