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14

남한산성의 보물

등록 2005.01.24 17:02수정 2005.01.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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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이치로 지었기에 윗목부터 따뜻해지는 것인가?”

이서는 흥미롭다는 듯 집안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먼지가 묻는 것도 마다하고 숫제 서까래 밑까지 살펴 보기 시작했다.


“저 마루 안에 무슨 궤짝이 있는 듯한데 꺼내 보게나.”

이서의 말에 몸집이 작은 두청이 마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굽혔지만 쉽지 않았다.

“저것을 꺼내려면 마루를 뜯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서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마루를 뜯어 보라 일렀고 서흔남과 두청은 쇠지렛대를 가지고 와 마루를 뜯고 궤짝을 움직여 보았다.

“무엇이 들었는지 몰라도 굉장히 크고 묵직하옵니다. 당장 들어내기는 어려운 듯 하옵니다.”


그 말에 이서의 호기심은 한층 더 일었다. 마루를 조금 더 뜯어내어 구멍을 넓힌 뒤 이서까지 합세해 궤짝을 들어 옮기고서는 그 속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비단으로 엮인 길쭉한 옥 조각과 함께 만지면 바스러질 듯한 두루마리 열개 정도가 놓여 있었다.

“난 뭐 대단한 것이 들어 있을 줄 알았더니.”


서흔남은 헛웃음을 쳤지만 두청은 옥 조각에 쓰인 글자를 집중해 보았다. 한문 같기는 하나 도무지 읽을 수 없었고 초서, 행서, 예서도 아닌 처음 보는 문자였다. 이서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글자를 바라볼 뿐 읽지 못했다.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나 옥을 엮어 글씨를 썼다는 것은 옥책(玉冊: 임금이나 왕비에게 존호를 올릴 때에 그 덕을 칭송하는 글을 새긴 것)임이 틀림없네. 대체 무엇이라 적혀있는지는 알 수 없군. 이런 글은 처음이네만.”

아랫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점에서 이서는 솔직 담백한 사람이었다. 이서는 이것을 잘 보관해 두라는 말과 함께 다른 이에게 물어볼 요량으로 옥책과 두루마리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바스러질 듯했던 두루마리는 뜻밖에도 보관 상태가 좋은 비단으로 되어 있어 펼쳐 보기에 무리는 없었지만 모를 문자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별스러운 일이구만.”

서흔남은 이서가 간 것을 확인하며 슬쩍 두루마리 두개를 들어 품속에 넣었다. 옆에서 두청이 이를 보고 슬쩍 말을 건넸다.

“그걸 가져가서 어쩌시려는 겁니까?
“돈이 될 만한 옥이야 완풍군이 가져갔으니 난 이 두루마리가 얼마만큼 값어치가 있는가 알아 보려는 것뿐일세. 값어치가 있다면 내 그대에게도 두둑이 후사합세.”

“하하하...... 저야 속세를 떠난 몸인데 그런 것에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그저 이것이 귀한 것이기를 바라겠습니다.”

서흔남은 두청이 구태여 이런 일을 고해 바칠 위인이 아닌 것을 아는지라 그 길로 성 아래 마을에 달려가 제일 큰 상인을 찾아 두루마리를 보이며 값을 흥정해 보았다.

“이게 뭔가? 이딴 게 무슨 돈이 된다고 가져온겐가? 정 이걸 맡겨놓고 싶다면 이승포(제일 값어치가 떨어지는 옷감으로서 자루감도 되지 못했다) 반필이라도 가져가 술이나 받아 마시게나. 싫으면 그냥 가져가고,”

서흔남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억지를 써 이승포 한필을 받아 들고서는 그것으로 곶감을 사와서 두청에게 반을 나누어 주었다. 두청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행여나 완풍군께서 눈치를 채시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서흔남은 곶감을 씹어 삼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어차피 완풍군도 거기 무슨 글이 적혀 있는지 모를 뿐더러 두루마리가 몇 개인지 세어 보지도 않았지 않은가? 분명 별 것이 아닐 테니 신경 쓰지 말게나.”

“그런데 아까 그곳에서 더 이상한 것을 보았사온데 완풍군께는 아직 알리지 않았습니다.”

두청의 말에도 서흔남은 관심 없다는 듯 곶감만 축낼 뿐이었다.

“괘짝이 있던 안 쪽을 들여다 보니 인골(人骨)이 놓여 있더이다. 그 집은 어떤 무덤 위에 지어진 것이란 말이지요.”

서흔남은 그 말에 방금 먹은 곶감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부정이라도 탔으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생각에서였지만 막상 두청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곶감을 천천히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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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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