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피었니?”

겨우 핀 꽃, 겨우 핀 아이들

등록 2005.04.14 22:05수정 2005.04.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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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틈새에 핀 꽃

틈새에 핀 꽃 ⓒ 안준철

봄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입춘과 춘분이 지나고도 한참을 더 봄 속에 겨울이 섞여 있다가 어느 날 문득 풀 먹여 다려놓은 옥양목처럼 구김살 하나 없이 활짝 펴진 날이 오기 마련이다.

봄의 세례라고나 할까. 그런 날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뻐근하여 아무런 갈망도 욕심도 품지 않게 된다. 햇살 한줌에도 그만 행복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에 이끌려 몸을 굽히거나 허리를 숙이면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햇살의 부스러기를 먹고사는 작은 생명들. 아, 저 작은 것들은 어쩌자고 피었을까?

누가 나를 끌었을까
길가다 말고 허리 굽혀
한참을 바라보니
꽃의 형상이 보였다.

저 작은 것들은
어쩌자고 피었을까
꽃이 피었다기보다는
생명이 피었다고 해야 옳겠다.

해묵은 낙엽더미에서
겨우 핀 꽃들에게
차마 사진기를 들이대지 못하고
눈으로만 찍고 또 찍다가

넌 왜 피었니?
그쪽은 왜 피었는데요?
한 마디씩 주고 받다보니
기막힌 마음이 더 했다.

난 왜 피었을까?
묻고 또 묻다가
쪼그린 자세를 풀고 일어설 때는
묵은 피가 도는지 가슴께가 아팠다.

오랜만에
겨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시 '겨우 핀 꽃' 모두


장미나 백합처럼 용모가 빼어나고 향기까지 진한 꽃을 보면 꽃 중에서도 축복받은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꽃을 보면 아름답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 뿐, 생명이라는 단어가 쉬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생명에 덧입혀진 것들이 화려하고 찬란하기 때문이리라.


a 벼랑에 핀 꽃

벼랑에 핀 꽃 ⓒ 안준철

반면에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꽃인지 분간할 수 있을 만큼 작고 소박한 꽃들을 보면 곱다거나 예쁘다는 생각에 앞서 오묘한 한 생명을 대하고 있는 듯한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그 작은 것들이 겨우내 얼어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한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학교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잘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남다른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들은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고 한 묶음으로 바라보면 놓치기가 쉽다. 난들 별 수 있으랴?

어느 해인가는 교무실로 나를 찾아온 우리 반 아이에게 "네 담임에게 가지 왜 나에게 왔느냐"고 말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아마도 그런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으려는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때문이었으리라. 아침 조례나 수업 시간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진 것이 적든 많든 공평하게 하나씩 지니고 있는 자신의 이름과 생명을 매시간 호명하고 일깨워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눈뜸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 눈뜸이 더딘 아이들일수록 더 오래 더 깊이 그의 생명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경쟁과 속도로 판가름이 나는 세상의 가파름 속에서 더딘 아이들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다.

a 길가에 핀 꽃

길가에 핀 꽃 ⓒ 안준철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만약 실업계가 아닌 인문계 학교에서 근무했다면 아이들을 생명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생명에 덧입혀진 것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오히려 그 생명 자체를 깊이 바라보게 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속도와 경쟁, 그리고 점수의 왕국에서 남을 앞서가기는 어려운 아이들이다. 해서, 차라리 인간의 길을 열어주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게 한다. 더디더라도 그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때 나는 아이들을 차별한 적이 있었다. 생명에 덧입혀진 조건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의 얘기다. 나의 눈길이 한두 아이에게 머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물론 지금은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수업시간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추면서 그들을 수놓는 조건의 화려함보다도 생명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내 자신을 위해서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경험인지 모른다.

우리 반에 경은이라는 아이가 있다. 출석을 부르면 겨우 입을 달싹이는 아이. 행동도 작고 말수도 적은 그 아이를 보면 낙엽더미에서 겨우 핀 들꽃 생각이 난다. 그 아이도 겨우 핀 꽃이기에. 며칠 전인가는 그 아이에게 편지가 왔다. 깜짝 놀라서 열어보니 말 수 없는 아이치고는 꽤 긴 편지를 보냈다. 내용도 아주 당찼다. 나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에게는 꿈이 없었습니다. 있다 해도 자주 바뀌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보다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큰 변화를 가지게 된 것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어 노력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는데 이제는 저에게도 작지만 큰 목표가 생겨서 다른 사람들처럼 아주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a 바위 너설에 핀 꽃

바위 너설에 핀 꽃 ⓒ 안준철

‘꿈을 갖게 된 것을 축하한다. 그것도 막연하고 말도 안 되는 꿈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추구해볼만한 그런 꿈이어서 더욱. 네가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는 동안 항상 네 곁에는 선생님이 있을 거야.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구나. 우선 작은 글부터 써보도록 해라. 글이란 구체적인 진실을 표현해내는 것이니까 연습을 많이 할수록 좋은 글을 쓰게 되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해 보거라.(…)’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상상의 꽃밭 속이었을까? 나는 꿈속에서, 혹은 상상 속에서 경은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넌 왜 피었니?"
"선생님은 왜 피셨는데요?"
"난 너희들 사랑하려고 피었지?"

"전 아직은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누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요. 그때까지는 제 자신을 먼저 사랑하려고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지 <사과나무>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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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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