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학교 가는 게 꿈이에요"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72) 백혈병을 앓는 소녀를 위하여

등록 2005.01.21 14:05수정 2005.01.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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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희망이 보이는데 손을 놓을 수 없어요


a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장지연(12) 양, 우천초등학교 5학년

급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장지연(12) 양, 우천초등학교 5학년 ⓒ 박도

예사 때와는 달리 저는 오늘 아침 목욕재계한 뒤, 네티즌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어제 오후 횡성에 사시는 시민단체 대표('횡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 정연학씨)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인즉, 제가 살고 있는 안흥면과 이은 우천면 백달리 마을에 올해 열두 살 난 장지연(우천초등학교 5학년)양이 수술을 앞두고 돈이 없어서 그 부모님이 울며 지낸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정 대표는 우리 지역의 딱한 사정을 널리 알려서 한 소녀의 생명을 이어주고자 산골 서생인 저에게 연락한 것입니다. 좀더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어 했더니 곧 장지연양의 부모가 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 부부는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마당에서 고개를 숙인 채 저를 맞았습니다. 그분을 따라 새말 나들목에서 가까운 백달리 당신 집으로 갔습니다. 곧 병중의 지연양도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선생님에게 대접할 것은 따뜻한 보리차밖에 없다면서 내놓은 물을 마시면서 이들 가족의 아픈 사연을 들었습니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백달리 82번지에 사는 장만복(65)·권의영(52) 부부는 늦둥이로 지연양을 낳아 길렀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던 1999년 1월에 딸이 급성 백혈병을 앓는 것을 알게 되어 원주 기독병원에서 7개월 치료를 받은 뒤 완치되었다고 해서 그해 9월에 퇴원, 이듬해 우천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에 잘 다녔습니다. 그런 가운데 2003년 8월 20일에 재발하여 지금은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장만영씨는 이 모든 게 당신의 업죄가 많은 탓이라며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평생을 소농으로 힘들게 살면서 4남매를 둔 바, 장남이 삼척우체국에 다니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횡사한 뒤로 더욱 힘들게 산다고 합니다. 딸을 살리겠다고 그나마 있던 땅도 다섯 마지기나 팔아서 이제는 720평의 논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논에서 나온 곡식은 당신네 양식밖에 되지 않기에 지금도 온갖 막노동을 한다고 합니다. 어머니 권의영씨도 살림에 보태고자 횡성에서 청소 일을 하였는데 딸이 재발한 뒤로는 그 뒷바라지로 그 일도 못하고 틈틈이 삯일을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 애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하늘의 도움인지 골수이식 제공자가 나타났어요."

아버지의 눈에도 어머니의 눈에도 굵은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습니다.

a 지연 양의 아버지 장만복(65), 어머니 권의영(52)씨가 대문 앞에서 필자를 배웅하고 있다

지연 양의 아버지 장만복(65), 어머니 권의영(52)씨가 대문 앞에서 필자를 배웅하고 있다 ⓒ 박도

곁에 있는 지연 양에게 꿈을 물었습니다.

"그 전에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학교 가는 게 꿈이에요."

2005년 2월 18일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골수이식 수술을 하는 날인데 30~40일 정도 입원해야 하고, 그 비용이 2500~3000만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요즘은 땅값도 없고 내놓아야 팔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희망이 보이는데 손을 놓을 수 없어요. 없는 게(가난이) 죄에요. 어떤 이는 그만 포기하라고 하지만 저 아이를 어떻게 포기해요."

고개 숙인 채 눈물짓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에 저도 자식을 둔 사람으로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지연이는 누군가 천사의 사도가 도와줄 겁니다."

대문 밖에서 배웅하는 이들 부부에게 희망의 말을 전하면서 전재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이여, 무심치 마소서"
"여러분, 조금씩 도와주십시오. 열 숟갈 밥이 한 그릇이 됩니다. 빗방울이 모여 시내가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장지연 양 연락처 033-342-6570

덧붙이는 글 장지연 양 연락처 033-342-6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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