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20일 앞두고 '장교'가 '탈영'하다

장교와 부사관이라고 별 수 있나요

등록 2005.01.28 12:31수정 2005.02.0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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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시절의 황당사건… 여기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비슷한 기억에는 함께 웃었고, 분노했으며, 스스로 반성했던 점도 많았습니다.


저는 좀 별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나이 28살에 이등병으로 입대해, 32살에 중위로 전역했습니다. 그래서 군번도 두 개지요. 군 복무기간도 만 4년, 햇수로 5년을 채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병들의 생각도 간부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여기에 올라 온 글을 보면, 주로 간부와 사병간의 갈등, 혹은 거의 대부분이 사병들이 가지는 간부들에 대한 반감으로 채워져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과연 간부들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간부들은 대부분 예비역 중위와 예비역 중사로 전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사병들과 똑같이 의무 복무를 한 셈입니다. 사병들과 다른 생활을 했다고 하고, 또 어떤 면에선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못하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32살에 예비역 중위로 전역했습니다. 왜 그렇게 입대가 늦었냐고 물으실 분도 계시겠습니다. 대학 때 고시 공부한답시고, 우쭐대며 다니다 보니 점점 늦어졌고, 그걸 보상하겠다고 대학원까지 들어가다 보니 늦어졌다는 게 제 변명입니다만, 사실 별 생각 없이 지내다보니 늦어졌다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역하기 한달 전 쯤이었습니다. 보통 전역을 한달 정도 앞두게 되면 병사들부터 장교들까지 일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근무도 열외고, 심지어 식사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P.X.에서 빵 부스러기나 냉동식품으로 때워도 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군대 복이 없어서 일까요? 저는 말년 휴가를 5일 밖에 못 받았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일했구요. 사병들도 전역할 땐 10일 정도 말년 휴가를 받는데도 말입니다.

중위 진급하던 달에 결혼을 했고, 전역 하던 그 무렵에는 집사람이 임신 4개월이었습니다. 요즘도 우리 아들 녀석 참 별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임신 4개월 때부터 우리 아들은 별났습니다. 집사람의 입덧이 몹시 심했죠.


정말 물도 토하더군요. 심지어는 제가 퇴근 후 샤워를 하는데, 물 냄새(?)가 심하게 나서 토할 것 같으니, 밖에 나가서 목욕을 하고 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임신을 하면 잘 먹어야 한다는데, 입덧이 그렇게 심하다 보니 먹을 수가 없었고,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 그런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제대 말년이었습니다만, 마침 제가 근무하던 부대장(대령)이 전출을 앞두고 있었고, 그 전에 부대 평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부대는 군단 직할 부대여서 군단장에게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부대 전체가 난리가 납니다.

막사 개보수부터 시작해 각종 서류와 문건을 다시 작성하고, 속칭 ‘가라’(엉터리) 보고서도 만들어 둡니다. 마지막에는 기동훈련까지 마쳐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할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실 전 ‘정훈장교’ 출신입니다. 다들 편한 보직으로 알고 있고, 제 동기들 중에도 편하게 군생활 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현역시절 별명이 ‘전투 정훈’ 혹은 ‘작전 보좌관’이었겠습니까.

부대 주요 작전 계획은 물론, 부대 현황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놓고(과거에는 '차트 병'이 있었다고 합디다만, 요즘엔 대부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빔 프로젝트로 쏩니다) 주요한 부대활동은 사진을 찍어 둡니다.

다른 부대는 그걸 모두 행정병들이 했다고 합니다만, 우리 부대에선 그걸 할 줄 아는 병사들이 없었고(아마 제가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안 뽑은 것이겠죠) 저 역시도 제가 할 줄 아는 걸 병사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가끔은 기동훈련(FTX)을 할 땐 대항군 소대장도 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덧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돌볼 겨를이 없었던 겁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한 밤중이었고, 집에 들어가면 골아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랬는지 항상 머리가 무겁고, 피곤했습니다. 내가 그런 지경이었으니, 아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 턱이 없었죠.

그렇게 부대 평가가 끝나던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죽겠다더군요… 너무 힘드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짜증이 났습니다. ‘군의관한테 가봐. 전화해 놓을게’ 그러고는 집사람 말을 들을 생각도 않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몇 시간 뒤, 일을 모두 끝내고 퇴근을 했습니다. 평가도 잘 끝났으니 술 한잔 하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가 걱정되었던 거지요.

집에 들어갔더니, 집사람은 거실 바닥에 늘어져 있고, 정신도 오락가락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다, 웃다가 하는 겁니다. 아차 싶더군요. 들쳐 업고 가까운 병원에 갔습니다. 그때 시간이 밤 11시. 그런 상황인 줄로 모르고 군의관에게 가보라고 했다니….

아내는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 3병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응급실 의사는 나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빨리 병원에 오라’고 신신 당부를 하더군요.

아내는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그렇게 응급실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마, 그날도 그렇게 한밤 중에 응급실을 다녀왔던 날이었을 겁니다. 아침 상황보고 시간이었는데, 부대장이 저를 비롯한 몇몇 간부들의 이름을 부르더군요. 그러더니 ‘지휘관은 아랫사람 사생활의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 늬들 어젯밤에 어디 갔었어?’ 하는 겁니다.

