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만든 김치국밥 앞에 목이 메다

등록 2005.04.19 00:26수정 2005.04.1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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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훼방꾼인 바람도 잠깐 휴식을 취하는지 그 행보를 멈춘 듯 아주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다른 날엔 억지로 궁둥이를 두들겨 깨워야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딸아이가 새벽 같이 일어나서 제 아빠를 조르고 있었다.


“아빠 우리 차 타고 놀러가자. 친구들은 오늘 엄마랑 아빠랑 놀이동산 간다고 했단 말이야.”
“놀이동산… 알았어. 그런데 엄마가 아직 안 일어났잖아. 그럼 얼른 들어가서 엄마 깨워.”

남편과 아이의 대화를 생생하게 듣고 있으면서도 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몸이 화끈거리는 것도 같고 추운 것도 같고 아무래도 감기몸살인 것 같았다. 전날 밤. 잠들 때 만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내 몸에 밤 사이 감기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았다.

배수원
환절기. 내 몸은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신고식을 치르곤 하였다. 올해는 아직 아무 기미가 없기에 다행히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그도 아닌가 싶었다.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서 요란스럽게 엄마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어서 일어나. 아빠 하고 놀이동산 가자. 어서 일어나.”

아이를 뒤따라 들어온 남편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얼굴에 근심이 묻어났다. 알람도 필요 없을 만큼 정확한 시간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가, 아이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도 기척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특히 해마다 봄의 초입 무렵 심한 감기몸살을 앓는 걸 매년 보아온 터라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왜? 몸이 안 좋아? 그럼 좀 더 누워 있어.”

남편은 이불을 다독여 덮어주곤 아이를 어르고 달래 함께 밖으로 나갔다. 얼마를 잤을까. 소란스러운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뭔가 그릇 부딪히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주방 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보려던 나는 그만 제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천장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고, 온몸은 아예 땀으로 목욕을 한 것 마냥, 흥건했다. 비틀어 짜면 금방이라도 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옷 때문인지, 한겨울 칼바람 속에 내몰린 것 마냥 참을 수 없는 엄청난 한기에 이가 서로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마저 병들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어리석은 노파심을 일깨우기라도 하려는 듯 남편과 아이를 있는 힘껏 소리쳐 불러 보았다.

“복희야! 복희 아빠! 복희야! 복희아빠!”

남편은 설거지라도 하다 왔는지, 손에서 연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냉큼 내 앞에 앉았다.

“좀 어때?”
“글쎄 자꾸 추워.”
“감기몸살인가 보다. 감기몸살엔 약이 없대. 그냥 푹 쉬는 방법 밖엔. 잠깐 있어봐. 지금 김치국밥 끓여. 해마다 이렇게 감기몸살이 나면 내가 해주는 얼큰한 김치국밥 먹고 요술처럼 낫곤 했잖아. 조금만 기다려. 이제 금방 들여 올 테니까.”

부리나케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가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걸 두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는 건가. 안 그래도 그게 먹고 싶더니만….”

이상하게도 나는 감기몸살이 나면 불쑥 그 김치국밥이 생각난다. 그걸 먹고 한 숨 푹 자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항상 몸이 개운하곤 하였다. 그래서 남편은 자기가 끓여주는 그 김치국밥이 내 감기몸살엔 더할 나위 없는 특효약이라고 했다.

잠시후, 남편은 냄새만으로도 구미를 확 끌어당기는 김치국밥 한 그릇을 철철 넘치게 가져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수저를 들다 말고 나는 한참을 김치국밥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그냥 김치국밥이 아니라 사랑을 녹여 만든 영양죽 그 자체였다.

잘게 썬 김치, 버섯, 계란, 콩나물, 거기다 고명으로 얹은 김 가루까지. 나는 순간, 목젖이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가슴으로 울컥하며 뭔가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내가 냉큼 입으로 떠 넣기를 한껏 기대하고 있었던지 미적거리는 나를 향해,

“왜? 못 먹겠어. 그래도 한술 떠봐. 먹고 땀내고 푹 자면 아마도 거뜬 할 거야.”

나는 순간적으로 나의 온몸을 일시에 엄습한 그 뜨거운 감동을 목구멍으로 꿀꺽 소리가 나게 삼키곤, 남편이 정성을 다해 끓였을 김치국밥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밀어 넣었다. 싸르르 하는 뜨거움과 맵싸한 얼큰함이 내 위를 타고 흘러 내렸다. 그리고 또 한 숟갈, 또 한 숟갈…. 마침내 나는 그 김치국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정말 맛있었다. 아니 이 세상 그 어떤 음식이 그렇게 입에 착착 붙을 수가 있을까. 너무도 맛있는 김치국밥의 그 맛에 놀라 한나절 나를 공격했던 감기몸살 바이러스가 저만치 달아난 것인지, 어느새 몸이 가뿐해 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포만감에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새벽녘. 눈을 떴다. 이마엔 수건이 얹어져 있었고, 남편은 나의 손을 잡은 채 곁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까칠해진 남편의 얼굴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요즘 부쩍 힘들어하는 남편. 경기부진으로 갈수록 일이 줄어들다보니 남편의 어깨는 처질 대로 처져 아예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남편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아니, 남편의 그 힘겨움을 함께 맞들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쑥스러운 생각에 곰살맞은 격려와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남편이 끓여준 김치국밥, 아니 '사랑덩어리'인 그 특효약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무심함을 진즉에 반성했다. '부부는 마주보고 걷는 이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서서 걸어가는 것이다'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래. 이젠 내가 남편의 곁에서 남편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그의 손을 힘주어 꽉 잡아야겠다.

남편의 어깨에 얹어진 무거운 짐들을 나의 어깨에 함께 나누어 지고, 남편의 우울한 얼굴에 환한 박꽃 같은 웃음을 내가 만들어주며, 우리 앞에 펼쳐진 긴 인생을 함께 걸어 나가야겠다는 진심 어린 반성에 눈에선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부부일심동체라는 그 말이 정말 실감나는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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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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