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이 뭐예요?"

방글라데시 자원봉사 활동기-20 특별한 경험들

등록 2005.04.02 12:28수정 2005.04.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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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바람만 막으면 가게가 된다. 가게의 내부 모습 ⓒ 최종술

"꼼꼬레덴(깍아 주세요)."

큰 상자를 옆으로 세워 놓은 듯한 가게 앞에서 이민철 팀원과 기자가 애원해서 5다카(약100원)를 깍았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전화를 하고 요금을 흥정했던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물가가 고무줄이다. 내국인에게 제시하는 물건 값과 한국인에게 제시하는 물건 값이 판이하게 다르다. 심지어 전화 요금도 흥정이 될 정도이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면 통화 시간과 별 관계가 없다. 신호음이 울리면 시간이 카운트된다. 그리고 1분 단위로 값이 올라가는데 1분에 20다카를 지불해야 하고 1분 10초도 2분으로 간주하여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전화는 휴대폰을 대여한다. 전화비가 모자라 깎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탓도 있지만 옆 가게에서 눈독을 들여 놓은 '빤'이라는 식품을 먹어 보고 싶었다.

빤이란 것은 방글라데시인들의 기호식품이다. 이파리 위에 열매 말린 것 같은 것과 작은 알갱이들과 소다를 얹고 싸서 입에 넣고 오래도록 씹어 그 즙을 빨아먹는데 입과 이를 빨갛게 물들인다.

약간 중독성이 있고 배가 부를 때 빤을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고 한다. 다카 시내에 있는 큰 식당에서 나오는 것과 이런 시골 구멍가게의 것은 제품이 질이 다르다고 한다.

가게 아저씨가 내미는 것을 받아 입에 넣고 꾹꾹 씹었다. 목이 텁텁하고 맛이 이상했다. 자꾸 씹으니 입 전체가 붉게 물들고 어질어질하다. 입 안에 마비가 왔다. 마약 성분이 있는가 보다. 1잎에 1다카(약20원).

침을 뱉으니 입에서 빨간 침이 나왔다. 빤을 거의 평생 먹어 오거나 빤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 사이에 검은 자국과 잔 찌꺼기가 있어 보기가 흉하다. 아마 빨간 물이 베어서 그런 가 보다.

이민철 팀원과 기자는 학교로 돌아가는 내내 어지러워 걸음걸이도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려야 했다. 참 난처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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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수단인 벤 아저씨와 함께 포즈를 취한 팀원 ⓒ 최종술

벤 위에서 맞이한 별들의 향연과 바퀴에 낀 오르나 사건

벤 위에서 맞는 방글라데시의 밤도 마지막이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아름답고, 수풀 속의 반딧불 축제는 영롱하다. 우린 벤을 타고 마지막 샬리아자니의 밤거리를 즐겼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얼굴들도 어색하지 않고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트럭과 버스도 친근하다.

마지막 밤의 감상도 잠시 갑작스런 사고로 모두 멈췄다. 벤의 바퀴에 이옥순 팀원의 오르나(어깨에 걸치는 긴 천)가 감기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벤은 멈추었고 이옥순 팀원은 옷이 바퀴에 말려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 같이 타고 가던 이민철 팀원이 감긴 오르나를 급히 풀어주었다. 그러자 벤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그러지 말라는 뜻이다. 영문을 몰라 하는데 같이 가던 선생님이 설명을 해 주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오르나를 아무나 건드리면 안됩니다. 그래서 남자가 오르나를 만질 경우는 결혼한 남편만 가능하답니다."

오르나를 처녀들의 처녀성쯤으로 여기나 보다. 그러니 벤 아저씨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은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또 한번 문화의 벽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숙소로 가는 동안 그 일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저녁엔 선생님이 숙소까지 따라오셔서 사이다를 싸주셨다. '7up'과 '리쯔'라는 살얼음이 언 2ℓ짜리 사이다였다.

우리는 사이다 1병에 그렇게 감동할 줄 몰랐다. 우린 모두 감격에 가까운 감동으로 선생님께 감사했고 소중히 그 맛을 음미하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병을 후딱 해치워버렸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가난해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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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에서 현지 선생님들과 함께 한 컷. 모든 것이 소중한 기억이다. ⓒ 최종술

갑자기 멈춰버린 선풍기

숙소에 도착해서 씻으려고 샤워실에 들어가려는데 옆방에서 팬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 더운 날씨에 유일하게 더위를 식혀줄 장치인데 안 돌아가면 큰 문제다. 관리인 아저씨도 외부에 볼 일 있다고 나가고 없다. 난감한 일이었다.

급한 김에 사장집에 달려가 아저씨를 부르니 방에서 방글라데시 전통 복장인 샬로와르 까미즈를 한 여자 2명이 나왔다. 사장 딸인지 모르겠지만 복장으로 봐서는 둘이 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숙소로 뛰어 올라왔다.

전기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만져 보았다. 조금 전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조치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와서 도와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한 아가씨는 아저씨를 찾으러 갔고 다른 아가씨가 이것저것 하다가 나무막대로 팬을 돌리니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라 설명할 수없는 해법이었다.

옛날 TV가 나오지 않으면 TV 옆구리를 툭툭 치면 우연히 TV가 잘 잡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정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거나 해보다 보면 답을 찾는 방식. 가장 원시적 방법이 가장 잘 먹혀드는 것이었다.

전압이 불규칙적이어서 전력이 약해진 탓에 선풍기 혼자 힘으로 팬을 돌릴 힘이 없었던 것이다. '슁슁'하고 선풍기가 돌아간다. 그 새 땀방울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이곳 전기시설이 또 한번 사람을 골탕 먹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2004년 8월 6일부터 21일까지 방글라데시 가타일 지역에서 위덕대학교 방글라데시 봉사활동팀으로 활동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2004년 8월 6일부터 21일까지 방글라데시 가타일 지역에서 위덕대학교 방글라데시 봉사활동팀으로 활동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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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 영롱함을 사랑합니다. 잡초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아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지 아십니까? 이 잡초는 하루 종일 고단함을 까만 맘에 뉘여 버리고 찬연히 빛나는 나만의 영광인 작은 물방울의 빛의 향연의축복을 받고 다시 귀한 하루에 감사하며, 눈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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