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고사리 고수들 중에 한 분인 옆집 할머니오창경
올해 76세이신 뒷골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걸으면서도 고사리를 찾아서 산비탈을 힘겹게 헤집고 다니신 것이었습니다.
뒷골 할머니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고사리 무림의 강자 중 한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관절염 때문에 무릎이 아파 고사리계 은퇴를 선언하셨지요. 그러면서 우리 옆집 김경희 할머니에게 굵은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전수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김경희 할머니를 사부로 모시고 뒤따라 다니면서 굵은 먹고사리를 많이 꺾어 친척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산에 다니시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실려구요."
"그러게, 우리 아들이 고사리 꺾다가 다치면 큰일 난다고 성화를 하는데도 몰래 나와 봤슈."
"고사리는 많이 꺾으셨어요?"
"이제 눈도 잘 안 뵈고 지팽이까장 짚고 다니는데 꺾으면 얼마나 꺾겠슈. 그냥 운동 삼아 나와 봤지. 젊었을 때는 이 산에서 고사리 꺾어다가 장에 팔아서 애들 학비도 주고 했는디…."
"이 산에 고사리가 그렇게 많아요?"
"아까 보니께 저쪽 응달에서 돌아댕기대유. 거기는 가는 고사리만 있는덴디. 조기 모퉁이를 돌아서 묵은 밭 있는 디부터 가봐야지. 거길 가야지 굵은 먹고사리들을 꺾지. 아까 식전에 숙자 엄니가 한보따리를 해가는 것이 오늘은 가봐야 틀렸슈."
내가 첫 고사리라고 좋아했던 곳은 고사리 고수들에게는 관심 밖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겨우 시골살이 6년차에, 고사리 찾기 원정 3년차인 주제에 조금 전까지 고사리 찾기 고수가 된 것처럼 우쭐했던 나는 기가 팍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땡이가 굵고 검정색이 나는 먹고사리가 나는 곳은 따로 있슈."
"거기가 어딘데요?"
저는 뒷골 할머니 곁으로 바짝 달라붙어서 할머니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조금만 걸어도 숨이 이까정 차서 고사리 찾기는 다 틀렸슈. 거기 발밑에 고사리 하나 있네유."
정말로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 뒷골 할머니였지만 젊은 날 쌓아왔던 고사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거동은 불편했지만 눈으로는 계속 고사리를 찾고 있더군요. 그러더니 아예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에게 고사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뒷골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고사리를 많이 꺾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사리를 모두 내 보따리에 넣을 수 없어 할머니의 보따리에도 넣어드렸습니다.
"뭘 그런대유. 안 그래도 되는디…."
할머니는 말을 그렇게 했지만 내가 꺾어주는 고사리가 싫진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뒷골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굵고 실한 먹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어 우리 동네 고사리계를 평정하리라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고사리는 말유, 너무 응달도 아니고 양지도 아닌 곳에서 많이 나지유. 그리고 그렇게 멀뚱하게 서서 찾으면 안 보이는 것이 고사리유. 앉아서 아래에서 위를 보고 찾아야 언네(어린 아이) 손처럼 오므리고 있는 고사리가 보이는거유."
비법을 전수 받을 고수를 찾아 무림을 헤매던 협객은 드디어 비범한 도인을 만나 물지게부터 지게 되었어도 머지않아 칼날을 번뜩이며 강호에 군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비법 전수의 길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뒷골 할머니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대로 고사리를 꺾어 드렸지만 쉽게 비책을 숨긴 곳을 가르쳐줄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