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퍼주기나 하고..."

<미국여행기 3>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미국 교민들의 정서

등록 2005.01.14 02:50수정 2005.01.1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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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유태인 여인이 랍비에게 물었다.

"나는 아기에게 친정아버지 이름을 주고 싶은데 남편은 시아버지 이름을 주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친정아버지 이름은?"
"야곱."
"시아버지 이름은?"
"야곱."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시아버지는 도둑이었으나, 친정아버지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아무 문제없다. 아이가 자라서 정직한 사람이 되면 외할아버지 이름을 받은 것이고, 도둑이 되면 친할아버지 이름을 받은 것이다."

크리스천이란 호칭은 교인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순결하며 성실한 초기 교인들에게 교인 아닌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하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호칭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이냐다. 우리는 참 크리스천인가?


미국 여행 여섯째 날 일요일, 동생네가 나가는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들은 설교의 요지다.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고 순결하며 성실한 크리스천인가? 몹시 찔린다.

거대한 협곡
거대한 협곡최동욱

일곱째 날, 아들을 자신의 손자처럼 아껴주던 헬렌 여사를 만났다. 아들은 영어습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학 처음부터 미국교회를 다녔는데 헬렌 여사는 그 미국 교회에서 만난 할머니다. 내가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만나는 것이지만 차를 반납하고 없어 헬렌 할머니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헬렌 할머니는 우리 부자를 만나려고 세차까지 했다고 한다. 점심 한 끼 대접한답시고 오히려 할머니를 귀찮게 하는 것 같다.

헬렌 여사는 7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건강하고 활기찼다. 아들과 헬렌 여사가 다정한 할머니 손자 사이처럼 웃음꽃을 피우는데 나는 거의 알아듣지 못하니 답답하다. '부족한 점이 많은 우리 아들을 그동안 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를 아들 입으로 통역하게 하려니 영 어색하다. 몇 번의 해외여행에도 영어 못해서 기죽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는 서툰 영어가 몹시 불편하다.

유럽에서 '너희는 우리말 하나도 못하잖아'라며 용감했고, 몸짓을 섞어 필요한 단어만 나열하는 영어를 쓰면서도 아내한테는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아들 앞에서는 영어를 못 쓰겠다. 아내보다 아들이 더 어렵다.

점심을 마치고 헬렌 할머니의 집으로 갔다. 아담한 2층집이 정원의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1층은 온통 할머니의 작품으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 자신을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할머니의 카드를 받고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짐작했는데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할머니에게서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만족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남편과 오래 전에 사별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건강문제로 요양 시설에 있다고 한다. 이 외로운 할머니를 활기차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올까?

TV에서 인터뷰어가 많은 고생 끝에 이름을 얻게 된 한 화가에게 '다시 태어나도 그림을 그릴 것인가' 묻자 화가가 '내 만족만을 위해 모든 힘을 쏟을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 화가'라고 답하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작품들 중 수채화들을 카드로 인쇄하여 카드가게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카드 판매 수익보다는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만족감이 헬렌 여사의 삶의 동력으로 보인다.

내가 한때 미술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서 들은 모양이다. 내게 이제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았다며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권한다. 여사도 남편과 사별한 50대에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 재능에 이미 좌절한 바 있는 나는 할머니의 카드들을 한국에서 소개해보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귀국하여 헬렌 여사의 카드 견본을 모 카드회사에 보냈고 관심을 나타낸 회사와 헬렌 여사가 연결되었다. 헬렌 여사의 작품이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다.)

우리의 서부여행계획을 알고 있던 헬렌 할머니는 쌍안경을 선물했다. 내가 들고 간 동대문표 티셔츠 한 장에 대한 답례였나 보다. 할머니가 우리 부자를 동생네 집까지 또 데려다주었다. 단지 같은 교회 교인이었던 인연뿐인데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학생을 친 손자처럼 아껴주는 미국 할머니가 참으로 고맙다.

매제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서부여행 계획이 나의 미국방문 기간 안에 들어 있다며 우리 부자 몫을 신청해줬다. 창조과학협회가 주관하는 '창조과학탐사여행'이다.

오후 다섯 시, 교회에 모여 저녁을 먹고 필라델피아 공항으로 교회 밴을 타고 갔다. 이륙시간이 8시 30분이었지만 세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60년대 시골 완행버스도 아니고 21세기의 미국비행기가 어찌 이러냐'고 투덜거렸지만 교민들은 덤덤하다. 미국인들도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기다린다.

일행인 교민들에게 "한국에서 비행기가 이 정도 지체되면 승객들이 항의하고 시끄러울 것이다. 지난 겨울 폭설에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들이 갇혔는데 도로공사의 대응이 문제였다고 시민단체가 소송했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가?"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활주로가 밀려 자주 이렇다."

소비자 권리의식 혹은 시민의식이 미국인들이 더 낮은 건가? 교민 중 한 사람은 '시민단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필라델피아 활주로 사정 '덕'에 교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고국에서 여행 왔다는 것을 알아본 교민들이 한국소식을 이것저것 물어왔다. 미국에 온 지 17년 되었다는 한 교민은 자신이 살던 서울 행당동과 대학시절 엠티 갔던 대성리로 시작한 이야기를 한국 사회문제로 옮겨갔다.

