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양심적 병역거부>

등록 2005.02.16 20:56수정 2005.02.17 10:22
0
원고료로 응원
지난해 5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 우리 사회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 논의에 법적 불씨를 당겼던 이정렬(서울남부지법) 판사가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병역의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복무 입법안이 제정될 때까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보석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판사의 이번 판결은 특히 지난해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위헌신청' 기각과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합헌' 판결 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다시 한번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련된 서적이 잇따라 출간되어 눈길을 끈다. 이남석 한양대 연구교수가 집필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그린비)>과 이석우 인하대 법대 교수가 엮은 <양심적 병역거부(사람생각)>가 바로 그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이남석 교수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했고, 이석우 교수는 현실 진단과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남석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과연 시민불복종이 될 수 있는가?


a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표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표지 ⓒ 김범태

그간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기술의 지배적 성격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가 등의 사회적 문제를 고민해 왔던 이남석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 사회의 소수자 문제에 본격적으로 천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때문에 이 책은 이미 발표된 <차이의 정치- 이제 소수자를 위하여> 등 인간 소외와 해방을 위해 노력해 왔던 저자의 그동안의 고심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의 개념과 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가로막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서적, 이론적 요인들을 분석하고 검토하고 있다. 또 다수결의 원리가 왜 소수자를 배제하게 되는지 살펴보고, 정의의 전쟁론과 그 토대가 되는 애국심이 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객관적 이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아울러 시민불복종으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가져오게 될 외형적 결과로 도입될 대체복무제의 의미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의 의미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과연 시민불복종이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단지 개인의 내면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그 결과 모종의 정치적 결과를 가져온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시민불복종으로 기능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더 나아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양심을 타고난 권리로 인정하라는 시민의식의 내면 투쟁이자 우리 사회 소수자의 차별을 일소하라는 집단적 시위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다수 시민의 통일성과 획일성에 대한 싸움이자 무의식적 내면에 잠재한 군사주의와의 투쟁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저자의 이러한 정의는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단순히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반전주의적, 평화주의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끝나지 않는 그 이상의 무엇을 갖고 있다"는 해석의 연장선에서 접근될 수 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을 둘러싼 기독교계의 '교파적 상충관계'에 따른 첨예한 반응과 여전히 상존하는 일반 시민들의 냉랭하고 따가운 시선에 대해 저자는 "다수파의 보편적 양심이 소수파의 특수한 양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소수의 특수성 인정'을 사회 공동체에 주문한다.

저자는 이와 함께 이미 우리 사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유형이 종교적 양심을 넘어 반전주의적·평화주의적 양심에 근거한 형태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상이 아닌,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이하 재림교) 신자들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과 함께 종교적 병역거부자의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는 점. 여호와의 증인이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여 처벌받는 반면, 재림신자들은 비폭력적 수단으로 군복무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양심적 협조자로서 집총훈련의 면제와 비전투병과 배치를 요구한다.

재림교인들의 이같은 입대 후 비무장 전투요원으로의 군복무 신념이 간간이 세미나나 토론회에서 제기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심층적으로 조명된 것은 이 책이 거의 처음이자 유일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장차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따른 우리 사회의 최종 결론은 이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인정한다면 어떤 형태로 인정할 것인가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되고 풀어가야 할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 문제에 관한 정치적 관점에서의 논쟁의 시급성과 함께 입법부 및 정치권의 보다 활발한 의견개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석우의 <양심적 병역거부 - 2005년 현실진단과 대안모색>
- 개인청원제도의 지속적 활용, 특별보고자 방한 유도 등 해법 제시


a <양심적 병역거부> 표지.

<양심적 병역거부> 표지. ⓒ 김범태

전공인 국제법 가운데 영토 분쟁과 국제인권법을 주요 분야로 연구해 온 이석우 교수가 처음 인권 문제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미네소타대 법대에서 국제인권법을 수강하면서부터.

이후 뉴욕대학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국제인권법 강의를 진행해 온 저자는 국제인권법의 일반성과 특수성, 나아가 한국에의 적용문제에 대한 오랜 개인적 고민을 가져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각각의 중요현안별로 집적한 첫번째 연구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것이 이번에 출간된 <양심적 병역거부- 2005년 현실진단과 대안모색>이다.

이 책은 크게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발표된 연구논문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등 주요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논문은 홍영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모임 공동대표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용의 증가', 이재승 국민대 교수의 '판례를 통해 본 양심적 병역거부', 장복희 가톨릭대 교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국제법, 국가관행 및 국내적 실천' 저자 이석우 교수의 '국제법상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권리보호 방안에 대한 고찰: 주제별 인권보호장치를 중심으로' 등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게재된 이들 논문은 지난해 9월 인하대에서 개최된 '현 단계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평가와 국제법적 접근 방안모색'에서 발표된 논문들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많은 글들 가운데 장복희 가톨릭대 교수의 논문이 유독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장 교수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채 국내법상의 모든 사법적 구제절차가 완료된 현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재론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비교법적 측면의 계속적 부각과 함께 현 유엔 인권보호의 체제 및 기능 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해 활용 가능한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한국 정부와 입법부가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 교수는 국제인권법의 구도 내에서 생각해 볼 때 지속적으로 개인청원제도를 활용하여 국제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심각성을 제고하고, 특별보고자의 한국 방문을 유도하는 방안을 해법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한국의 안보상황을 전제로 한 현재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국내법상 사법적 구제절차의 완료를 대체복무제 마련이라는 궁극적 목표점으로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장 교수의 판단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족모임의 홍영일 공동대표가 기술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용의 증가'란 제목의 논문도 독자들의 관심을 산다.

홍씨는 이 글에서 헌법적 의미의 양심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고 있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것이기에 무려 2년7개월을 끌어오다 지난해 8월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88조 합헌 결정은 "이 문제의 결론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더 구체적으로,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하며, 한국 사회는 이미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소유하고 있는지 실험 단계에 깊이 접어들고 있다고 단정한다.

부록으로 실린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수기는 양심적 병역거부 실천자들이 처하는 실제적 어려움과 고충을 이해하게 하고, 국가권력의 '인정없는 폭력'이 얼마나 악독하게 자행되었는지를 엿보는 데 도움을 준다.

이밖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자에 대한 차별 행위 개선' 결정문을 비롯, 인권고등판무관실의 '국제연합,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인정 그리고 대체복무제도의 시행' 보고서,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과 인권'을 다룬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공동보고서 등 주요자료도 이 문제를 접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제는 이상 아닌,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접근되어야"

a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 모습.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 모습. ⓒ 김범태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지난해 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의 1.5배(36개월)를 사회복지요원으로 근무하게 하고, 이를 빙자해 병역을 기피할 경우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2001년 국내 한 시사주간지를 통해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정면 제기된 이후 많은 시민들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상당 부분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국회의원들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에 호의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일부 이단 종파나 소수인들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때문에 이같은 시점에서 이 두 권의 책들이 소강상태에 빠져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을 넘어 입법화 등 변화와 제도적 개선책을 일구어내는 작은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인지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과욕일까.

덧붙이는 글 | 김범태 기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범태 기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 병역거부권과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대한 정치철학적 접근

이남석 지음,
그린비, 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4. 4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5. 5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