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정씨의 집에서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임의로 물건 100여점을 경찰서로 싣고 갔다. 사진은 피해자 가족이 되돌려받는 과정에서 차에 물건을 실어 놓은 장면인권위 자료사진
사건 조사에 착수한 지 석 달 정도 된 10월 말. 서울구치소에서 피진정인인 C경장과 피해자인 정씨를 모두 불러 대질조사를 벌였다. 두 사람의 주장은 여전히 엇갈렸다. C경장은 주요 혐의 사실에 대해 대부분 모른다거나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했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이에 정씨가 격분해 한때 두 사람이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다.
11월엔 피진정인이 근무하는 서초경찰서를 방문해 피해자가 조사받았던 사무실과 유치장 등을 확인했다. C경장이 피해자의 멍든 허벅지를 찍은 사진이 다른 곳에서 찍은 엉뚱한 사진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주장해 사진 속 배경과 현장을 대조해 볼 필요가 있었다. 대조 결과, 사진 속 배경과 실제 유치장이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C경장의 발뺌도 여전했다. 경찰서에서 C경장은 “국가인권위 조사관이 범죄자인 정씨의 말만 듣고 정씨를 부추겨 사건을 만드는 것 아니냐”면서 이로 인해 자신이 괜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에 덧붙여 “그러한 사실에 대해 국가인권위 감사관실 등에 신고할 수 있는지”도 물어 보았다. 은근한 협박으로 들렸다.
사건 조사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정씨를 만났던 두 명의 변호사에게 당시 목격한 사실을 듣는 것으로 종결했다. 조사보고서를 작성한 후, 11월 말 소위원회에 이 사건을 상정했다. 소위원회는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를 전원위원회에 상정했다.
해를 넘겨 2004년 2월에 진행된 전원위원회에서는 피진정인 C경장을 출석시켜 직접 진술을 청취했다. 피진정인의 위법 행위에 대한 사건이고 또한 결과에 따라 피진정인의 신분에 큰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어 회의장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위원들의 질문에 C경장은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전원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확보된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C경장을 가혹행위, 불법 압수·수색 및 긴급체포 요건 위반 혐의로 검찰총장에게 고발했다. 아울러 C경장의 이런 불법행위에 가담한 세 명의 경찰관 및 이들의 직속상관을 경찰청장에게 경고조치를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가해자, 피해자 상처 치유와 반성 필요
검찰총장에게 피진정인을 고발하긴 했으나 그 결과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담당 검사가 두 차례나 바뀌면서 사건처리가 늦어졌다. 그 사이에 경고조치를 권고한 네 명의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소속 기관장으로부터 계고조치가 있었다.
검찰총장에 고발 조치한 지 약 8개월이 흐른 지난 10월 말,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한 장의 고발사건 처리결과 통지서가 날아왔다. 국가인권위가 고발한 C경장(피의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위반(독직폭행) 혐의로 정식재판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특가법상 독직폭행은 벌금형이 없어 법원에서 무죄 또는 선고유예의 판결을 받지 않는 한 경찰관의 신분을 잃게 된다.
한편으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도난 사건을 조사할 때 피해자를 대하는 과정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아니 나중에라도 솔직하게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했더라면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하게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흔히 사람들은 처음 실수한 사실 그 자체보다는 나중에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더 큰 실수를 범하곤 한다.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기보다 회피하거나 그것을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나 재력을 통해 무마하려 할 때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과정을 비롯한 법 집행과정에서 인권 침해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부주의나 인권의식의 결여로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면 가해자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1월호에 실린 '조사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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