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 되어보니...

<초보 학부모 잠못들게 하는 촌지괴담> 기사를 읽고

등록 2005.03.04 05:19수정 2005.06.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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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초보 학부모 잠못들게 하는 촌지괴담> 기사를 보고 나서 한마디로 참 서글픈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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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 학부모 잠못들게 하는 촌지괴담

이 글을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교사나 학부모님들께서 참고했으면 하는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써 보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시켜 놓고 잠 못들 정도로 불안한 것을 저는 압니다. 저 역시 똑같은 일을 겪었으니까요.

되돌아온 촌지와 편지 한장

당시 저도 고민하다가 숙제하는 기분으로 봉투 하나를 드리고 왔습니다. 무거운 숙제를 마친 기분으로 그날 밤 속 편하게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주에 담임 선생님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더군요. 황당하고 씁쓸했습니다.

그 다음 새로 오신 담임께는 편지를 썼습니다. 제 마음과 행동을 그대로 담아서 아이 편에 보냈습니다. 촌지 건넨 이야기까지. 다행히 선생님이 잘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후로 휴지걸이를 하나 보내 달래서 그거 하나 보내는 것으로 초등학교 촌지 문제는 끝냈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내내 임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신껏 밀고 나갔습니다. 캔 커피 두개와 포장된 2천원짜리 떡을 사가지고 가서 나눠 먹으면서 마주앉아 상담할 때는 있었지만 촌지를 건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망하는 선생님은 없었으며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고 반장이 되었을 때 또 촌지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가만 있으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교사인 어느 분께서 강력히 권하더군요. 인문계 고등학교이고 더군다나 반장인데 얼른 갔다 오라고.

작은 케이크 하나 사서 10만원 상품권 한장을 넣어 건네드리고 왔습니다. 안하던 짓 하려니 진땀이 나더군요. 그날 오후 서류 봉투에 담아 상품권이 되돌아왔습니다. 마음은 이미 다 받았다며 돌려드리는 마음 이해해 달라고요. 케이크는 동료들끼리 잘 나눠 먹겠다면서….


내가 교사가 되고 나니...

그 후, 저는 기간제 교사로 중학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학년 말 방학을 앞두고 반장, 부반장 학부모님이 찾아와서 책거리 해 준다면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자그만 선물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10만원짜리 대형할인매장 상품권을 주시더군요. 저는 편지와 함께 아이 편에 돌려보냈습니다. 임원으로서 수고 많았다고, 2만원 문화상품권 하나씩을 넣어서요.

촌지를 돌려받은 데다가 담임한테 선물까지 받고 보니 더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다시 찾아왔더군요. 마칠 때 하는 거니까 정성으로 받아달라고. 그때 설득하기가 힘들어서 제가 겪은 이야기를 가감없이 해주었습니다. 위에서 쓴 대로 내 아이 고등학교 때의 일을요. 돌려 받았을 때 민망하긴 했지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다고. 저도 좋은 선생이 되고 싶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이해하고 돌아가더군요.

매년 스승의 날에는 그 학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식사하자고 불러줍니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물론 식사비를 학부모께만 부담시키지 않습니다. 제가 낼 때도 있고 그쪽에서 낼 때도 있습니다. 제자 고교 입학 선물이라고, 선물까지 보태 주다 보면 식사 한끼 대접 받은 것보다 몇 배 더 쓸 때도 있지만 저를 찾아주었다는 사실에 한없이 기뻤습니다.

언젠가 옆 선생님께서 자문을 구하더군요. 그분도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상품권 한 장을 받아 놓고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돌려 주었을 때 학부모가 민망해 하면 어쩌냐고. 제 경험을 들려 주면서 순간은 민망해도 고마워하고 믿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교사는 돌려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횡설수설한 것 같은데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서로의 자존심을 지켰으면 한다는 겁니다. 좋은 인간 관계로 오래 가자면 촌지라고 포장된 어떤 사례도 하지 말고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은 통하게 마련입니다. 올해도 저는 담임을 맡았고 소신껏 밀고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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