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진료원도 '퇴근'하고 싶다

보건진료소가 곧 거주지...근무 끝나도 사실상 '재택'

등록 2005.03.16 18:26수정 2005.03.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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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있는 진료소로 온 직후의 일이니 벌써 7년 전이다. 몸살기가 있어 약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그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갑자기 밖에서 마구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은 밤에도 닫기만 할 뿐 잠그지 않으니 그냥 밀고 들어와 바로 현관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급하게 나가 문을 열고 밖을 봤더니 보건소장과 행정계장이다. 진료소 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건진료원이 안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려고 그랬던 것이다.

7년이 지난 오늘 아침. 7시경부터 군 보건소 행정계 직원들 몇 명이 우리군 내의 보건진료소 17군데를 모두 확인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에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보건진료원이 진료소 내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아침 일찍 확인한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는가 싶어 가슴이 떨리고, 온 몸의 맥이 다 빠지고, 너무 많이 서글프다. 보건진료원은 부모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사람인줄 아는지 사생활 자체를 아예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다는 행복추구권이나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거주이전의 자유는 우리에게는 그저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다.

1980년 12월 31일 공포된 농어촌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20조를 보면 '보건진료원의 거주의무: 보건진료원은 제17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정 받은 근무지역 안에서 거주하여야 하며 시장. 군수 또는 구청장의 허가 없이 그 근무지역을 이탈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이 지금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자치단체장이나 군 보건소 혹은 운영협의회에서는 툭하면 이 조항으로 보건진료원들의 목을 조이려고 한다. 심한 곳은 주말에 가족을 만나러 집에 갈 때도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매 주말 관외지역 출타원을 제출하고 가야하는 곳도 있다.


지난 설을 며칠 앞두고 우리 군의 보건진료원들은 세 가지 비상연락을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주말에 집에 갈 때도 진료소 문 앞에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가 기재된 안내문을 써 붙이고 가라는 것이었다.

토요일 오후 6시가 넘어서 우리 군의 고위공직자 한 사람이 보건진료소 여섯 군데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한 진료소만 그 시간에 보건진료원이 있었고 다른 다섯 군데 진료소는 문이 잠겨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고위공직자는 지역 주민들에게 보건진료원이 어디 갔느냐고 물었고, 주말에는 진료원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 지역 주민은 오히려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보건진료원이 보건진료소 내에 거주하는지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진료소를 찾았을 때, 보건진료원이 저녁에 뭐라도 배우러 나가거나 아침 일찍 운동하러 밖으로 나가 진료소를 비웠더라도 그 것은 그저 핑계거리일 뿐이다. 설령 가족이 아프거나 내 몸이 아파 늦은 시간에 병원을 찾았더라도 그 것은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부분이지만 이런 것이 보건진료소에서 살아야 하는 보건진료원인 우리들의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하루 여덟 시간, 일주일에 닷새나 엿새를 일하면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퇴근시간이 지난 야간에도, 주말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보건진료원들이다.

군인이나 경찰, 소방대원도 아니면서 교대근무 없이 퇴근도 못하고 직장 내에서 살아야 하는 보건진료원은 보건진료소 건물 한 옆에 마련된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응급의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던 1980년대에 보건진료소는 각 마을의 응급의료센터 역할을 했다. 낮이고 밤이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면 언제라도 대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위해 일했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다친 사람 치료해주고, 아기들 받아주고, 아픈 사람들에게 약 주면서 지난 25년을 살았다.

그런데 밤 중에 급한 일이 있을 때 주민들은 보건진료소로 전화를 거는 게 아니라 119를 먼저 누르는 요즘도 여전히 이 법은 만능의 법이 되어 시도 때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고 있다.

보건진료원에게 보건진료소는 집이 아니라 직장일 뿐이다. 아무리 진료소 내에 살림살이가 있고 가족들이 있다고 해도 이곳은 늘 긴장해야 하는 직장일 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주민들은 진료소 내에 보건진료원이 있는 줄 알면 주말이고 산후휴가고 소용이 없다. 내가 필요하면 진료소 문을 두드리고, 문 두드리는 주민이 있는데 진료소 안에 있으면서 문 열어주지 않을 간 큰 보건진료원은 이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주민들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잠깐 약만 주면 되는’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보건진료원에게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근무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건진료원들에게는 최소한 주말에라도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건진료원은 보건진료소에 거주해야 하니까 당연히 주민등록도 보건진료소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결혼한 사람의 경우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녀야 하는 남편과 자식이 살아야 할 집을 남편이나 다른 가족의 이름으로 마련할 수 있지만, 미혼의 경우 본인이 주말이나마 쉴 수 있는 전셋집이라도 마련하려고 주민등록을 옮기면 보건진료원이 왜 주민등록이 진료소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느냐며 진료소로 다시 옮기라는 압력을 받는다.

아침 일찍 같은 공무원인 누군가가 보건진료원이 보건진료소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다녔다는 소식을 들은 오늘은 정말 일할 의욕은커녕 이제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난 25년 동안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원시적인 법률에 묶여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퇴근하지도 못하면서, 어쩌다 사정이 있어 주 중에 가족들이 있는 집에 한번 가려면 몇 번을 망설이다 죄의식까지 느끼면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너무도 당당하게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보건진료원이 진료소 내에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 이런 현실을 견디어야 하는 보건진료원인 내 처지가 오늘은 너무 많이 답답하다 못해 서럽기까지 하다.

이제는 우리 보건진료원도 근무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지역주민을 위해 일하지만, 퇴근시간 이후에는 개인적인 볼 일도 보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남들처럼 살고 싶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이고 너무나도 소박한 바람들을 언제쯤이나 이룰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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