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보건지소의 아주 특별한 청년의사

예산군 광시보건지소 성심진료로 주민 감동

등록 2005.01.17 15:10수정 2005.01.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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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종만 지소장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공중보건의보다 주민들과 더 오래 만나고 보건지소를 이끌어가는 ‘여사님’(보건행정직 여성 공무원)들이 진짜 주인인데 그들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최고의 팀워크로 주민보건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광시보건지소 구성원들. 왼쪽부터 서종만, 엄술섭, 유현미, 조경미, 최은미, 김동현씨.

서종만 지소장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공중보건의보다 주민들과 더 오래 만나고 보건지소를 이끌어가는 ‘여사님’(보건행정직 여성 공무원)들이 진짜 주인인데 그들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는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최고의 팀워크로 주민보건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광시보건지소 구성원들. 왼쪽부터 서종만, 엄술섭, 유현미, 조경미, 최은미, 김동현씨. ⓒ 장선애

잘못 왔는가 싶었다.


예산군계에 위치한 광시면 보건지소. 월요일 오전 약속시간에 대느라 서둘렀건만 근무자들은 겨우 눈인사만 하고는 취재에 응할 태세가 아니다.

“성심성의껏 진료하고, 매우 친절해 어떤 병도 다 나을 것 같다”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광시면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건지소가 편한 시간’을 잡았건만 이렇게 뚱한 사람들이 무슨 친절진료를 하랴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진료실 한 귀퉁이 의자에 앉아 가만히 보니 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들을 맞는 태도는 영 딴판이다.

환자층이 대부분 노인들이어서 한 얘기를 또 해야 하고 목청을 한 톤씩 높이면서도 간호사나 의사 모두 말씨가 참 상냥하다.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서종만(26·내과의사), 김동현(28·한의사)씨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 까닭을 알겠다. 지난 해 가을 이곳 주민 안정순(78) 할머니의 기적같은 소생이 한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소개될 때 잠깐 얼굴을 비쳤던 두 청년의사는 이런 식으로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영 달갑지 않아 했다.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다른 공중보건의들도 충분히 열심히 하는데 이런 보도가 나가면 곤란하다”고. “조용히 진료하고 떠나고 싶다”고.

그런데 이들의 ‘평범한 진료활동’에 농촌 주민들은 아주 행복해하니 어쩌겠는가. 행복하다 못해 “이런 양반들 취재해서 알려야 본받지 않겄느냐”고 신문사에 알려오니 어쩌겠는가.

“조용히 진료하고 싶은데”


환자우선으로 진료에 열중하는 의사들을 방해할 수 없어 통합보건실 엄술섭씨에게 얘기를 청했다. 그도 주민 상담을 하다가 환영받지 못하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겨우 말을 받아준다. 마지못해 받던 대화가 무르익자 자랑이 쏟아진다.

“매주 수요일에는 모든 보건지소들이 방문진료활동을 하지요. 제가 보건소에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두 선생님들처럼 성심껏 방문진료를 하는 분들은 처음입니다. 특히 생활이 어려운 거동불편 환자들일수록 더 안타까워 합니다. 환자들은 집까지 방문해 손을 잡아주고, 진료와 함께 용기를 북돋아주는 의사들 때문에 감동을 받고 용기를 갖게 됩니다. 지난번 안정순 할머니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저도 같은 군민으로서 우리 군에 와서 고생하면서 열심히 진료하는 분들이 있어서 여간 기쁜 게 아닙니다.”

재가방문 진료환자가 많아질수록 자신들의 몸이 고달파지는데도 이 청년 의사들은 보건소를 찾아온 환자 가운데 불편해 보이는 이들이 있으면 방문진료 전환을 제안하기도 한단다. 그러다 보니 1년 전 6~7명에 불과하던 방문진료환자가 20명이 넘어섰다.

a 서종만 내과의가 혈압을 재면서 환자의 마음이 편안하도록 얘기를 건네고 있다.