화가 나더군요.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독신간부들이었는데, 유독 저만 기혼자였습니다. 부대장 생각엔 제가 말년에 함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따끔하게 혼을 내 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기분이 나빴고 그래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집사람 입덧이 심해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부대장 얼굴이 벌게지더군요. 제 말투가 기분 나빴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한 사나흘쯤 됐을 겁니다. 전역을 20일 정도 남겼을 때죠. 우리 부대는 매월 초 국기게양식이라는 걸 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달 동안 부대활동 목표라든지 부대장 훈시 같은 것을 합니다.

다들 잘 아시겠습니다만, 그것들은 모두 정훈장교가 만드는 겁니다. 부대장이 지침은 주지만 문장을 만들고 가다듬는 건 정훈장교 몫이죠. 마지막으로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니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연병장에서 장병들 맨 앞쪽에서 다른 중위급 장교들과 함께 도열했습니다. 마지막이니 빠져도 되고, 뒤쪽으로 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이니 잘 해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분명히 마지막까지 검토를 한 뒤, 행정병에게 파일을 넘겨 주면서 편집을 하라고 했는데, 그 행정병 녀석이 실수로 한 페이지를 날려 버린 겁니다. ‘아래아한글’에서 블록을 설정하고 글자 크기와 장평, 자간을 편집하다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경험 하신 분들 아마 많을 겁니다.

그걸 모르고 부대장 부속실에 넘겼는데, 부대장이 그걸 읽다가 발견한 겁니다. 당연히 당황했겠죠? 저나 부대장이나 행정병이나….

행사를 마친 부대장은 정작과장(소령)에게 ‘정훈장교 오라고 그래’라고 하더군요. 화난 목소리였습니다. ‘죽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정병 녀석을 말할 것도 없겠죠? 그때 막 일병을 달았을 때였는데 대령의 훈시문을 망쳐 놨으니….

어쨌거나, 부대장실에 들어갔습니다. 말년에 이게 뭐냐 싶기도 했지만, 30살도 더 먹은 말년 중위를 어쩌겠나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지금까지 일 한 것도 있는데…(사실…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그 흔한 공문 하나도 병사들 시키지 않고 제가 직접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훈시문만 해도, 과거의 것을 찾아서 말만 대충 고쳐 쓰는 사람 많지만, 전 일일이 다시 썼습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그 부대장은 제가 들어서자 벌떡 일어나더니, 훈시문이 든 바인더로 제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 위로 마구 내리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모릅니다. 그때의 참담함과 분노… 배신감….

부대장실을 나온 뒤, 전 탈영하기로 했습니다.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그냥 나가버리면 부대장이 대충 말년 휴가 보낸 걸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집사람을 처갓집에 보낸 뒤, 헌병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 중사요, 나 탈영했으니, 잡아가쇼!’

물론 그 중사는 나를 잡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전역했구요. 그 사연은 길어질 것 같아서 빼도록 하겠습니다.

전역한 뒤, 국방부 인터넷에 이 사실을 올렸습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겠죠? 사병이 사병을 때려도 문제가 되는 판에 고위장교가 장교를 때리다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마 국방부 정훈공보실에서는 그 글이 보도될 것을 염려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뒤, 전에 제가 모셨던 모 사단 정훈 참모님이 전화를 하셨더군요.
"내가 처리해 줄테니 인터넷에서는 빼자. 그 사람 아마 이번 일로 장군은 못 달 거야."

그리고 잠시 후엔 있던 부대 정작과장이 전화를 했더군요.
"야… 날 좀 봐서, 그냥 넘어 가자!"
마지막엔 나를 때렸던 그 대령에게서도 전화가 오더군요. 그러나 그는 ‘기분 나빴냐?’라고만 했지 ‘미안하다’라고는 안했습니다.

어쨌거나 전 제 글을 삭제하는데 동의해 줬습니다. 언젠가 다시 거론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땐 아직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군의 홍보를 맡던 정훈장교가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령… 장군이 못될 거라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기야 음주운전에 걸린 사람도 장군이 되는 판에, 군대말로 ‘중위 찌끄레기’ 몇 대 팼다고 진급이 안되겠습니까?

군대에서 생기는 구타나 각종 비리…. 그건 장교와 사병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어떤 장교가 얼차려를 주는 바람에 엄청 맞았다고… 그래서 그 사람을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고 했습디다만….

상관에게 얼차려를 받았다고, 하급자를 폭행하고, 하급자는 그 하급자를 자신이 맞은 것의 몇 배를 구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합니까?

함께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한 사람에 대해서는 미움과 애정이 뒤엉키면서 분노가 누그러진 반면, 그런 기회가 없었던 간부에겐 오히려 분노가 증폭된 건 아닐까요? ‘간부들은 편하게 군 생활하면서…’라는 마음과 함께 말입니다.

장교도 부사관도 마찬가집니다. 그들도 그 상급자로부터 사병들과 똑같거나 아니면 더 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특정 집단과 집단의 갈등이 아니라, 상급자가 하급자를 지휘 통제하는 것을 마치 하급자를 인격적으로 예속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인식이 사성장군에서부터 이등병까지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물론, 그런 인식의 시작이 간부들에게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사력을 건설하고 전투력을 발휘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상급자가 하급자를 지휘 통제할 수 있는데도, 그 사람의 인격 모두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이외에도 다른 할말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고 다른 이야기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외에도 다른 할말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고 다른 이야기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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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만 군에서 5년간 공보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군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의 공보체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군내에 지인이 몇사람 있습니다. 군사분야에서 좀더 활동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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