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돼서 기억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GOP 훈련 나가서 찍은 사진 같다.안병기
이듬해 봄 부대는 금곡에서 밤고지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부대 막사는 지었지만 나무 한그루 심어져 있지 않은 살풍경이 새로운 주둔지에 도착한 우리를 낯설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1군단장인 황영시 장군이 별안간 부대를 순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이 코 앞에 닥쳤다. 차분하게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어 조경해 나가기엔 틀렸다.
중대원들은 뒷산에서 나무 줄기를 톱으로 잘라왔다. 그리고는 구덩이를 파고 밑둥이 잘린 나무들을 심었다. 단 시간내에 그럴 듯 한 조경을 한 것이다.
이윽고 1군단장 황영시 장군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상황실 벙커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잔뜩 긴장한 대대장이 그 뒤를 따랐다. 벙커에 다다른 군단장이 뗏장을 가리켰다.
“저 뗏장 한 번 들어내봐.”
아무런 걸리적거림도 없이 뗏장은 금세 들렸다.
“대대장, 너 이 새끼. 이리와 봐. 너 인마, 중령이나 달고 아직 뗏장 쌓는 법도 몰라. 이렇게 쌓으면 장마철엔 다 쓸려 가버리지, 밑에 깔린 뗏장과 위에 얹힌 뗏장을 서로 엇갈리게 쌓아 서로 물고 있어야 안 떠내려 갈 거 아냐? 너, 이 새끼. 계급장 떼어버릴까.”
군단장의 지휘봉이 대대장의 단전께를 쿡쿡 찔러댔다. 극도로 긴장한 탓일까. 대대장의 얼굴은 흘러내린 땀으로 번들거렸다.
나쁜 일은 결코 혼자 오는 법이 없다. 헬기를 타려고 걸어가던 군단장이 길에 도열한 사병에게 옆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뽑아보라고 명령했다. 나무는 '쑥'하고 빠지며 밑둥이 잘려진 제 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너, 이 새끼. 정말 군복 벗고 싶나?"
대대장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핼쑥해졌다.
“한달 후에 내가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오늘 내가 한 지적사항 다 시정해 놔. 그때까지도 이 모양이면 그때는 넌 정말 끝장이야. 알았나?”
다행스럽게도 군단장의 추궁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군단장은 서둘러 헬기에 올랐다. 군단장의 등 뒤에다 대고 간부들이 경례를 붙였다. “충성”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들려왔다.
경례를 붙이기 위해 오른쪽 눈썹에 갖다 댄 오른손이 제 자리로 내려온 것은 헬기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였다. 상대가 받아주지도 앉는 인사를 올리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무참한 것인가.
나는 '내 안의 폭력'을 경계한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어느덧 2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들이 마치 어제의 일인 것처럼 기억이 또렷하다. 이상한 일이지만 군대 시절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토록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부대 정문을 나서는 순간 어느새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버린다. 신화가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과 거짓이 섞인다는 뜻이다.
난 군대 이야기가 한낱 ‘안주거리’로서만 회자되는 현상을 경계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대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기능했으면 싶다. 난 때때로 군대 생활에서 익힌 폭력이 은연중 가족 혹은 나와 가까운 이들에게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는지 자신을 돌아본다. 외부에서 가하는 폭력도 문제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내 '안'에 잠재돼 있는 폭력적 경향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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