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에 취임한 만화가 이현세씨.안소현
짧게 자른 머리, 청바지와 롱코트 차림으로 한 눈에 봐도 ‘작가’임을 느끼게 한 이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오마이뉴스?”하며 반갑게 악수를 청하셨다.
지난 21일 시원함과 꾸밈없는 순수함을 느끼게 했던 즐거운 만남은 <오마이뉴스> 예비 시민기자 안소현(24)씨와 함께 그의 화실에서 12시부터 2시간 동안 이뤄졌다.
“작업실 조용하죠? 내가 작업할 때 몰입하는 스타일이라 음악도 없어요. 예전엔 음악을 들었었는데 김건모씨 이후로 딱 끊었어요. 이해가 안 되고 귀에 안 들어오니 신경이 쓰이고, 신경을 쓰다 보니 작업에 몰두할 수가 없더라고요. 현대적인 음악에서 멀어져서인지 현대물에서도 멀어지게 되었고.”
6층 건물 맨 위층에 자리잡은 화실은 정말 조용했다. 아니 적막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선생님은 요즘 음악은 이해를 못하기에 안 듣는다며 그 영향은 작품에도 미친다고 했다. 햄버거와 힙합을 모르면서, 그것을 즐기는 친구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난 1월 17일 한국만화가협회 신임회장에 취임했다.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한국의 만화 열풍을 이끌며 만화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스타만화가 회장이 탄생한 것이다. 만화산업과 관련 그에게 거는 사람들의 기대는 특별한 것 같다.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물었다.
“내부로는 젊은 작가들과 선배 작가들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부터 외부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만화산업 전반에 대한 검토까지 할 일이 참 많아요. 제가 워낙 대중적이고 발도 넓다 보니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협회 회장에 앉혀 놓은 건지도 모르죠.
현재 오프라인 잡지는 고사상태에요. 출판사의 홍보수준에 머물고 있는 잡지는 매달 1권, 정해진 작가 숫자, 작가당 배정된 쪽수 등 문제가 많아요. 예를 들어 한 작가당 20쪽이 배정됐다고 치면 작품의 전개상 한 쪽을 더 그리거나 덜 그리고 싶어도 무조건 쪽수를 채워야 하는 구조죠. 안 그러면 다른 작가들이 피해를 보니까요. 또 정해진 작가 숫자와 쪽수 때문에 신인작가가 데뷔하기는 무척 힘들죠.
요즘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온라인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죠. 극히 소수에 국한됐고 너무 폐쇄적이에요. 인기작가 사이트에서 그 만화만 보고 그냥 나와 버리거든요. 대본소와 서점은 다르잖아요. 새로운 만화책이 나왔나 만화가게를 갔을 때 다른 손님이 그 책을 보고 있다거나 아직 안 나왔거나 하면 얼마든지 다른 만화를 볼 수 있거든요. 서점도 여러 만화책을 두루 살펴볼 수 있고요. 온라인은 안 그렇잖아요.”
"<보물섬> 같은 온가족이 함께 보는 온라인웹진을 만들 겁니다"
그는 만화를 살리려면 시대의 변화와 만화 소비층의 변화된 성격을 제대로 짚어야 한다고 했다.
“만화시장을 유아용, 청소년, 19세ㆍ성인용 등으로 너무 세분화시켜 놨어요. 유아용은 표현의 제약에 따라 매일 선생님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까 창작 의욕이 떨어지고, 성인용은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성인물 표시를 해야 되니 모두 불량하고 음란하다는 이미지죠. 만화시장에서 유아와 성인 양 쪽이 궤멸됐어요. 오직 청소년들, 10대 중심의 만화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지금 청소년들에게 만화가 어떤 존재에요? 용돈의 범위에서 영화나 게임 등 다른 것 다 즐기고 남는 돈으로 선택하는 게 만화입니다. 예전엔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오락과 여가시간의 최상위에 만화가 있었지만 지금 청소년들에겐 그렇지 않아요.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변했어요.”
그는 문제의 해답을 ‘온라인웹진’에서 찾았다. 창간하고 얼마 못 가서 사이트를 폐쇄하는 마니아 중심의 웹진이 아니라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웹진을 꿈꿨다.
“<보물섬> 같은 온가족이 함께 보는 온라인웹진을 만들 겁니다. 웹진의 지면 구성은 이쯤 될 겁니다. 30% 정도는 이두호, 고우영 선생님처럼 서사성과 작품성이 짙은 만화로 하고, 20% 정도는 공모전 수상자들의 작품 발표지면으로 활용했으면 해요. 공모전에서 입상한 유망한 신인작가들이 지면이 없으니까 ‘상금사냥꾼’화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거든요.
나머지 50%는 기획성 만화로 구성하려 합니다. 사업가들이 좋아할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으로 산업적 활용이 풍부한, 철저하게 기획된 만화를 보이는 거죠. 그리고 만화가협회 등 만화 관련 단체와 함께 의료, 법률 등 전문영역의 기획만화도 선보였으면 해요. 변호사와 시나리오 작가, 만화가 등이 함께 기획해서 새로운 만화를 만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