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붉은 로자', '혁명의 독수리',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인류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금까지 기억되는 몇 안 되는 사회주의 혁명가의 한 사람인 로자 룩셈부르크를 이르는 말이다.
지난 9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 사망 86돌 추모식이 열렸다. 1만여명의 순례자들이 1919년 1월 15일 독일 혁명의 와중에 우파 군인들에게 암살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의 무덤을 찾았다. 매년 1월 둘째 일요일 베를린 외곽 프리드리히스펠데의 '사회주의자 묘지'에서 거행되는 이 추모 행사에 모인 순례자들은 두 사람의 무덤에 '붉은' 카네이션을 바쳤다.
로자는 유럽 사회주의 운동사에 우뚝 선 걸출한 혁명가였다. 폴란드인, 유태인, 다리를 저는 장애인, 여성이라는 4중고를 뚫고 그녀는 당시 유럽 최대의 노동자 정당인 독일사민당의 지도부로 단숨에 솟아오른다. 투표함을 둘러싼 전투에만 몰두하며 개량화의 길을 걷던 사민당의 노선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베른슈타인과 벌인 치열한 '수정주의 논쟁'은 로자에게 맑스주의 이론가로서의 드높은 명성을 안겨 준다. 그녀는 특히 대중의 동의와 자발성을 강조하며 레닌의 '위로부터' 준비된 혁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