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시절의 필자박성필
유난히 땀이 많은 나는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 별도의 하복이 없는 군대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지옥훈련과 다름없었다.
군대에서 보낸 첫 번째 여름의 유격훈련은 죽음의 문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겹기만 했다.
이듬해 봄, 무슨 일이 있어도 더위는 '휴가'로 피해보겠다는 나름대로의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병장 진급과 동시에 얻는 9박 10일의 병장 정기휴가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위가 심해진 것 같고, 휴가를 다녀오면 한 해 더위는 끄떡없을 것만 같았다.
98년 6월초 병장 진급과 함께 휴가를 가겠다는 나의 계획은 업무 공백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지휘관의 판단으로 6월 20일 이후로 미뤄졌다.
6월 21일, 드디어 연기됐던 병장휴가의 시작이었다. 6월초보다 한층 더 심해진 더위 때문에 휴가가 수십일 미뤄진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휴가 기간 내내 꼼짝 않고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으로 출발했다. 혹시나 싶어 후임병에게 업무 인수인계도 빠짐없이 했다.
꼼짝 않고 찬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계획은 잊고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을 마시는데 하루를 보냈다. 나를 괴롭히던 부대 안의 무더위는 없고 마냥 즐겁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동해에 북한 잠수정이 침몰하여 온 나라가 긴장상태에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강릉 일대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나는 경기도에서 복무하는데 설마 부대로 복귀하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을 때였다. 집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많이 들리던 목소리가 수화기로 들려온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부서의 한 장교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뉴스 봤지? 지금 난리가 났는데 휴가복귀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내일 오후 4시까지 들어와."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