서종만 내과의가 혈압을 재면서 환자의 마음이 편안하도록 얘기를 건네고 있다. ⓒ 장선애

환자가 좀 빠진 틈을 타 내과 진료실로 들어서서 이곳 지소장을 맡고 있는 내과의사 서종만씨와 마주 앉았다. 흰 가운을 입지 않은 모습이 의외여서 이유를 물으니“아 이거, 규정위반인데…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하고는 “보건소 복무규정 가운데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이 복장입니다. 그런데 가운이라는 것이 처음 한두 달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인식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것이 형성되고 나면 오히려 안 입는 게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 곳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분들로 계속 오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경우에 따라 입기도, 안 입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농촌지역 진료가 처음인 그에게 이곳에서 보낸 1년 생활은 어땠을까.

“농촌환자의 경우 농사를 지으면서 몸을 많이 쓰다가 생긴 병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만난 환자들과는 질병군이 다르지요. 또 대부분 노인들이어서 어떤 처방보다 대화를 통해 호전 효과를 보기도 합니다. 대부분 노인들은 병이 깊어지면 ‘자식에게 짐되기 전에 빨리 가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번 회생한 안정순 할머니의 경우에서 보듯이 자신이 빨리 나아야한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병을 이기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

환자와 눈맞추고 얘기나누기

진료시간이 긴 한방치료의 특성 때문에 한방치료실 대기자의 수는 쉬이 줄지 않는다. 침을 놓고 차트 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를 틈타 한의사 김동현씨에게 말을 붙여본다.

a 김동현 한의가 환자에게 치료원리를 상세히 설명하며 정성스럽게 침을 놓고 있다.

김동현 한의가 환자에게 치료원리를 상세히 설명하며 정성스럽게 침을 놓고 있다. ⓒ 장선애

환자진료기록을 컴퓨터로 입력하면서도 한자와 한글을 섞어가며 종이차트로 꼭 기록해야 하는 까닭을 물으니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닌데 환자의 진행상황을 한번 더 정리하는 의미로 꾸준히 써왔다. 그런데 후임자를 생각하니 걱정이다”고 말한다.

얘기 도중에도 침을 맞고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러 수시로 자리를 뜨는 그와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농촌주민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질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호전이 잘 안 되는 특성이 있지요. ‘치료받는 동안 푹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가 지켜질 여건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한번 온 환자는 장기환자가 되고 맙니다. 현재 치료를 받기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수십 명에 이르는데 이 분들의 치료가 언제부터 시작될는지.”

그렇다고 병상 수를 마냥 늘릴 수 있을 정도로 여유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 한 사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성심진료가 가져온 결과는 의사들을 괴롭게도 만든다. 때로는 오전 환자가 너무 많아 점심을 제 때에 먹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환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예당저수지 근처 광시면에서 시한부 타향살이를 하는 이들 두 청년의사는 숙식을 같이 하며 정을 나누고, 이곳 지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의논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겨울철 농한기를 이용해 마을방문강연을 계획해 보기도 했다. 굳이 진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건강관리법과 질병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성을 느낀 까닭이다.

그런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일은 계획 단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장님들이 '하려면 면내 마을 모두 해줘야 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딜레마에 빠진 때문이다.

손자뻘인 ‘우리 선생님’

농촌주민들이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 읍내 병원까지 다녀오려면 하루 온종일 시간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사일 바쁜데 가당찮은 일’이라며 그대로 병을 키우고 마는 것이 농촌의 의료현실이다.

노인환자들이 손자뻘되는 20대 의사들에게 깍듯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는 그러저러한 고마움과 진심이 스며 있다. 더우기 아픈 곳을 정성껏 어루만지며 “지난 밤 잘 주무셨는지” “기침은 좀 덜하는지” 좋은 낯빛으로 물어봐주는 이 의사들 앞에서야 더 할 나위가 있겠는가.

병역대체로 근무하는 전국의 수많은 공중보건의들이 3년 근무 기간동안 ‘시간 때우기’가 아닌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으로 진료에 참여한다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수준은 한단계 높아지지 않을까. 여기 광시보건지소의 청년 의사들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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