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6

남한산성 - 쥐가 숨다

등록 2005.02.18 17:02수정 2005.02.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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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일이로고.”

인조는 몸부터 추스르라는 내관들의 말을 뒤로 한 채 성문 밖에서 장판수의 이름과 직분을 물어본 뒤 공을 치하하기에 바빴다. 장판수는 깊이 몸을 숙이며 속으로는 이번 일이 자신에 대해 끼칠 영향에 대해 셈을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한 자리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닌가! 이 장판수에게도 하늘이 기회를 주시는가 보구나!’

치하의 말을 마친 인조는 내관을 가까이 불러 무엇인가를 지시하더니 곤룡포를 벗어 장판수에게 주었다.

“오늘의 일을 과인은 잊지 않겠노라.”

장판수는 임금을 욕했던 일을 잊고 너무나 감복한 나머지 떨리는 손으로 곤룡포를 받아 들었다. 장판수로서는 워낙 감격스럽고 황송한 일이었기에 이를 보는 내관 중 하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사실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인조는 내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총총히 성 안으로 사라졌다. 인조의 뒤로는 곤룡포를 받아든 채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장판수가 아예 땅바닥에 얼굴을 묻다시피 한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래 이제 팔자를 고친 게야. 흐흐흐….”

장판수의 웃음은 곧 눈물로 변했다. 그 눈물은 인조의 성은에 감격해서가 아니라 여태껏 살아오면서 남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다.


“이보시게. 나 좀 봅세.”

장판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전 인조의 곁에 있던 내관이었다. 내관은 장판수를 데리고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는 주위를 살폈다.

“이번 일은 세상이 무너져도 입을 봉해야 하네. 알겠는가?”

장판수는 내관이 하도 굳은 얼굴로 당부하자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허, 이거 알아듣는 게 맞나? 자, 이걸 받게나.”

내관은 장판수의 손에 황금 한 냥을 쥐어주었다. 장판수는 눈이 휘둥그레 해 졌다. 임금의 곤룡포에 이어서 황금 한 냥까지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곤룡포 값이네.”

내관은 다시 황금 한 냥을 건네주고서는 장판수의 손에 들린 곤룡포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문득 장판수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궁중의 내관이지만 급히 피난을 온 통에 황금까지 챙겨 남에게 준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임금이 하사한 곤룡포를 도로 빼앗아 가는 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장판수는 황급히 돌아서려는 내관을 불렀다.

“이보시라우! 이건….”
“자네가 궁중의 법도를 모르는 모양인데 함부로 곤룡포를 지니고 있다가는 큰 곤욕을 치를 것이기에 가져가는 것일세. 다시 이르지만 이 일은 함구하게!”

내관은 말을 남기고서는 재빨리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황금 두 냥을 든 채 멍해 있던 장판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내관을 불렀다.

“이보시라우! 거기 서시오!”

내관은 장판수의 말은 들은 척도 않은 채 걸어갈 뿐이었다. 장판수는 자신이 뭔가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시라우!”

그 순간 장판수는 옆에서 달려온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고 말았다. 장판수가 화가 나 돌아보니 서흔남이었다.

“아이쿠! 이거 큰 결례를 했습니다!”

장판수는 크게 화를 내려나가 새벽녘에 화살을 쏘아 자신을 구한이가 서흔남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서는 태도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아까 일은 고마웠네만 내래 자네 때문에 사람을 놓쳤구만. 하여간 그때 자네 덕분에 살았네.”

서흔남 역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퉁명스럽고 도전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럴 때는 서로 돕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고, 수어사께서 찾으신다고 하시니 어서 가보시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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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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