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청산은 어려우니까 진실만 규명하자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는 판"이라며 "이 것도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싶고"라는 그의 말에선 비장함이 느껴졌다.이민우
- 올해는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이자, 해방 60주년 되는 해입니다.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텐데요.
“60년이라는 숫자 개념이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목숨 걸고 찾으려 했던 건 분단된 조국이나 친일파 천국이 아니라고요. 친일파가 청산된 조국을 찾으려 한 건데, 이건 보니까 독립 운동해서 나라 찾아 친일파한테 진상한 꼴이 된 거예요. 거기다 나라도 분단되고, 그렇기에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이뤄져야 진정한 해방이고 독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독립을 위해 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겁니다. 내가 광복절 행사 같은 데 안 가잖아요. 뭘 기념하겠다는 거냐는 거죠. 그건 순군 선열에 대한 모욕이고, 독립운동가가 자기 양심 버리는 거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 선생님께서 친일파가 판을 치고, 애국인사들이 암살당하는 혼란 속에서 한 때 계룡산에 칩거하던 중, 1948년에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투옥되기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단정 반대 운동하다가 잡혀서 1년 반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었어요. 계룡산에 들어가 있다가 48년도에 5·10 선거할 적에 선거란 게 어떤 건지 궁금해 내려왔는데, 보니까. 단독정부를 세우겠다는 거예요. 그럼 북쪽도 거기대로 정부를 수립할 거 아니예요. 그럼 우리나라는 영 두 나라가 되고 만다고, 독립운동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참여하면 큰 죄 짓는 거라고 봐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것이 그나마 그때 단독정부 수립할 때 협조는 안 했더라도 방관했다면 이건 독립운동가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졌다고 봐요.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투옥된 게 참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60년 아니라 6백년 지났어도 친일파 청산 안됐으면 해야
- 최근 몇 년간 독재정권 시기 발생한 의문사 진상규명을 비롯해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 사업까지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왜 자꾸 지나간 과거에만 집착하느냐며 정부의 과거청산 사업에 반발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는 친일파 청산 그거 옛날 얘기 아니냐, 뭐 하러 지난 얘길 끄집어 내 복잡하게 하느냐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요. 60년이 아니라, 600년이 지났어도 친일파 청산 안 됐으면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덮어두지 않고 민족정기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종양이 몸 안에 자라는데, 그거 수술 안한 채 보기 싫다고 덮어놓는 건 사람을 죽이는 거라고요. 민족을 죽이는 거예요. 그게.
이런 얘기도 많이 하잖아요. 친일파, 친일파 하는 데, 그 때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고, 독립운동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이게 순 친일논리고 물타기라고요. 이 논리대로면 친일파도 별거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별거 아닌 거 아닙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 날 일이죠. 오래 동안 이런 논리에 젖다보니 국민들이 그게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 부족하긴 하지만 지난 해 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 올 3월께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예정으로 있습니다. 진상규명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부하고 국회에서 법 제정해 어쩐다 하지만 하나도 기대를 안 해요. 누가 해도 지금 제대로 조사를 할 수가 없고 바로잡기도 힘든 실정이니까. 전부 죽었잖아요.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사실을 잘 모르고. 한심한 거예요. 이제라도 역사학자들은 자기들과 선배들이 잘못 기록한 걸 다만 10분의 1이라도100분의 1이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치한다고 하는 데가 친일세력의 집합소입니다. 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청산은 어려우니까 진실만 규명하자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는 판이니. 이것도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싶고.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이 60년 동안 떵떵거리고 큰소리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습니까.”
역사학자들이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 없는 게 문제
-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데요. 전에도 독립운동사가 잘못돼 있다고 지적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서 거행하신 부민관 폭파 사건(1945년 7월 24일)도 잘못 기록된 게 많을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요. 폭탄 투척이라고 많이 돼 있다고요. 폭탄 사건이나 폭파 사건이라고 해야 되는데, 내용이 다른 거잖아요. 폭탄 투척 사건이라고 하면. 꼭 던진 것처럼 해놨거든요.
또 부민관에 전날 들어가 잠복했다고 하는 것도 있고, 당일 날 아침에 들어가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실제는 행사하는 데 들어간 건데 말이예요. 행사 진행 중에 부민관에 들어가 두 군데에 장치해서 폭파시킨 건데. 산 사람 얘기도 그렇게 거짓말로 자기들 멋대로 써 놓고 있으니 참. 역사학자들이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는 게 큰 문젭니다. 조문기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거 알면서도 전화 통화 한번 안 하고 죄다 틀리게 만들어 놨다고요. 그래서 독립운동사 전공한 학자들이 독립운동사를 죄다 버려놨다고 하는 거예요.”
- 독립운동사 기록이 잘못됐다는 예를 좀 더 들어주시지요.
“학자들 때문에 독립운동사 기록 전반이 잘못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사에서 의병관한 기록을 보면 맨 의병장만 있잖아요. 장수만 있고 그 밑에 있는 의병은 없다는 거예요. 물론 학자들도 직접적인 건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학자들이 유족들한테 공적서를 써서 보내줘라 해서 하거든요. 대부분 유족들이 가난하고 그러다 보니까 공적이 많으면, 의병장이면 연금이라도 더 타려나 해서 부풀려 의병장, 의병 대장이라고 적어내는 거예요.
학자들도 유족들이 그렇다고 하는 데, 뭐 별다른 증거가 있나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대로 책에 쓰다보니까 다 의병장으로 된 거예요. 웃음거리가 된 거지.”
최소한 친일파의 죄상 파헤쳐 역사에 기록해야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언론과 주요 정치인들이 진상규명법에 대해 반대하기도 했는데요?
“지금도 일제 치하 그대로 라고 봅니다. 오히려 친일파들은 더 높은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고 친일파 천국이니까 그런 거지요. 친일하던 게 지금도 그냥 친일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야 친일이 자기들 사주에 대한 충성이고, 회사의 전통을 지키는 거로 생각하는 거니까. 친일의 전통을 고수하고 자랑삼는 거잖아요.
불란서처럼 나치지배에서 신음하던 나라들은 언론기관을 가장 먼저 청산했거든요. 그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함을 보여 준 거지요. 예술인과 언론인들은 혼을 팔아먹은 앞잡인데…….”
- 우리 민족이 진정한 해방을 맞기 위해 우선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다는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혼이 살아있다면 최소한 친일파의 죄상을 파헤쳐 역사에 기록해야지요. 최대한 역사로서의 생명력을 갖도록 만들어 비록 다 밝히진 못하더라도 국민들이 최소한 독립운동은 이렇게 했구나, 친일파들의 죄상은 이런 거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런데 지금은 친일파를 청산하긴커녕 오히려 친일파한테 독립운동자들이 청산을 당하고 있어요. 일제 치하랑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하는데, 계승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법통 계승하려고도 안 하고. 전국에 친일파 동상과 공적비 따위는 그렇게 많은데, 임시정부 관련 기념관도 없잖아요. 그야말로 '친일의 꽃'이 만발하고 있지만 독립됐다는 나라에 임시정부 기념관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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