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어린 조각달한성수
우리는 팔짱을 끼고 얼어서 미끄러운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이전에 내가 들었던 이야기 한토막 할까?”
마누라는 귀를 쫑긋 세웁니다. 도로에는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고, 부지런한 사람들 몇이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옛날 공부를 하지 않아 글을 모르는 응석받이 부잣집 도련님이 장가를 들었대요. 신부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려는데, 신부가 보기에 영 아니거든. 그래서 도련님에게 부탁을 했어요.
서방님! 저는 무식한 사람과 평생을 보내기는 싫습니다. 그러니 절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십시오. 제가 문제를 낼 테니 그 답을 알았을 때 다시 저를 찾으십시오. 이리 눈이 많이 오는 것을 보니 월백 설백 천지백(月白 雪白 天地白)입니다. 이 댓귀를 알아 오시면 그 때는 제 서방님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서 첫날밤에 신부한테 소박을 맞고 쫓겨났단 말이야! 3년 동안 절에서 열심히 공부했지. 그런데도 그 답을 알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흰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저런 조각달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지. 그러면서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수심도 깊다(산심 야심 객수심: 山深 夜深 客愁深)고 읊었는데, 이게 바로 딱 맞는 댓귀란 말이야.
그래서 싱글벙글거리며 짐을 쌓지. 옆에서 같이 공부하던 약삭빠른 젊은이가 물었지. 그러자 그 세상 물정 모르는 서방님은 여차저차해서 이차저차하다. 그래서 내일은 드디어 마누라한테 가게 되었다고 얘기를 했지. 다음날 기분 좋게 처가를 찾았는데, 아! 글쎄~~”
눈치 빠른 분들은 다음 이야기를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 선비가 신부집에 도착해 보니 그 약삭빠른 젊은이가 먼저 도착해 그 댓귀로 서방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혼례를 치렀으니 가능한 얘기입니다. 마누라는 크게 웃어 줍니다. 아마 그 놈(어리숙한 선비)이 이놈(접니다)을 닮았다고 생각한 게죠.
“그 얘기는 아마 김삿갓이 지은 시에다가 이야기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덧붙였다고 했지, 아마.”
길가의 동백나무 울타리에도 소담스런 눈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