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해야 딸한테 잃은 인기 되찾을까?

등록 2005.03.29 18:04수정 2005.03.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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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은정이 시집보낼 때 서운했어요?"


며칠 전 장인어른께 물어 본 말이다. 장인어른 말씀은 이렇다.

"지금은 잘 사는 모습 보니까 그런 생각이 잘 안 드는데…(잠시 생각하시더니) 결혼 할 당시에야 남 준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허전하더라. 자네도 아마 세린이 시집보낼 때 느낄 걸세."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아내가 빙그레 웃는다. 장인어른은 무슨 일인 있느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신다.

사실 요즘 마음이 뭐랄까, 허전하다고나 할까. 아니 쓸쓸하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혼자인 듯한 느낌, 뭐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잘은 모르지만 딸 시집보낸 것 같은 그런 심정이다.

이런 마음에는 믿었던(?) 우리 딸이 그 좋아하던 아빠를 배신하고 엄마한테만 예쁜 짓을 하기 때문이다.


딸 사랑은 아빠고, 아들 사랑은 엄마라고 어른들이 그러시던데. 첫째 딸 세린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고, 돌이 되고, 두 살 세살 네 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맘마 주고, 목욕시키고, 기저귀 갈아주고, 그림책 읽어주고, 잠 재워주며 난 아내가 인정할 정도로 딸아이와 유별한 사랑을 나누며 다섯 해를 보냈다.

세살 때부터인가 엄마하고는 떨어져 어디에 가도, 아빠하고는 떨어지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부녀지간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질투 아닌 질투를 했고(그런데 진짜로 질투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애들한테 무슨 질투냐"며 오히려 아내를 핀잔하며 살아온 세월이 다섯해.


a 장세린과 장태민. 세린이가 왜 갑자기 아빠하고 안 놀아 주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장세린과 장태민. 세린이가 왜 갑자기 아빠하고 안 놀아 주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 장희용

이런 아빠의 사랑을 아는 듯 딸아이는 무조건 아빠였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잘 때면 내 팔을 베고 자고, 일어나면 볼에 뽀뽀해주고, 먹을 것 있으면 엄마는 안줘도 아빠는 챙겨주는 그런 딸이었다.

그런데 요즘 딸이 변했다. 툭하면 "엄마, 엄마"하면서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빠는 본체만체 한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도 엄마 앞에서는 조잘조잘 하면서도 아빠가 다가가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배시시 웃기만 한다. 한동안은 그 모습도 예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계속해서 그러니까 요즘은 서운함이 가득이다.

잃어버린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시도했건만 그 때마다 딸은 아빠를 외면한다. 심지어 지금은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라는 말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엄마하고만 논다. 덕분에 나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 녀석하고 옹알이 놀이만 하고 있다. 나는 딸하고 노는 게 재미있는데.

어제는 "세린아, 이리와 봐" 했더니 "왜" 라고 한마디 하더니 제 할 일만 한다. "어휴, 이젠 불러도 오지도 않네"하고 탄식조로 말했더니 아내가 딸한테 귀엣말로 뭐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살며시 다가온다.

"세린아, 요즘 왜 아빠하고 안 놀아. 아빠가 뭐 잘못했어?"
"아니."
"아빠 세린이한테 서운하다. 치카치카도 엄마한테만 해 달라고 하고, 아빠가 그림책 읽어준다고 해도 엄마한테 읽어달라고 하고, 옛날에는 아빠하고 물놀이 하는 것도 좋아하더니만 이젠 물놀이도 안 하고. 아빠 삐졌어!"

아빠의 서운함을 알아들을까 생각하면서도 조금 오랜 시간 딸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내심 딸아이의 심경변화를 바랐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간다.

알 듯 모를 듯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냥 들어가 잤다. 아이들 재워 놓고 아내가 슬그머니 오더니 웃으면서 삐졌느냐고 묻는다. 사실은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애냐? 그런 거 가지고 삐지게."

하지만 생각해보니 많이 서운했다. 아무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기 싫어서 잔다고 말하고 뒤돌아 누워버렸다.

"유치원 가면서부터 그러대. (회사 가느라) 자기하고는 떨어져 봤지만 나하고는 지금까지 떨어져 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나한테 응석부리느라고 그런 거 같아."

아내가 생각하기에도 요즘 딸의 행동이 좀 그랬는지 나를 위로한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지만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는다.

조금 있으면 퇴근이다. 어떻게 하면 딸한테 잃어버린 인기를 되찾을까? '좋아하는 과자하고 아이스크림 사갈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옳은 방법이 아닐 것 같아 머릿속에서 지운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놀아줘’ 대왕인 딸한테 인기를 되찾는 방법은 역시 놀아주는 것이 최고일 듯싶다. 그런데 지금까지 안 놀아 준 것도 아닌데 이 방법도 안 통하면 어떡하지? 인기를 만회 할 놀이를 생각해 보지만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다섯 살 딸에게 느끼는 이 짙은 서운함 그리고 후회. 아! 유치원 보내지 않는 건데.

그런데 왜 그런 것일까요? 저는 변함없이 잘해주고 있는데. 엄마 말대로 엄마랑 떨어져서 그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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