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충의사 박정희 현판 훼손 과연 옳았나

일제잔재·독재잔재도 '역사흔적'으로 남기자

등록 2005.03.03 10:19수정 2005.03.0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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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 중에서 총 35개소의 42개에 걸쳐 박정희씨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들 중 국보, 보물, 사적은 단 3곳인데 국보 50호인 도감사 해탈문은 2003년 5월 복원했고 수원 화성 문한각도 7개월 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교체됐다. 남은 것은 광화문 현판뿐이라고 한다.

박정희 정권뿐 아니라 신군부 세력들도 문화유산에 숱한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들은 부족한 정통성을 미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성역화 사업을 벌였다.

문화유산연대는 일제 잔재 청산, 군부독재정권의 청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포지티브(positive)한 역사뿐만 아니라 네거티브(negative)한 역사도 사실 그대로 기록되고 후대에 물려주어야만 역사의 왜곡과 권력자에 의한 미화 내지 축소 위험이 없어진다고 본다.

최근 과거사 청산이 시대적 요구로 급부상하면서 친일잔재와 일제시대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훼손 및 철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66주년이 되는 3월 1일 오전 충남에서는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 현판을 무단으로 떼어냈다.

우리는 역사와 문화유산은 기념될 것만 남겨서는 안되고 부정적인 문화유산(네거티브 문화유산)도 남겨서 기록해야 한다고 본다. 시민사회도 기록문화에 대한 새로운 마인드를 정립해야 할 때다. 아래는 필자가 사무처장으로 있는 문화유산연대가 지난 2일 발표한 논평이다. <필자 주>


우리는 역사를 편협적으로 해석해 역사문화유산을 훼손하는 현실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3·1운동 66주년이 되는 해이자 광복 60주년, 을사조약 체결 1백년이 된다. 어느 때보다 과거청산의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제 잔재라는 이유만으로 역사문화유산을 훼손되고 헐어 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은 2001년 11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정문에 걸려있던 ‘삼일문’ 현판을 강제적으로 떼어 냈다. 탑골공원은 3·1 만세운동을 일어났던 곳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철거 요구가 비등했고, 결국 강제적으로 현판을 떼어냈다. 친일파이자 쿠데타 세력인 박정희씨에 의해 쓰여진 현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던 조선일보 윤전기도 '안티조선'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철거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독립기념관 이사회는 2003년 3월 17일 철거결정을 내렸다.


이번 3·1절을 맞아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 지부장이 충의사 현판을 몰래 떼어 내어 손상시켰다. 충의사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성한 현판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충의사는 1967년 박정희 정권에 의한 성역화사업으로 세워졌으며 본당에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충의사 현판은 박정희씨가 1968년 윤봉길 의사 의거일(4월 29일)에 준공식 겸 기념행사를 하면서 친필로 쓴 것이다.

올해는 치욕적인 을사늑약이 체결된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는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민족정기의원모임 등과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을 친일사료전시관으로 활용하자는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해방 이후 친미파인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민특위가 불법적으로 해산되고 친일파 박정희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는 나라,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권좌에 오른 전두환, 노태우 쿠데타 세력들이 정권과 역사를 좌지우지한 것은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아픈 역사에 기인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뒤늦었지만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가속화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하고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사회의 성숙도 만큼 역사 인식도 변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네거티브(negative)한 역사도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물론 전국에 산재해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소, 기념관 등에 남겨져 있는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들의 잔재를 일소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가 아무리 치욕스럽고 부끄럽다고 해서 훼손해서는 안된다.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들에게 역사의 명암을 사실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중명전을 친일역사기념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것도 역사를 제대로 남기자는 뜻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탑골공원 삼일문 현판, 독립기념관의 조선일보 윤전기, 충의사 박정희 친필 현판처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한곳에 모아 친일파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역사를 정권의 입맛대로 왜곡, 확대 과장한 것을 사실로 남겨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역사적 인식이라고 본다.

문화선진국들은 2차세계대전의 상처와 아픔이 아로새겨 있는 역사유산, 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록'하자는 의미다. 현재와 같은 방식이 확대 재생산된다면 전국에 존재하면서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 대부분이 강제철거 당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이는 학술적, 역사적으로도 큰 과오이며 미래 세대에 대해 또다른 역사왜곡의 멍에를 물려주는 것이다.

네거티브 역사, 네거티브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민족운동단체의 새로운 역사인식과 폭넓은 이해를 당부한다. 또한 문화유산연대는 일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역대 정권들이 벌인 반민족적, 반역사적, 반민주적 잔재들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친일기록관, 군사독재기록관 등을 조성해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미래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우리세대의 올바른 역사의식이라고 판단한다.

거듭 당부하고자 한다. 더 이상 반일이라는 민족주의적 잣대로만 네거티브 문화유산을 훼손해 역사의 흔적을 사라지게 하는 또다른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문화유산연대(http://www.koreanheritage.or.kr)

덧붙이는 글 문화유산연대(http://www.koreanheritag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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