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애환이 담긴 구기동 집박도
내일 이사를 앞두고 나는 오늘 대문도 없는 기둥에서 문패를 뗐다. 아마도 내 집을 아는 사람에게는 화젯거리가 될 것이다. "박도, 마침내 이사하다"라고.
구기동 북한산 기슭의 내 집에 1972년 11월 6일에 입주하여 2005년 4월 20일에 이사 가게 되니 이 집에서 꼭 32년 5개월 남짓을 산 셈이다.
집을 수시로 옮겨다니며 재산을 눈덩이처럼 굴리는 세태에 한 집에서 30년 이상 살았다면 적게 산 것은 아닐 게다. 이 집도 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지난해 퇴직을 하고 강원도 안흥 산골로 거처를 옮기고 아이들만 남겨두니까 여러 가지로 염려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매물로 내어 놓았다.
악조건은 골고루 갖춘 집
내 집은 악조건은 골고루 다 갖췄다. 우선 지대가 무지 높다. 내 집을 다녀간 사람은 서울에서 두 번째 높은 집이라고도 하고, 서울에도 이런 집이 있느냐고 했다. 다음으로 차가 닿지 않는 계단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대지 39평에 축대가 높아서 건평이 14.7평밖에 되지 않는 좁은 집이다.
명색이 8대 종가집이라 제사 때 조상 신위에 절을 드리면 조카들의 머리가 내 엉덩이에 부딪칠 정도였다.
하지만 살아보니까 호조건도 많았다. 우선 공기가 맑고 산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몇 발자국만 떼면 진달래 꽃잎을 딸 수도 있다. 아주 조용하며 여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살았다.
지금은 수돗물을 먹지만, 초기에는 시원한 석간수를 식수뿐만 아니라 목욕물로 썼다. 그 무렵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놈이 다른 친구들이 집 자랑할 때 우리 집은 생수로 목욕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아내나 아이들로부터 지대가 낮은 곳으로 이사 가자고 숱하게 들볶였으나 그때마다 이 집 팔아서는 전세밖에 얻지 못할 것 같아 미적거리면서 앞으로는 공기가 맑은 동네가 빛 볼 날이 올 거라고 달랬는데, 그만 안흥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더 기다리지 못하고 중형 아파트 전세 값도 못 받고 팔고 떠나게 되었다.
그 흔한 주택부금통장도 만들어 보지 못하고, 아파트 청약 0순위 1순위가 뭔지도 모르게, 그런 얘기는 달나라 얘기로만 알고서 살아온 셈이다.
내 작품의 산실이었던 집
가끔 아내가 결혼 초에 잠실이나 강남으로 갔더라면 살림이 이렇지는 않았을 거라고 푸념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앞뒤가 콱 막힌 사람이니까 팔리지도 않는 책을 열 권이나 내지 않았겠느냐고, 그래도 몇몇 출판사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혼자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