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심정으로 피해자 한 풀어낼 것"

[인터뷰] 최봉태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

등록 2005.01.21 23:01수정 2005.01.2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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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태 사무국장
최봉태 사무국장이민우
"일제시대 피해자들이 아직까지도 해방감을 못 느끼고 있는 건 아직 해방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 독립군이란 마음가짐으로 피해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17일 한일협정 관련 문서 5권의 공개를 이끌어낸 소송 변호사,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아래 진상규명위) 최봉태 사무국장이 한 말이다.

최 사무국장은 일제시대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배상을 위한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일본군위안부로 피해를 당한) 김상희 할머니와 김분선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진상을 밝히고 해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전 제가 하는 일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한일협정 문서 공개가 갖는 의미에 대해 최 사무국장은 "일제시대 피해자문제해결을 위한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열린 것"이라며 "문서공개로 인해 기대하는 일제시대 피해자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사회적 공론화가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사무국장은 일본법원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한국인의 원폭 피해에 대해선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원폭피해와 관련해 일본정부는 자기들을 전쟁 피해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원폭피해) 가해자는 미국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일 낮.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에 있는 진상규명위 사무실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진정한 해방감'에 웃을 수 있도록 "시간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최 사무국장을 만났다.


다음은 최 사무국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사무국장께선 변호사 생활할 때부터 꾸준히 일제강점 때의 피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94년부터 97년까지 일본 유학을 했거든요.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어 노동법을 전공하러 갔는데, 당시가 일본에 우리 전쟁피해자들이 소송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때였습니다. 그 소송을 보면서 단순히 이게 과거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많은 분들이 이 소송에 협조해 주고 있어서 한편으론 고맙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에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이번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이끌어낸 소송 변호사였는데,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결국 '정의는 이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 소송의 승소라기보다는 일제청산의 방향이 잡혀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봅니다."

"일제시대 피해자문제해결 위한 판도라 상자의 뚜껑 열렸다"

- 외교통상부가 처음엔 한일협정 관련 문서의 공개를 거부하다가, 입장을 바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한일협정 관련 문서는 161권 가운데, 지난 17일 5권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문서공개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제시대 피해자문제해결을 위한 판도라 상자의 뚜껑이 열린 것이라고 봅니다. 문서공개로 인해 기대하는 건 일제시대 피해자에 대한 책임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일 양국 정부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사회적 공론화가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 피해자단체들은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개인청구권에 대한 구체적 협상 내용들이 포함돼 있지 않아, 한일 양국 정부의 책임 소재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수준의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명확하게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의 책임이 면책이 되었다고 보긴 어렵고요. 다만 상대적으로 한국정부의 책임이 명확해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일제시대 때 피해자에 대한 규모와 그 규모에 걸맞는 나름대로의 액수까지 나오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한국정부가 권한만 행사한 게 아니라 책임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책임에 대한 공론화 되고 있고, 책임지겠다는 얘기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폭피해와 관련 일본정부는 자기를 전쟁 피해국민으로 생각"

- 19일 오후 히로시마 고등법원이 강제징용 중 원폭피해를 당한 한국인에게 일본정부는 피해자 1인당 120만엔씩 총 4800만엔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는데요. 이 판결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판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일본 국가를 떠나면 원폭 피해자로서의 지위를 상실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던 후생성 통달 120호가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 부분이 잘못됐다고 인정했기에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 일본법원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원폭 피해 문제에 대해선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일본에도 수많은 원폭피해자들이 있는데, 원폭피해와 관련해 일본정부는 자기를 전쟁 피해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해자는 미국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 원폭피해자들도 이해해 주는 판결도 나오고 있는 걸로 해석됩니다."

-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향후 일본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해서 원자폭탄을 민간인에게 사용한 미국정부의 책임이라든지 하는 부분도 새로운 소송으로 전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원폭 피해 관련해서 미국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당연히 원자폭탄을 민간인에게 사용한 미국에 대한 책임까지 문제 삼아야 합니다."

