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도구가 화재 현장에서 나뒹굴고 있다.김범태
변변한 가재도구 하나 가지고 나오지 못한 이들 부부는 어렵사리 구한 휴대용 가스버너에 라면을 끓여먹으며 근근이 끼니를 때우고 있다. 베란다에 임시로 비닐을 치고 만든 잠자리는 새벽녘이면 찬바람이 몸속까지 파고 든다.
전날 동해에 사는 막내아들이 달려와 잿더미로 변한 노부모의 집을 정리했지만 이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실정"이라며 답답해 했다. 양씨는 "그나마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이웃들이 급하게 사다 줘 입고 있다"면서 "지금 당장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특히 김씨는 화재 당시 들이마신 연기 때문에 얼굴이 붓고 목에 가스가 차 호흡곤란을 느끼는 등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일단 안정을 취해야 할 상황이다.
서울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이 손을 내밀며 위로의 인사를 건네자 양씨는 "그래도 이렇게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극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재기의 의지를 다잡는 촌로의 등 뒤로 잔인하도록 눈부신 봄 햇살이 부서지듯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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