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린 마을 뒷동산노태영
뒷동산에 대한 추억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뒷동산이 정겨운 사람도 있고, 가슴이 시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뒷동산만 생각하면 즐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뒷동산은 삶의 중요한 시계추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이 허전하고 고달플 때 뒷동산은 나를 동화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가 나의 시에서 “뒷동산이 눌러 앉아 있는/내 삶에 어울리는/방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방 하나 있었으면)라고 언급한 것처럼 뒷동산은 도피처와 안식처로 나에게 항상 다가온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는 외로울 때마다 동무보다는 시골의 뒷동산을 더 많이 그리워했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시골의 뒷동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고 우리의 어렸던 시절의 생활과 생각이 녹아 있는 곳이다.
뒷동산에 우뚝 솟아 있는 소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소나무가 되고 뒷동산의 푸른 숲을 생각할 때면 난 어느새 고향 언덕마루에서 뒹굴며 동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뒷동산에 올라보면 온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인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 뒷동산에 올라가 풀숲에 누워 있으면 온갖 풀벌레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달개비가 그리움이 가득한 눈망울로 이야기를 해오고, 강아지풀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정겨운 인사를 한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면 하얀 구름이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연신 동쪽으로 동쪽으로만 달려간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뒷동산은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가 조용히 물러가곤 한다. 뒷동산은 단순한 동네의 배경이나 부속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였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뒷동산에서 놀기도 하고 동생들을 돌보기도 하고,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소를 데리고 다니곤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많은 어린시절의 추억은 상당히 많은 부분은 바로 뒷동산과 관련이 있다.
봄이 오면 아이들이 제일 먼저 올라가는 곳이 뒷동산이다. 바로 참꽃(진달래꽃)이 피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이 피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도 상큼한 꽃이 피게 된다. 그리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참꽃을 따 먹다 보면 배가 부를 정도였다. 여름이면 뒷동산은 온갖 산열매와 풀벌레들이 가득 찬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신기하고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그득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활은 바빠진다.
그러나 우리 뒷동산을 대표하는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소나무다. 소나무가 빙 둘러싸고 있는 뒷동산은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준다. 많은 소나무가 만들어 내는 온갖 조형물 같은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런 소나무와 더불어 나도 컸고 내 마음과 내 생각도 컸다.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 쓴 소나무는 이렇게 수백년을 견디어 왔고 앞으로도 수백년을 견디어 낼 것이다. 이런 소나무들과 보낸 어린 시절은 나에겐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감성의 자산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