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엔젤레스의 국립 공원에 오르다

겨울 눈 쌓인 LA 뒷산

등록 2005.02.14 03:40수정 2005.02.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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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이 그 곳에 있었다. 백설의 의상을 걸쳐 입고 근엄한 자세를 취한 채 봉우리는 경건한 숲의 아침을 맞고 있었다. 이름하여 앤젤스 내셔날 포리스트(Angels National Forest). 그 하루의 일정은 스모그 낀 도심의 한인 타운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12일(미국시각)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타운을 벗어나 북방으로 2번 고속도로를 타고 30분 달리니 윌슨 마운틴(Wilson Mountain)으로 향하는 산악 도로가 나왔다. 산기슭에 깊숙이 들어선 주택들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이방인을 향해 산처녀처럼 소박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안개 자욱한 해발 4000피트의 팻말을 지나자 산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솜털 날리듯 흰 구름이 맞은 편 산허리를 지나고 있다. 산은 그대로 신선한 청록의 향연인데 짙은 회색 구름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옆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 몇 구비 도로가 나사처럼 감겼는지 모른다. 한국의 산세가 변화무쌍한 가운데 격동적인 분위기라면, 미국의 산은 장대한 기세를 지녀 우직하며 육중한 맛이 돈다.

오를수록 기온이 점차 떨어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눈밭이 눈앞에 들어왔다. 'Icy'라고 쓴 표지판을 지나자 도로 주위는 눈의 숲으로 덮여 있다. 결빙 상태의 눈길을 운전하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차를 돌려 안전한 주차장에 세운 뒤 하이킹 코스를 새로 잡았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을 거쳐 워터맨 마운틴(Waterman Mountain)을 오르기로 하였다.

남으로는 멕시코 국경에 이르고 북으로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거쳐 캐나다의 접경지대까지 닿는다는 미국 서부 해안을 남북으로 따라 오르는 대장정. 2650마일(약3640킬로미터)의 산맥 줄기가 바로 이곳을 지나지 않는가. 실제 등정거리 4300km를 뉴질랜드 소방관 출신인 George Spearing씨가 5개월간에 걸친 산행 끝에 단독으로 종단했다는 기록을 접한다. 그 대간(大幹) 위에 우리가 서 있었다.

같은 형세로 동부에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있고(Appalachian Trail), 로키산맥으로 상징되는 4600km의 Continental Divide Trail이 또한 미국 대륙의 서부와 중부를 나눈다. 놀라운 사실은 총 3개 코스를 모두 종단한 산악인(일명 3관왕 칭호)이 공식적으로 42명에 달하며 그 중 Brian Robinson씨는 1년 만에 3개 구간을 도는 기록을 남겼고 Namie Bacil씨는 연속 3회, 3관왕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세운 일이다. 미국인들의 억척스런 산 사랑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해발 6300피트(약1920미터) 상공에서 심호흡을 마친 뒤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고 우리 일행은 이내 숲으로 들어섰다. 지난 밤까지 며칠 동안 내린 겨울비로 축축해진 대지를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갔다. 계곡에 깊이 들어서자 눈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지샌 백야(白夜)로부터 깨어남인가. 나뭇가지 위 잔설(殘雪)은 아침 햇살 받아 반짝이더니 솔잎에 매달려 부슬 부슬 영롱한 물보라를 흩날린다.


깊은 산, 겨울의 아침은 그렇게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 그 길을 우리가 밟아 나갔다. 야생의 동물이 남긴 발자국이 점점이 패어져 있을 뿐. 인적 없는 고요의 산길을 우리가 헤쳐 걷는다. 세상살이에 찌들어 더러워진 내부의 숨결을 산에 토하고 대신 천연의 정기를 받아 마신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상큼한 화음으로 귓전을 두드린다. 전설의 바위를 벗 삼아 천년의 윤회(輪廻)를 가르치는 물은 위로부터 아래로 흘러 속세로 향하고 강을 거쳐 바다로 나간 뒤 다시 구름 되어 하늘에 오르니 참으로 오묘한 자연의 섭리라 아니할 수 없다.


물과 흙을 담아 태양으로 빛을 받아낸 뒤 수백 년의 침묵을 오로지 참선(參禪)으로 일구는 나무의 정진(精進)이여. 차마 바라보지 못할 만치 찬란한 그대의 정숙(靜肅)이 오늘 아름다워라. 살아 있으되 정녕 살아 있다 하지 못할 우리네 하찮은 인생인 것을.

그대의 몸에 흘러내리는 샘물을 손에 적시며
나는 잠시 묵상에 잠긴다.
나는 이제 죽어 나무가 되리라.
나의 육신은 한 그루의 나무로 피어나리라.

나무로 환생(還生)해 사계절을 순회하며
하늘을 향해 오르다 오르다 지치면
다만 잎으로 지고 썩어져
또 다시 나무의 거름 되어 살리라.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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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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