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똥에서 무슨 냄새가 날까?

바깽이의 베트남 여행기(2)

등록 2005.02.18 16:52수정 2005.02.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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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이안 꽃처마

호이안 꽃처마 ⓒ 박경

이른 아침부터 짐을 챙겨 호이안으로 가는 오픈투어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자불자불 졸음이 쏟아지는데, 5월의 배꽃처럼 희끗희끗 뭔가가 자꾸 눈앞에서 휘날린다.

퍼뜩 눈을 떠보니 하얀 아오자이 행렬…행렬…. 자전거를 탄 여학생들이 하얀 아오자이를 휘날리며 스쳐 지나간다. 그네들의 모습을 볼라치면 너도나도 한결같이 아오자이 뒷자락은 얌전하게 엉덩이까지만 늘어뜨린 채 나머지는 허리춤에 야무지게 접어 넣고, 앞자락은 왼손으로 살풋 말아쥔 채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다.


아오자이 옆트임으로 살짝 살짝 드러나는 옆구리는 또 얼마나 맵시를 더해 주는지! 군살없는 청춘의 날렵함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변화의 물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것. 그즈음의 제법 멋을 부릴 나이의 젊은 여자라면 대부분 논을 쓰지 않고 갭(GAP)이라고 새긴 야구 모자를 약속이나 한 듯이 쓰고 있었다. 하얀 아오자이에 챙 넓은 모자 논을 쓰면 한결 더 멋질텐데….

a 논을 파는 가게

논을 파는 가게 ⓒ 박경

베트남 모자 논은 이제, 일하는 사람들의 햇빛 가리개로, 관광객들이 호기심에나 써보는 정도로 전락한 듯 하다. 논은 아름다운 모자다. 특히 그 뒷모습은 더 아름답다. 보통 다른 모자들이 사람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거나 눈부심을 막아주는 정도의 가리개라면, 논은 그 넓은 챙으로 광범하게 햇빛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 어두운 곳에서도 그 실루엣이 화려하게 드러난다. 모자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우르르 알리는 듯 아름다운 모자, 논.

아오자이를 눈부시게 휘날리며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여학생들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노라면 어느덧 호이안에 이르게 된다. 새소리 같은 이름의 호이안. 유네스코에서 보존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올드타운. 내가 마치 걸리버가 된 듯, 호이안은 아담하고 동화 속 마을 같은 분위기다.

담벼락이며, 나무마다 새초롱이 조롱조롱 걸려 있는 마을. 실크옷을 즐겨 입는다는 호이안 사람들, 그래서 멋쟁이들을 위한 실크상점이 줄느런하고, 상점마다 진열된 오래되고 아기자기한 갖가지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겨 걷고 있노라면 눈앞을 느닷없이 가로지르는 작은 강물…. 햇빛을 받은 물비늘이 하염없이 반짝거리는 고요함….

a 호이안의 아침

호이안의 아침 ⓒ 박경

만일 내 인생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게으름만 허락될 그런 한 때가 주어진다면, 난 그 한 때를 호이안에서 보내고 싶다. 열대의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아침에 일어나 초롱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어슬렁어슬렁, 지붕에서부터 늘어져 아예 처마가 되어버린 꽃타래들을 바라보며 시장에 이른다… 그곳엔 색깔도 가지가지, 모양도 가지가지인 과일들이 신선한 아침을 일깨우고 있다. 솔방울 모양의 망커우, 씨가 주근깨처럼 박힌 연지처럼 붉은 탄롱, 마늘 모양의 망꿋, 푸른 오렌지 깜, 파파야 ….

아침 끼니로 과일 서너알 사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시끌벅적 생선을 흥정하는 목청에 어느덧 강가까지 이르게 된다. 비린내, 삶의 비린내가 강렬한 베트남 아줌마들의 억척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 호이안의 중앙시장. 그렇게 아침 나절을 게으르기 짝이 없게 작은 포구 호이안을 둘러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한가롭고 느긋한 마을이 한 때 중국이나 일본, 서구 각국들이 비단이나 도자기를 사기 위해 쥐새끼 풀방구리 드나들듯 드나들었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아, 시간의 무상함이여, 가뭇없는 바람이여….

호이안의 게으름은 나짱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까지 이어졌다. 대낮이지만, 9시간의 지루한 시간을 버텨볼 요량으로 침대기차를 탔다.
베개를 등에 대고 비스듬히 침대에 누워 차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게으른 호사를 다시 한번 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논, 지천으로 깔린 야자 나무 꼭대기에 무당의 방울처럼 옹기종기 붙어있는 코코낫 열매들…. 과일과 쌀국수만 보더라도 먹을 것 만큼은 풍요로운 땅 베트남이 실감나는 광경이다.

나짱에서의 풍부하고 싱싱한 해산물은 나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거기에 베트남 맥주 바바바 한 잔은 여행 마지막 밤을 더욱 아쉽게 해 주었다.


a 호이안 강

호이안 강 ⓒ 박경

다음날, 새벽부터 호들갑스럽게 나를 깨우는 게 있었으니. 베트남에서 일주일 내내 화장실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는데, 마지막 날 잠을 설치게 만들다니. 지난 밤 먹은 맥주효과를 단번에 보는가 싶다.

아무튼 난 마지막 날 아침, 일주일치 먹은 음식을 모두 소화시켜 배설하게 되었는데, 그것만도 충분히 만족할 일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경험을 하고 말았다. 난 그 놀라운 경험을 일주일 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가족에게 제일 먼저 알릴 의무가 있다고 느껴, 화장실을 뛰쳐 나와 외쳤다.


“여보! 기령아! 내 똥에서 베트남 냄새가 나! 베트남 냄새가 난다구!”

내 똥에서 베트남 냄새가 났다. 파파야 냄새 같기도 하고, 베트남 간장 늑맘 냄새 같기도 하고. 일주일동안 베트남에 적응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동안 드디어 베트남 속으로 들어왔다는 걸 난 그렇게 확인한 셈이다.

난 여기서 새로운 철학을 깨닫게 된다. 낯선 땅 낯선 곳에서 그곳의 냄새가 나는 똥을 누어보지 않고는 그 곳을 감히 느꼈다고 말하지 말라. 내 똥에서 나는 그곳의 냄새는, 바로 내가 그곳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서 재배한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시키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그것만큼 확실한 적응이 어디 있겠는가. 남편은 개똥철학이라고 비웃었지만, 난 사람똥철학이라고 되받아쳤다.

호치민을 떠나와 인천공항에 떨어졌을때 난 제일 먼저 코부터 킁킁거렸다. 우리나라에선 과연 무슨 냄새가 날까? 간장 된장 냄새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냄새도 나질 않는 것이다. 아니 아무 냄새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 제집 제몸에서 나는 냄새 못느끼듯이. 냄새가 안 나는 걸로 난, 내 나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떠나온 지 이제 겨우 보름이 지났건만 벌써부터 베트남 냄새가 그리워진다. 그리고 이제 그 냄새는 진한 향기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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