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극복한 여류화가의 자이툰부대 사랑가

김해 진영읍 '작가의 집'대표 한경혜 화백

등록 2005.02.17 19:06수정 2005.02.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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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부대 장병들로 부터 받은 엽서를 읽으며 환하게 웃는 한경혜 화백
자이툰부대 장병들로 부터 받은 엽서를 읽으며 환하게 웃는 한경혜 화백조수일
“자이툰부대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 그림엽서를 보냅니다.이 엽서를 부대원들과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경남 김해에서 지난 2001년 12월부터 ‘작가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화가 한경혜(30·경남 김해시 진영읍 내룡리)씨.

지난 해 12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부대’를 전격 방문해 장병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다는 보도를 보는 순간 장병들과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과 위안이 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바로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다.

'작가의 집'에서 매주 토요일 그림수업을 받고 있는 20명의 어린이 제자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자신들이 제일 잘 그린 그림 24점을 선정하여 가족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와 신년 연하장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그림엽서가 그곳에 있는 부대원들과 이라크 아이들한테 정서적인 안정과 위안, 소박한 기쁨이 될 것 같아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라크 어린이들이 이 엽서를 보면 한국인에 친절하고 환영할 것 같았습니다.”

곧장 그림엽서를 추가로 인쇄하였다.무려 6천세트 14만4천장(1세트 24장)을 크리스마스 전날 이라크로 우편을 통해 발송했다.엽서는 24kg 짜리로 37상자에 달했으며 6명의 어머니들이 3일 밤낮을 꼬박 새워 수작업으로 포장했다.
 
1상자 무게가 24kg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항공화물 규정 때문에 작업이 더디어졌고 일일이 무게를 달아가며 정량을 맞추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엽서제작비 300만원과 국제우편 발송료 491만 4천4백원은 전액 한씨가 부담했다.지난 해 7월 유년시절 뇌성마비를앓은 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파란만장한 삶과 눈물겨운 노력, 성공신화를 담은 자서전 <오체투지>(五體投地)를 출간해 출판사에서 받은 인세와 기타 수입으로 마련한 것이다.

그림엽서는 지극히 한국적인 풍물을 소재로 한 고추, 등잔, 옥수수, 벼 마늘 등이어서 장병들이 향수를 달래고 이라크 어린이들이 한국을 이해하기 좋은 작품이다.


그림엽서를 보낸 지 23일만인 지난 달 16일 황의돈 자이툰 사단장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이 담긴 메일을 받았다.황 사단장은 감사의 메일에서 “말없이 눈으로 가슴으로 자이툰부대를 격려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우리 장병들은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라며 “앞으로 우리들은 이라크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선생님처럼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지극한 정성을 다해 평화재건활동을 전개하겠습니다”라고 감사와 각오를 전했다.

더불어 17일에도 휴가 중인 부대 인사참모 최록하 중령를 한씨에게 직접 보내 "현지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내용의 감사패와 자이툰부대 셔츠, 선물 세트 그리고 파병기간 동안 장병들의 활동상을 담은 동영상 CD 등을 전달하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최근까지 한씨와 자이툰부대장을 비롯한 부대관계자들은 10여 차례가 넘게 메일로 애틋한 마음과 사랑을 주고 받고 있다.물론 그가 보낸 그림엽서를 받은 장병들이 감사의 답신을 보낸 것도 수십통이 넘는다.

'자이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셔츠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자이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셔츠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조수일
기자가 찾은 16일에도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장병들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의미있고 귀중한 선물이었다"는 감사의 서신과 선물세트를 펼쳐 보였다. 또 자이툰부대 장병들에게서 받은 그림엽서를 훈장보다도 더 귀하다며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의 자이툰부대에 대한 사랑은 그칠 줄 모른다.흡사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모성애를 떠올리게 한다.자이툰 부대가 쿠르드 정부 주요 인사들에게 한국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나아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물로 그의 한국화 작품을 부탁하자 흔쾌히 지난 9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한 산수화와 추상화 100호(132cm*162cm)짜리 8점을 보내기로 하였다.

 8점 모두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한 작품들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의 피와 땀이 묻어나는 애장품이자 수작들이다.개인전을 위해 아껴 두었던 것을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한 일에 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쾌척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 작품들은 자이툰 부대 2진 교대병력과 함께 이라크 현지로 보내질 계획이다.한씨가 작품을 직접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여 보낸 사진을 감상한 자이툰부대 장병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보냈다고 자이툰 부대 인사참모 최록하 중령은 전한다.

또 지난 2002년 경남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입상한 십장생 스카프10점을 산수화를 그린 오동나무 상자와 함께 정성스레 포장하여 자이툰 부대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실크에 십장생도를 그려 넣었기 때문에 이라크인들이 다 좋아할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은 인생 역정은 전국 유수 언론들이 지면과 방송을 통해 소개했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시각장애인 연극배우 김소영(34)씨와 힘날라야 칼라파타르(해발5천6000미터)를 정복해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몸소 보여주었다.
 
스무살이던 지난 95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회, 입선 5회라는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한국화가이다. 

최근에는 홍익대 미술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지난 2000년 10월부터 ‘장애학생을 위한 무료 그림교실’을 운영하였다. 현재도 ‘작가의 집’에서 주1회 초등학생에서부터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장애학생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이런 활동상과 인간승리의 모습에 감동, 각계각층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전시회와 작품 준비에 소홀해질까봐 고사하고 있다고 옆에서 그를 지키고 있는 어머니 유광식씨가 전한다.

양로원을 만들어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는 “장병들이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라는 말로 자이툰부대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대신했다.

취재후기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

한씨와 연락이 늦어 도착 시간이 늦었는데 매우 친절히 대해 주셨습니다. 더구나 이틀간 귀찮게 해드렸는데도 시종 웃음과 우스개로 즐겁게 해주신 두 분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니는 "딸이자 친구처럼 지낸다"고 말씀하시며 딸 칭찬을 계속 하셨습니다. 오체투지란 자기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양 무릎과 팔꿈치,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뇌성마비를 앓아 실의에 빠져있던 그는 7살 되던 해 성철 스님이 “절을 하루에 1천번 씩 해 병마를 이겨내라”고 했다는 말씀을 듣고 이후 23년간 매일1천배를 하며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천배를 하며 정신과 몸이 맑아지고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딸이 세상살아가는 수단을 하나라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중학교을 졸업(비교적 늦은 나이)하자 그림공부를 시켰답니다. 그리고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했고요.

지금은 '작가의 집'을 운영하며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체험'을 통해 우리 문화를 알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김치강의와 도자기 강의, 딸은 한국화 강의를 하고 외부 전문가사을 초빙하여 다도 등 다양한 우리 문화 알리기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는 4월 13일부터 19일 까지 서울 인사동에 있는 공화랑에서 개인전 준비와 인사동 이형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미술 100인작가 초대전'에 출품요청을 받아 작품 준비에 바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일욕심이 너무나 많아 일거리를 찾는데 고심하고 한가지에 빠지면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작품활동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박한(결코 소박하지 않아 보이지만) 꿈울 위해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라는 그녀의 소망이 꼭 이루어 질 것으로 믿습니다. / 조수일

덧붙이는 글 | 이틀간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준 한화백과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틀간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준 한화백과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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