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왜곡된 땅 이름 바로 잡자

녹색연합, 일제가 ‘창지개명’한 백두대간 땅 이름 22개 발표

등록 2005.03.01 11:34수정 2005.03.0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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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지명의 왜곡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국토의 특징이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며 백두대간 땅이름 찾기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지명의 왜곡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국토의 특징이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며 백두대간 땅이름 찾기의 시급성을 강조했다.이민우
일제강점기 민족혼 말살에 혈안이 되었던 일제는 우리말과 글을 못쓰게 한 것은 물론이고 사람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다. 이른바 ‘창씨개명’이다.

해방 60주년이 된 지금은 아무도 일제강점기 시절에 쓰던 자신의 창씨명을 쓰지 않지만 우리 겨레 곳곳에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창지개명(創地改名)’된 이름들이 남아있다.

녹색연합은 3.1절을 하루 앞둔 2월 28일, 한국언론재단 7층 환경재단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에 의해 왜곡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땅이름 22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번에 찾아낸 땅이름 22개는 녹색연합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말까지 3개월 동안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32개 시군의 자연지명(산, 봉우리, 계곡, 폭포, 마을 이름)과 행정지명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다. 조사는 시군청, 문화원, 지역주민 현장방문 조사를 비롯해 고문헌과 고지도와 일제강점기 이후 만들어진 지도를 비교분석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일제 ‘왕(王)’자를 ‘황(皇)’ 또는 ‘왕(旺)으로 왜곡

조사결과 일본은 우리민족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큰 산이나 봉우리의 이름에 들어 있는 ‘왕(王)’자를 의도적으로 ‘황(皇)’또는 ‘왕(旺)’으로 바꿔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천황’이나 ‘일본왕(旺=日+王)’을 연상시키는 방법을 쓴 것이다.

속리산 천왕봉(天王峰)과 계룡산 천왕봉은 일제 때 천황봉(天皇峰)으로 바뀌었고, 가리왕산(加里王山 -> 加里旺山), 설악산 토왕성(土王城 -> 土旺城) 폭포 등도 바뀌었다. 이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상태 그대로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억지로 왜곡한 것이 확인된 백두대간 땅 이름 22개. 일제는 ‘임금, 군주, 여럿 중에 으뜸’이란 뜻이 있는 ‘왕(王)’자를, 자기네 왕에 대한 호칭인 천황을 의미하는 ‘황(皇)’과 일(日)과 왕(王)이 결합돼 일본왕을 연상시키는 ‘왕(旺)’로 바꿔버렸다.
일본제국주의가 억지로 왜곡한 것이 확인된 백두대간 땅 이름 22개. 일제는 ‘임금, 군주, 여럿 중에 으뜸’이란 뜻이 있는 ‘왕(王)’자를, 자기네 왕에 대한 호칭인 천황을 의미하는 ‘황(皇)’과 일(日)과 왕(王)이 결합돼 일본왕을 연상시키는 ‘왕(旺)’로 바꿔버렸다.녹색연합
녹색연합 박영신 상임대표는 “백두대간 곳곳은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에 창지개명된 왜곡된 이름으로 얼룩져 있다”며 “이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깎아내리고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땅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대표는 “녹색연합은 광복 60돌을 맞아 백두대간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 ‘백두대간 우리 이름 바로 찾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백두대간에서 일제 강점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 생태가 어우러진 우리 땅이름으로 바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왜곡한 땅이름 왜 바로잡지 못하나?

그렇다면 해방 6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시대에 왜곡된 땅 이름을 바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연합의 김제남 사무처장은 “정부에 땅이름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자연지명은 건설교통부가 담당하는 측량법에 따라 각 시군구 ‘지명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녹색연합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두대간 보호구역에 포함되는 32개 시군 가운데 지명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 곳은 47%인 15개소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중 6곳만이 단 한 차례씩 지명위원회를 열었을 뿐,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한 예로 지명위원회 관련 업무를 충주시에 문의했더니 서로 다른 부서로 떠넘겼고, 김천시의 경우엔 조례상으로 문화공보실로 되어있는데 담당자가 없었다.

김제남 사무처장은 “항일운동이 일어났던 지명을 아예 없애려 다른 이름을 붙여 놓은 곳도 있었다”며 “정부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백두대간 땅이름을 찾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강요됐던 '창씨개명'은 해방과 더불어 사용하지 않고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제멋대로 '창지개명'한 산과 봉우리, 폭포 이름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사람들에게 강요됐던 '창씨개명'은 해방과 더불어 사용하지 않고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제멋대로 '창지개명'한 산과 봉우리, 폭포 이름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녹색연합
왜곡된 땅 이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녹색연합은 일제가 왜곡한 땅 이름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으로 우선 지명 변경사례의 교훈을 계승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995년 광복 50돌을 맞아 국토지리정보원은 일제가 왜곡한 이름 중 ‘인왕산(仁旺山)’을 ‘인왕산(仁王山)’으로 바로 잡았으며,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축전리는 일제강점기 때 빼앗긴 땅이름을 ‘산양리’로 바로잡은 바 있다.

아울러 녹색연합은 땅 이름 바로잡기 대안으로 △ 제대로 된 땅 이름 조사를 위한 정부 예산과 인력지원 방안 마련 △ 땅의 형태가 달라지는 댐, 도로, 간척사업 등에 앞서 땅 이름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전지명조사제도’의 법제화 △ 통일을 대비한 행정구역과 땅 이름 정비를 위한 남북 논의의 장 마련 △ 우리 땅이름의 표기의 국제 통일을 위한 외교적 노력 등을 제시했다.

김 사무처장은 “땅은 물이 흐르고 산이 있고 사람이 생산 활동을 하며 문화와 역사를 누려왔던 곳이다”라고 지적한 뒤, “일제의 왜곡으로 사라져버린 우리의 역사와 문화, 국토의 특징이 살아있는 산과 고개, 마을 이름을 하루빨리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국토지리정보원에 ‘일제 강점기에 왜곡된 백두대간 우리 땅 이름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와 ‘백두대간 지도 표기를 위한 시민들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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