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 100개는 왜 보이지 않나

[정형근 의원 소동] 현장에서 보도진에게 보여줬다면?

등록 2005.02.17 22:37수정 2005.02.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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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왼쪽은 5단 묵주, 오른쪽은 1단 묵주.

왼쪽은 5단 묵주, 오른쪽은 1단 묵주. ⓒ 김용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염주는 낯설지 않다. 불교 문화권이었던 한국에서 염주는 불교를 상징하는 것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쓰는 묵주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면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천주교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고 신자 수가 불교 신자보다 적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염주가 어느 정도는 장신구로 사용되는 반면 묵주는 그런 식의 사용이 거의 없다.

천주교에서 묵주는 로사리오 기도를 위해 쓰인다. 흔히 묵주기도라고도 불리는 이 기도는 묵주의 알을 셈하며 전례 형식에 맞게 드리는 기도다. 역대 교황들이 특별히 신자들에게 많이 하라고 부탁한 이 기도는 천주교 신자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도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례를 받게 되면 대부분 묵주를 선물로 받는다.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로 이어지는 묵주기도는 예수의 삶을 묵상하는 구성으로 짜여 있다. 그 기도 안에는 자신의 기복이나 안위를 바라는 내용이 없다. 사실 예수의 삶이 그랬기 때문이다. 예수는 항상 가난한 자와 함께 있으며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존의 질서를 뒤엎는 말이었다.

부자들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래서 예수를 싫어했다. 그들에 의해 온갖 고문 끝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 바로 예수다.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하며 예수의 일생 속에서 참된 신앙의 의미를 생각한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속세에 펼쳐진 편한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환희와 영광을 찾아가는 것임을 묵주기도를 통해 항상 상기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16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호텔 방에서 40대 유부녀와 함께 있었던 상황에 대해 묵주 100개를 전달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덕분에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묵주가 널리 알려지고 있는 모양이다.

정 의원의 성명에 따르면 평소 알고 있던 동인(同人)에게 필리핀산 묵주100개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그것을 받고자 스스럼없이 호텔 방에 가서 묵주를 받은 것이 사건의 전부라고 한다.

전후 상황을 떠나 '묵주'가 매스컴을 탔으니 천주교 신자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돈 들이지 않고 천주교를 알린 일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형근 의원이 “묵주”를 받았다는 그 보도를 접하며 얼굴이 화끈거렸던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행여 나도 세간의 의혹처럼 '부적절한 만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안타까운 것은 묵주 100개의 실재 여부가 언론보도나 정 의원의 성명서에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묵주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기는 해도 100개면 한 손에 들어가는 양은 아닐 터다. 정 의원과 함께 있었던 그 여인이 현장에서 침착하게 보도진에게 묵주 100개를 들이밀었더라면 사건이 이렇게 커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록 본의 아니게 '묵주'가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만 천주교 신자로서 썩 달갑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만약 호텔 방이 아닌 성당에서 묵주를 건네 받았더라면 쓸데없는 '묵주' 스캔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앞으로 묵주 받으러 호텔방 갔다는 말이 세간의 유행어가 될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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