"2월 1일부터 각 시,도 실무위에서 피해자 신고 받는다"

지난 해 11월 10일 현판식을 갖고 출범한 진상규명위는 2월 1일부터 피해 신고를 받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지난 해 11월 10일 현판식을 갖고 출범한 진상규명위는 2월 1일부터 피해 신고를 받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이민우
- 진상규명위 조사활동 준비는 어느 정도 되고 있고, 실질적으로 조사는 언제부터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2월 1일부터 피해자 신고를 받고, 신고된 것에 대해 조사개시 결정을 하면 조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피해 신고를 받는 건 각 시,도의 실무위원회가 하게 되어 있는데, 아직 시, 도 실무위원회가 구성이 제대로 안 되어 독려하고 있거든요. 문서공개 소송의 여파로 실무위원회 구성에 탄력이 붙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지역에서 공무원들이 신고를 받게 되어 있는데요. 의문사위의 경험을 보면 민주화운동과 의문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지역 공무원들이 부실하게 신고를 받고 조서 작성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각 시·도 실무위원회에서 일하게 될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요?
"예, 그동안 한 차례 교육을 했고, 오늘도 전국의 실무자 240여명 교육할 계획입니다. 특별법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구체적으로 피해 신고가 들어올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실무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만주사변 이후의 강제동원 피해가 조사대상"

- 진상규명위의 활동 근거가 되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등에관한특별법'에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를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되어 군인·군속·노무자·군 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가 입은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사대상이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 이후로 되어 있는 게 일제강점하 피해 진상조사에 어떤 제약으로 작용하진 않을는지요?
"저희는 주로 일본의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동원피해를 조사하고, 또 만주사변 이후로 한 것은 군 위안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봐서는 일제강점기 전반을 통해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동원체제하에서 이뤄진 여러 가지 동원 문제하고 혼돈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우선은 만주사변 이후의 강제동원 피해가 조사대상입니다. 일단 비교적 손쉽게 확인 가능한 부분에 대해 진상조사를 먼저하자는 겁니다. 나머지 시기의 피해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법 개정을 통해서 할 수도 있겠지요."

- 친일 군속이나 군인 중에도 자진해서 입대하여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들도 있는데, 반민족해위자와 피해자 그 구분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그건 조사를 해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부산에 사는 김성수씨 같은 경우는 군대를 자원해서 갔지만, 자기 형님이 독립운동을 하셔서 일본경찰들이 온 집안을 못살게 구니까, 자기가 희생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자원해서 갔다고 하거든요. 고도의 악질적인 친일 부역행위 이 외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형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선 일본이 자료 제공을 해 줘야"

- 피해자나 그 유족의 증언 외에도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근거자료가 있어야 판단을 명확히 하는 게 가능할거라고 보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료라는 건 한국이 갖고 있는 것보다는 일본이 갖고 있는 자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진상규명을 위해선 일본이 제대로 자료 제공을 해 줘야 합니다."

- 일본에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청하게 될 텐데요. 직접 일본정부에 요청하는 건가요. 아니면 외교통상부를 거치게 되는 겁니까?
"외교부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2월경 일본에 가서 관방장관이나 정치인들을 만나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특별법의 의미가 일본에 반대하자는 법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수적인 작업이라는 이해를 충분히 구할 생각입니다."

"일제시대 피해자 문제는 완료된 문제 아닌, 현재 진행형"

- 과거청산과 관련한 주요 사업들에 대해서 아직도 일부 세력들이 지난 일을 뭐 하러 자꾸 들춰내려 하느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과거는 미래를 보는 창입니다. 일제시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요한 건 재발방지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재발방지 약속을 받는다는 것보다 미래지향적인 게 있겠습니까. 과거가 깨끗이 청산됐다면 구태여 다시 문제삼을 필요가 없겠지만, 한일협정 당시 준 돈이 경제협력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지금도 북한과 일본과 수교과정에서도 일제강점기가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남쪽과 일본의 관계에서도 완료된 문제가 아닐 뿐더러, 북쪽과의 관계에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 이제 곧 진상규명위의 조사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진상규명에 임하는 각오를 한 말씀해주시지요.
"저희들은 독립운동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피해자들의 인권이 회복되어야 그분들한테 진정한 해방이 되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다. 일제시대 피해자들이 아직까지도 해방감을 못 느끼고 있는 건 아직 해방이 안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문제니까, 독립군이란 마음가짐으로 피해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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