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가에 교재 무단복제 없는 까닭

[해외보고] 헌책·발췌본 활용에서 교재 웹서비스까지

등록 2005.03.17 14:54수정 2005.03.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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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강의교재를 불법으로 복사하는 관습에 제동을 걸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무단 복제가 성한 이유는 물론 책값을 아끼려는 학생들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보다 훨씬 책값이 비싼 미국에서는 어떻게 할까?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 학생들은 불법, 무단 복제를 하지 않는다. 안 해도 되게 학교가 도와준다. 미국 학교들의 강의교재 사용 현황을 오래된 방법부터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혁신적 방법까지 간단히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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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서점에서 헌책 사기

새 책 10만원, 헌책(책에 세로로 붙은 흰 딱지가 중고품이라는 표시) 8만원
새 책 10만원, 헌책(책에 세로로 붙은 흰 딱지가 중고품이라는 표시) 8만원윤새라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역시 교재 구입이다. 그러나 벌써 여기서부터 미국 교육 시장의 합리적인 면이 돋보인다. 우선 학생들은 해당 학기가 시작하기 3-4개월 전에 수강 신청을 하고 과목 담당 선생들은 교재 목록을 수량(그 과목을 몇 명쯤 들을지)과 함께 학교 지정 서점에 알려준다. 그러면 서점은 그에 따라 새 책과 헌책을 함께 구비한다. 널리 쓰이는 교재라면 서점에 헌책 재고가 있을 것이고, 만일 새로 나온 책이라면 전량을 출판사에 주문한다.

물론 새 책과 중고책의 가격 차이는 꽤 난다. 한 예로 사진에 보이는 수학책의 경우, 새 책은 100달러(약 10만원)이고 헌책은 80달러(약 8만원)이다. 이런 실정이니 당연히 헌책이 먼저 팔린다. 미국 학교 서점은 학기 초에 책을 구입하려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학기가 끝날 때에는 책을 팔려는 학생들로 다시 붐빈다.

제본한 발췌본 사기

복사 가게에서 제본 되어 나온 교재 발췌본
복사 가게에서 제본 되어 나온 교재 발췌본윤새라
한 과목당 선생들이 지정하는 교재 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초급 외국어의 경우는 책, 숙제 책, 카세트, 비디오테이프, CD롬이 한 패키지로 된 교재 하나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과목은 적게는 서너 권에서 많게는 필수와 권장 교재를 합쳐 열 권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과목마다 몇 권씩 책을 사야 하니 당연히 미국 학생들도 교재비로 등골이 휜다.


책값을 줄이는 한 방편으로 선생들은 '발췌본'을 준비하기도 한다. 아주 좋은 책이라면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지만 부분만 읽는 책들의 경우 비싼 책 한 권을 다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들이 다수 교재 중 읽어야 할 부분만 뽑아 발췌본을 준비해 복사 가게에 넘기면 그 곳에서 제본을 해 학교 서점으로 보낸다.

제본된 발췌본도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미국의 저작권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해당 출판사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100쪽 남짓 하는 발췌본이 30달러(3만원)을 넘는 것은 예사다. 그래도 낱낱의 책으로 사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임은 분명하다.


도서관 '리저브' 시설 활용

'오픈 리저브' 시설
'오픈 리저브' 시설윤새라
선생들은 과목에 쓰일 책들을 서점에 주문함과 동시에 책을 못 사거나 안 사는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의 '리저브(reserve)' 시설을 이용한다.

필수나 권장 교재로 사용하는 책들은 물론 다 도서관에 있다. 이 책들을 선생들이 도서관에 '리저브' 신청을 하면 도서관은 책들을 찾아서 (이미 대출된 책은 당장 반납 받는다) 따로 비치해 놓는다.

이렇게 확보된 책들은 해당 학기간 도서관 밖으로 대출을 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도서관 리저브 공간에서만 읽을 수 있다. 게다가 한 학생이 한 번에 책을 오래 독점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3시간 안에 책사용을 마치라는 규칙이 있다.

그러므로 책값을 아끼려는 학생은 자기 책을 사는 것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리저브' 시설을 이용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클릭, 클릭, 집에서 교재 출력

가장 최근 등장해 미국 대학가의 교재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는 제도는 역시 인터넷 기술과 교육을 접목시킨 서비스이다.

미국 대학들은 학교마다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블랙보드'라는 웹을 사용한 수업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강의에 관련된 자료를 게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시험도 웹 상에서 칠 수 있고,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카페 같은 역할도 포함한다.

많은 장점 중 교재도 빼놓을 수 없다. 해당 과목에 지정된 교재가 스캔을 거쳐 PDF 파일로 올라 있다. 학생들은 그냥 집에서 교재를 출력해 읽으면 된다. 필자가 아는 한 수업은 이번 학기에 읽을 과제물을 이런 식으로 모두 웹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수업을 위해 책값으로 들인 돈은 전혀 없다.

한 수업의 교재 목록이 뜬 화면
한 수업의 교재 목록이 뜬 화면윤새라
물론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복사, 스캔을 해야 하고 아무나 이렇게 준비된 교재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목을 듣는 학생들만이 패스워드를 써서 접근할 수 있다.

학생들은 편한 대신 학교는 바쁘고 일도 많이 한다. 한 해가 다르게 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부단히 변해야 하고 학교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에 든 블랙보드 같은 서비스로 교재를 제공하기 위해서 학교에는 저작권법에 정통한 직원들이 있어야 한다. 또 학생들이 서점이며 도서관으로 책 찾아 발품 들이지 않는 이면에는 학교 직원들이 책을 찾아 스캔하고 웹에 올리고 하는 수고가 있다.

또 선생들은 어떠한가? 선생들은 자신이 가르칠 수업에 어떤 책의 어느 부분을 쓸 것인지 수업의 내용과 진도에 대한 정확한 계획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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