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구, 그냥 눈 딱 감고 방송할 걸"

방송 출연 제의 거절한 아내의 때늦은 후회

등록 2005.04.18 14:55수정 2005.04.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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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오마이뉴스> 쪽지함으로 편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쪽지함으로 들어오는 편지가 많지 않아 매일 확인하지 않았는데 이 편지도 사흘이나 지나 읽었다.


a 둘째 태민이 돌(3월 19일) 때 찍은 우리집 유일의 가족 사진입니다.

둘째 태민이 돌(3월 19일) 때 찍은 우리집 유일의 가족 사진입니다. ⓒ 장희용

모 방송국 작가인데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아내의 쌩뚱맞은 초코쭈쭈 작전', '어떻게 해야 딸한테 잃은 인기 되찾을까?' '개다리 춤추고 딸한테 과자 얻어먹다' 등을 읽었다면서 방송 촬영을 제의하는 내용이었다.

방송 내용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족간의 잔잔한 사랑과 행복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가끔 <오마이뉴스>를 읽다보면 기사를 책으로 출간한다든가, 방송촬영을 했다든가 하는 내용의 기사를 읽으면서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직접 이런 제의를 받고 보니 방송에 나온다는 사실에 흥분되기도 하고, 촬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쑥스러움 등이 교차했다.

저녁에 아내한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우리 할까?"했더니 "방송은 아무나 하냐"며 역시 방송 촬영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표시했다. 언제 우리가 방송에 나오겠냐며 아내에게 설득 아닌 설득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아내는 촬영에 거부감을 보였다.

방송에 나온다는 흥분에 아내한테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내성적인 나로서도 방송 촬영에 대한 자신이 없어 방송국에 정중히 거절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 아내와 나는 그 이야기를 화제로 삼으며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았을 거야, 그치?' '우리 딸 연예계 데뷔했을지도 모르는데…'하면서 마치 방송 출연을 한 듯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며칠 후 아내가 "에구, 우리 그냥 눈 딱 감고 방송촬영할 걸"하면서 때늦은 후회를 한다.


알고 보니 아내는 그 프로가 무엇인지 방송국 인터넷에 들어가 확인을 한 모양이다. 사실 처음에 나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난 방송 보기가 유료라 하지 않았는데, 아내는 못내 궁금해 방송을 본 것.

아내의 말에 따르면 방송 출연에 대한 보상(?)이 만만치 않았다. 상품을 거론하기는 그렇지만 HD TV를 포함, 살림살이가 꽤 많았다.

순간 눈 딱 감고 촬영할 것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비록 상품 때문에 후회 아닌 후회가 잠깐 들긴 했지만 아내와 나는 이번 일을 통해 행복을 확인하고 또한 그 행복이 그 어떤 상품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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