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영수님. 이 한 몸 계의 사명을 받들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박 창장. 아, 그리고 모 군수관!”
권기범이 모윤을 불렀다.
“예.”
“지금 총포 제조단가가 얼마로 나오는가?”
“예, 조총은 보통 한 자루에 쌀 3석(石) 5두(斗) 가량 하옵는데 저희 보총은 재질도 다르고 공정에도 손이 많이 가는지라 한 자루당 쌀 5석 7두 가량 됩니다. 그나마도 저희가 생산한 철광과 숯을 사용하니 그리 되는 것이지 재료를 매입하여 사용한다면 7석이 훌쩍 넘는 셈이지요.”
“7석이라… 주전으론 30냥, 시세를 높게 받는다는 정은(丁銀)으로도 거의 5냥이 넘는 값 이로구만. 솜씨 좋은 장인의 한달 노임이 주전 5냥을 넘지 않으니 녹녹한 금액은 아니로세….”
“만일 지금 상태에서 생산량을 조금 더 늘리라 하시면 저희 광산의 물량만으론 무리가 있사옵고 타처에서 매입해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면 단가의 상승이 불가피하고 운송에도 여간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총포제조용 야로와 풀무간이 완성되지 않아 시설이 부족한 것이 가장 급한 문제입니다만 완공된다 해도 현재로선 인력과 재료를 다 충당할 수 있을 게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보총 뿐 아니라 소포와 대포, 또 그에 따른 각종 포탄의 제조도 병행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게다가 저희 은광과 금광의 채굴량이야 더 이상 늘릴래야 늘릴 수도 없을뿐더러 철광 동광의 대다수 산물이 자체 소비되고 있는 실정이니 지금 양성된 장졸들의 임금과 그 식솔의 생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한 지경입니다.
개성의 송상과 마포의 송인석 여각이 아니었다면 군수품과 군량을 때에 맞게 조달하는 것조차도 쉬운 노릇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미 큰 어르신의 재물도 광산에 박은 돈이 제법 되고 여기 광산촌과 운산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느라 소진한 양이 꽤 되는지라….”
역관으로서 대일, 대청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권기범의 아버지 권병무도 계의 기초를 닦고 인재를 조정에 편입시키느라 소모한 돈이 만만치 않았다. 근래에는 광산 밑에 마을 세우고 운산 일대의 전답을 사들인 규모가 그 끝 간 데를 알 수 없을 지경이어서 당장의 여유 자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권기범도 잘 아는 터였다.
“흐흠….”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평양과 평안도 일대의 사주전 유통망이 마비된 상황이고, 대원군의 당백전 폐지 분부로 더 이상의 사주전 주조가 어려웁다는 것이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이 밖에선 화약이 1근에 쌀 10두, 연환(鉛丸)은 100개에 쌀 5두 가량으로 유통되고 있사온데 저희의 보총용 총환은 화약과, 탄피, 연환 탄자, 뇌홍뇌관을 일체형으로 하고도 100발에 쌀 15두를 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력만 보충되면 총환의 증산은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만… 저희의 공정 자체가 분업화를 지향하므로 공인(工人)들의 양성이 쉽고 제조비용이 헐하다는 것이 크나큰 장점입지요.”
모윤이 너무 앓는 소리만 읊었다 싶었는지 나름대로 전망이 밝은 소식을 꺼내 놨다.
“결국 돈이 문제란 말이군.”
“아무래도 올해 상납은 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려운 재정임에도 기어이 10만 냥을 대원군에게 갖다 바친 점에 대해 모윤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대원군에게 들이민 돈이 적지 않은 것임을 알고는 있네만 그 돈이 그만치의 값을 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네. 또 세가 커져 노출의 여지가 많아진 지금이야말로 그 돈의 역할이 절실할 때지. 운산과 태천의 수령으로는 꼭 우리 쪽 사람이 부임할 수 있는 것도 그 돈의 힘이고 호조에서도 눈독만 들인 채 이곳을 어쩌지 못하는 것도 다 그 돈의 힘이 아니겠나. 너무 염려치 말게.”
“예.”
“정 여력이 미치지 않는다면 보총의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오혈포와 산총의 생산에 힘을 기울여 주게. 특히 저 오혈포에 마음이 많이 가는구먼. 개화군 군관이나 호위들도 유용하겠지만 흑호대나 백호대에게도 아주 쓸모 있는 물건이 되겠어.”
“예, 알겠습니다.”
권기범의 명에 모윤이 짧고 분명하게 복명했다. 한정된 재화로 이 큰 살림을 떠맡느라 이만저만 복잡한 머리가 아닐 텐데도 전혀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
“재정이야 모 군수관이 알아서 운용한다 해도, 군기창 야공(冶工)들이 여력이 되겠는가?”
이번엔 권기범이 군기창 창장인 박 서방에게 물었다.
“여의치 않겠으나 밤을 낮같이 여겨서라도 매달리겠습니다. 다행히도 새로이 받은 지원공들도 있고 제법 태가 잡혀가는 2차 제조공들도 있으니 그나마 큰 도움이 될 겝니다.”
“그래 박 창장만 믿소. 부탁하리다.”
권기범이 말을 마치자 박 서방이 조용히 물러났다.
“모 군수관. 개성에 사람을 띄워 출행할 물량을 두 배로 늘리라 이르게.”
“이 달 그믐께 출행할 물목 말이옵니까?”
“그렇네. 그 정도면 한동안 숨통이 트일게야.”
“하오나. 이제 홍삼(紅蔘) 밀매가 의주를 통한 육로 뿐 아니라 황해도 인근의 서해에서도 빈번하다는 것은 조정에서도 빤히 아는 사실입니다. 저희 쪽 사람은 아니나 얼마 전 해주와 제물포에서 임시형, 임봉익 형제의 홍삼밀무역 도당이 전부 붙들린 이래 개성에서도 밀조한 홍삼을 숨겨두고 있던 김도강, 박문호 등이 모두 포착되었습니다. 어느 때 보다 홍삼 밀조와 밀수출을 막기 위한 기찰이 엄정한 때 이온데 물량을 두 배로 늘리라 하시는 것은… 더구나 작년 1월에 홍화서, 정석린 패들이 이양선과 몰래 홍삼을 밀거래하다가 포착되는 사건 이후로는 이류(異類), 이선(異船)과의 거래에 대해선 더욱 엄중한 경계가 있는 터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평소의 두 배나 되는 물량을 지고 바다로 나아갔다가 발각되거나 청선에 당하기라도 한다면 계의 재정적 기반에 더 없는 타격을 얻을까 심히 저어스럽습니다.”
모윤이 권기범의 말에 당혹스러워 하며 만류의 의견을 내놓았다.
“염려 말게. 이번 출행엔 우리가 직접 나설 것이야. 송상은 물건만 관리하고 선원과 선박 모두 개화군이 나설 것이네.”
“허면… 해도(海島)의 전선(戰船)을 쓰시겠단 말씀입니까?”
병무영장 김민균이 모윤과 권기범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렇게 띄엄띄엄 올리는 것에 대해 송구스러운 맘 감출 길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생활과 병행해야 하는 처지인지라......더욱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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