그는 TV에서 송두율 교수가 출옥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민노당 한복 입은 여자(김혜경 대표를 말하는 듯)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민노당을 공산당 비슷하게 이해하는 그는 한국이 공산화 될까봐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북한 퍼주기나 하고'라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감에 내가 '얼마나 퍼줬는지 아느냐'고 묻자 대답은 못했다. 그의 인식은 17년 전의 한국에 머물러 있었다.

일부 교민들의 정치의식은 그들이 떠날 당시의 한국 정치 상황에 그냥 멈춰 있는 듯 보였다. 20년 전에 떠난 사람은 20년 전의 한국, 10년 전에 떠난 사람은 10년 전의 한국 정치의식에 머물러 있었다. 군사정권시절의 의식 수준으로는 폭설에 대응 잘 못했다고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시민단체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테고,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에는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미국 교민들이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국내 국민들과 사뭇 달랐다. 일부 언론이 도드라지게 보도했듯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는 미국 교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은 듯했는데 그것은 미국 교민들만의 특별한 상황 때문으로 보였다.

미국 교민사회는 신분 사회다. 21세기 미국 땅에 무슨 '신분'이냐고 하겠지만 교민들은 신분 상승에 목숨을 건다. 교민의 신분은 불법거주, 노동허가, 영주권, 시민권 4가지다. 교민들에게 영주권은 생존권이다.

한 번은 저녁 예배에 간 매제가 밤늦게 돌아왔다. 장례를 치르고 왔다는 것이다. 교인 중 한 사람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가셨는데 영주권이 없어서 장자임에도 한국에 다녀오지 못하고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시신도 없이 장례를 치른 것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도리를 갖출 수 있는 '신분'에 아직 못 오른 것이다.

그 교인과 마찬가지로 영주권이 없는 매제는 이튿날 출근할 걱정도 않고 밤늦도록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영주권 스폰서인 치기공소 주인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주인은 몇 년째 한 치기공소에서 일하는 매제의 주급을 안 올려 줬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항상 면전에서 시계를 쳐다보고, 사적 전화는 못하게 한다. 서울에서 매제의 이모가 왔을 때 처음으로 하루 휴가(무급)를 얻으려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매제는 그동안 주인에게 받은 모멸감 때문에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스폰서는 돈만 알고 인정 없어도 근본이 악한 사람은 아니니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변호사에게 많은 돈(보통 3만불 정도)을 주고 구한 스폰서에게 임금을 떼이기도 하고 스폰서가 부도를 내버려 몇 년을 헛고생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하소연 할 데조차 없는 것이 영주권 없는 교민들의 처지다.

스폰서를 바꿔도 되지만 기한이 차서 영주권 심사를 받을 때 이민국에서 이전 스폰서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싸우고 헤어진 스폰서가 서명해줄 가능성은 없으므로 스폰서에게 대드는 것은 영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매제는 영주권 없는 교민은 스폰서의 '노예'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미국 교민들이 한국 정치세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연히 '반미냐 친미냐'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교민들은 '교통사고'로 죽은 여중생을 위해 촛불 드는 시민들을 이해할 수 없고, '반미면 어떠냐'고 말했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미국 교민들의 현 정부에 대한 정서는 이런 배경과 함께 이해하면 좋겠다.

브라이스캐니언
브라이스캐니언최동욱

여덟째 날,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2시간밖에 못 쉬고 아침 일찍 버스에 올랐다. 5,6시간은 잘 수 있던 일정이 필라델피아 공항 사정으로 그리 되었다. 처음 보는 사막과 낯선 지형들이 밤 샌 피곤도 잊게 한다. 더구나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창조과학회' 소속 선교사가 가이드를 맡아 새로운 지형이나 지층을 창조과학 입장에서 알기 쉽게 설명해주니 밀도 높은 탐사여행이 된다.

얄팍한 상술로 무장한 일반 여행사의 가이드에게서 찾을 수 없는 선교사의 겸손한 헌신은 감동적이다. 한 가지라도 더 보여주고 가르쳐 주려는 젊은 선교사의 열정이 보기 좋다. 자신의 일에 신념과 열정이 있고 겸손하기까지 한 젊은이는 아름다운 법이다.

자이언캐니언과 브라이스캐니언을 돌아보았다. 자이언캐니언은 웅장하고 브라이스캐니언은 아기자기하다. 자이언캐니언이 남성적이라면 브라이스캐니언은 여성적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이었던 장소들이 연이어 나타났으나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한국 관광객은 거의 만날 수 없다. 너무 외진 곳이라 그런 모양이다.

25년째 미국에 산다는 한 교민이 "이런 거 한국에 하나만 있어도 관광수입에 크게 도움 될 텐데 왜 미국에만 이런 볼거리가 외진 곳까지 널렸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미국 시민권을 가졌어도 그는 한국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짧은 미국 여행에서 만난 몇몇 교민들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교민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교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더 밀접해져서 미국 내 자신들의 입장이 강화되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짧은 미국 여행에서 만난 몇몇 교민들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교민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교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더 밀접해져서 미국 내 자신들의 입장이 강화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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